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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반복된 우연, 필연으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송길영 Mind Miner

송길영 Mind Miner

늦은 시각, 힘든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자동차에서 내리면서 가장 열심히 챙겨야 하는 것은 휴대폰입니다. 내비게이션으로 쓰려고 자동차와 케이블로 연결해 놓은 후 거두지 않아 다시 주차장으로 가지러 간 적이 몇 번이고 있었기에 다른 물건은 몰라도 휴대폰은 반드시 챙기는 습관이 들었습니다. 챙긴 휴대폰을 뒷주머니에 넣다 조용한 한밤중 갑자기 가까운 곳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 깜짝 놀랐습니다. 그 소리는 다름아닌 휴대폰 속 클럽하우스 어플의 방에 모인 분들이었습니다. 제가 팔로우한 분들이 개설한 방에서 온 초대 메시지가 휴대폰을 거둘 때 저도 모르게 눌려 자동으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우연히 눌려진 클럽하우스 어플 #콘텐트 제작자들과 유쾌한 대화 #오프라인 만남 이어지는 행운도 #우연의 삶에 의미 부여하면 필연

우연히 들어간 방에 계신 분들은 채 열 분이 되지 않았습니다. 지인들간 조촐한 동호회 같은 곳에 낯선 제가 들어가서 뻘쭘한 마음에 실수로 들어오게 되었다 고백했음에도 너무나 반갑게들 맞아주셔서 저도 모르게 눌러앉게 되었습니다. 참가자들은 모두 무언가 콘텐트를 만드는 분들이었습니다. 한 분은 예능 프로그램, 한 분은 드라마, 한 분은 광고, 한 분은 모바일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콘텐트와 같이 기존에는 방송국에만 있던 크리에이터들이 이제는 각자 다른 조직에서 방송채널 뿐 아니라 유튜브와 OTT를 비롯한 다양한 플랫폼에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발신하는 일로 직업을 확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 역시 데이터 속에 담겨있는 사람들의 일상으로부터 스토리를 추출해서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는지라 공감대가 형성되어 곧 수다 삼매경이 시작되었습니다. 업계 소식에서 출발하여 각자 하고 있는 기획부터 전에 참여했던 프로젝트의 뒷이야기, 나중의 큰 포부와 최근 받은 이직 제안에 이르기까지 소재는 무궁무진했습니다. 겨울방학 찾아간 할머니 댁에서 밖에는 눈이 소복소복 쌓이고 화롯불에서 군밤이 익어가는데 가만가만 들려주시는 옛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정겨운 광경이 떠오르는 분위기에 취해 다음 날 아침 해가 떠오를 때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빅데이터 3/26

빅데이터 3/26

정식으로 소개를 받아서 만나기도 번거롭고, 설사 만났어도 친밀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몇 번을 사석에서 따로 보아야 하는 사람들이 만나자마자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비결은 한 다리만 건너면 모두 서로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자신의 분야에서 이름을 건 결과를 내 온 사람들인지라 작품으로 증명하고 연결된 사람을 통해 한 번 더 확인된 안전함은 서로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안온감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반복되는 일상 속, 선물같은 밤이 지난 후 일주일이 채 지나기 전 다시 한번 우연이 일어났습니다. 정확히 같은 시각에 귀가해 차에서 내리며 휴대폰을 챙기다 환청같이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는 경험을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똑같은 방에 다시 실수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같은 분들과 같은 시간대에 같은 공간에서 다시 만나게 된 일은 반복된 우연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다시금 펼쳐진 이야기의 장은 지난 주의 라포르에 덧붙여져 다음 날 동이 틀 무렵까지 꽃을 피웠습니다.

그 후 두 번의 반복된 온라인 속 우연은 오프라인으로 이어졌습니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라는 글을 남긴 수필가 선생님과 다르게 우리의 세번째 만남은 물리적 공간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실제로 얼굴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이미 이틀밤을 새워가며 토론한 사이인지라 어색한 순간 없이 곧바로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와 조언을 나누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화 후 함께 도모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 같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후의 협력에 대해서도 논의하고자 약속하며 반복된 우연이 필연으로 커지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아무리 바쁘고 해야 할 일이 많아도 이처럼 반복된 우연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 하는 이유가 우리 인간이 나약하여 우연을 믿고 싶기 때문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보다 우리의 의지에 더 큰 뒷심을 실어주는 계기를 우연이 만들어 주었다 믿고 싶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리고 실낱같은 그 우연의 갈래를 필연으로 만들어 일상을 성실히 살아내는 나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교훈을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그리고 가장 큰 속내는 일상 속 자신의 경험을 방송 프로그램에서 에피소드로 재미나게 풀어내는 예능인과 같이,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었던 나의 장한 이야기를 주변에 알리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반복된 우연들은 필연으로 만들어 소중한 인연으로 키우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송길영 Mind Mi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