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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손절…SBS '조선구마사' 결국 폐지 "해외판권도 해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 [사진 SBS]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 [사진 SBS]

역사 왜곡 논란을 빚은 퓨전사극 '조선구마사'가 방영 2회 만에 전격 폐지됐다. 여론 악화와 광고 철수 등 압력을 버티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과도한 중국풍 소재에 거부감 #태종 등 실존 인물 비하 논란 #광고주 등 줄줄이 철수에 백기

SBS는 26일 공식 입장을 내고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여 '조선구마사' 방영권 구매 계약을 해지하고 방송을 취소하기로 했다"며 "폐지로 인한 방송사와 제작사의 경제적 손실과 편성 공백 등이 우려되는 상황이지만, 지상파 방송사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방송 취소를 결정하였음을 알려드린다"고 밝혔다.

제작사인 YG스튜디오플렉스, 크레이브웍스, 롯데컬쳐웍스도 "SBS의 편성 취소 이후 제작도 중단됐다. 상황의 심각성을 십분 공감하며 작품에 참여했던 스태프와 관계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조선구마사’ 관련 해외 판권 건은 계약해지 수순을 밟고 있고 서비스 중이던 모든 해외 스트리밍은 이미 내렸거나 금일 중 모두 내릴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SBS에 따르면 애초 16부작으로 기획됐던 드라마의 방영권료 대부분을 이미 선지급했고, 제작사는 80% 촬영을 마친 상황이라고 한다. 제작비는 320억원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드라마 내용과 설정 등의 이유로 폐지가 되는 초유의 사태라는 것이 방송가의 반응이다.

'조선구마사'는 조선 태종 시대를 배경으로 악령을 퇴치하는 독특한 내용을 다뤘다. 태종과 양녕대군, 충녕대군(세종) 등 역사적 실존 인물들을 그대로 등장시켰지만 첫 회 방영과 함께 논란에 휩싸였다.

하나는 충녕대군이 바티칸에서 온 가톨릭 구마 사제에게 월병과 중국식 만두, 피단(삭힌 오리알) 등을 대접하는 장면이다. 중국 음식 뿐 아니라 건물이나 의상이 한국이 아닌 중국식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안 그래도 최근 tvN '빈센조'에서 비빔밥을 놓고 한국과 중국 누리꾼들이 설전을 벌인 상황에서 시청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실제로 중국에서 일부 누리꾼들이 '조선구마사'의 해당 내용을 지적하면서 "한국은 중국 문화를 베껴갔다"는 식으로 공격한다는 보도가 전해지면서 여론이 격앙됐다.

극 중 조선의 기생집에서 충녕대군이 구마사제에게 월병, 피단 등을 대접하는 장면. [사진 SBS '조선구마사']

극 중 조선의 기생집에서 충녕대군이 구마사제에게 월병, 피단 등을 대접하는 장면. [사진 SBS '조선구마사']

태종이 아버지 태조의 환시를 보고 백성을 학살하거나 충녕대군이 구마 사제와 역관에게 무시당하는 등의 설정 역시 아무리 허구라 해도 실존 인물을 과도하게 왜곡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전주이씨 종친회 측에서도 이를 문제 삼아 SBS 측에 항의했다.

대본 집필을 맡은 박계옥 작가도 도마 위에 올랐다. 전작 tvN의 '철인왕후'에서도 철인왕후(신혜선)가 『조선왕조실록』을 ‘지라시’라고 표현하고, 신정왕후가 미신에 빠진 인물로 등장하면서 '역사 왜곡'이라는 몸살을 앓은 적이 있기 때문. 또 '철인왕후'가 혐한 이력이 있는 중국 작가의 작품이 원작이라는 점도 지적이 됐다. 여기에 박 작가가 한중합작 민간기업 쟈핑픽쳐스와 집필 계약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조선구마사'의 비틀기가 의도적인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드라마 '철인왕후' [사진 CJ ENM

드라마 '철인왕후' [사진 CJ ENM

이에 따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24일 ‘조선구마사’ 방영 중단 요청 청원이 게재돼 26일(오후 12시10분 현재) 19만8000명이 동의했다. 또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도 ‘조선구마사’ 관련 민원이 3900여 건이나 접수됐다.

무엇보다 광고주와 제작지원사 등이 줄줄이 빠져나가면서 제작을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삼성전자, 쌍방울, 에이스침대 등은 25일부터 제작지원 철수 입장을 밝혔다. 장소 제공 등 협찬했던 문경시, 나주시도 촬영 장소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공식입장을 밝혔다. 공동 제작에 참여했던 롯데컬처웍스도 26일 투자 철회를 공식 발표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해외에서도 실존 인물에게 허구를 덧입히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며 "다만 한국에서는 역사적으로 존경하는 인물에 대해 이런 시도를 하는 데 대해서는 보다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 무엇보다 중국의 동북공정 등으로 민감한 시점에서 제작진의 판단이 안이했다"고 지적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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