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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쇼핑하고 세금은 회피…'검은머리 외국인'의 호화생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외국인인 A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때문에 한국에서 생활하는 게 더 만족스럽다. 다른 나라에 비해 방역이 잘 돼 있는 데다, 의료 등 복지체계 수준도 높기 때문이다. 수백억원에 달하는 해외 자금까지 한국으로 들여와 가족과 의료쇼핑을 하는 등 호화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A씨는 세금을 낼 땐 외국인임을 내세운다. 외국인 비거주자로 분류되면 국내 소득세를 내지 않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이 때문에 종종 일부러 출국해 체류일수를 조작하기도 했다.

국세청 역외탈세 54명 세무조사 착수

24일 국세청은 브리핑을 가지고 국적세탁 등 지능적 역외탈세 혐의자 54명에 세무조사를 착수했다고 밝혔다. 국세청

24일 국세청은 브리핑을 가지고 국적세탁 등 지능적 역외탈세 혐의자 54명에 세무조사를 착수했다고 밝혔다. 국세청

한국에서 거주하며 의료 등 복지혜택은 누리지만, 세금을 낼 땐 해외 체류자인 것처럼 속여 회피한 사람들이 적발됐다. 국세청은 24일 국적 등 신분을 세탁하거나 국제거래를 이용해 역외 탈세한 혐의를 받는 54명을 확인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국내 소득세법상 외국인·이중국적자라고 하더라도 1년 중 절반인 183일 이상 국내에 체류하거나, 실질적으로 국내에서 생활한 내용이 확인되면 거주자로 본다. 거주자로 분류하면 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도 국내법에 따라 세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A씨 사례처럼 이번에 적발한 54명 중 14명은 납세의무가 없는 비거주자처럼 위장해 소득과 재산은 해외에 은닉하고 세금을 회피했다.

이중국적자인 B씨는 가족과 한국에 거주하면서 100억원대 부동산을 취득해 임대업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이중국적자임을 내세워 비거주자로 위장해 국외소득에 대한 세금을 누락했다.

한국인도 해외체류 이유로 탈세

한국인이지만, 국내에서 생활하지 않는 것처럼 꾸며 세금을 탈루한 혐의를 받는 사람도 있다. 외국인이나 이중국적자가 아니더라도 비거주자로 인정받으면 해외소득에 대해선 국내 세법 적용을 받지 않는 점을 노렸다.

실제 200억원대 부동산을 가지고 임대업을 하는 C씨는 가족과 함께 국내에서 거주하지만, 외국 출입이 많음을 이유로 비거주자로 위장했다. 이 과정에서 국외소득 신고를 누락해 국세청 세무조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신분 세탁’ 뿐 아니라 법인을 이용해 해외로 재산을 빼돌리는 경우도 다수 적발했다.

국세청이 신분을 세탁하거나 법인을 이용해 세금을 탈루한 역외 탈세혐의자 54명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사진은 역외탈세에 이용한 것으로 의심받는 페이퍼 컴퍼니. 국세청

국세청이 신분을 세탁하거나 법인을 이용해 세금을 탈루한 역외 탈세혐의자 54명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사진은 역외탈세에 이용한 것으로 의심받는 페이퍼 컴퍼니. 국세청

국내에서 법인을 운영하는 D씨는 해외 조세회피처에 자신이 100% 지분을 가진 자회사를 만들었다. 그런 다음 국내 법인의 핵심 무형자산을 자회사로 빼돌렸다. 국내 법인은 이 무형자산을 사용하는 대가로 자회사에 거액의 사용료를 냈다. D씨는 이 자회사를 이용해 유학 중인 자녀에게 급여를 지급했다. 아예 지분도 이전해 경영권 승계까지 추진했다.

시민권 내세운 '검은머리 외국인'도 탈세 

코로나19 상황이 아니더라도 세금을 회피하거나 증여를 목적으로 한 역외탈세는 그동안 '아는 사람들은 아는' 탈세 방법으로 이용됐다. 국세청 과거 조사 사례를 보면 대부분 생활은 국내에서 하지만 해외 시민권을 내세워 세금을 회피하는 이른바 ‘검은 머리 외국인’도 있었다.

외국시민권을 내세워 부동산 증여세를 내지 않은 사례. 국세청

외국시민권을 내세워 부동산 증여세를 내지 않은 사례. 국세청

국내에서 거주하는 E씨는 페이퍼컴퍼니 명의로 해외 부동산을 사들인 뒤, 법인 지분을 자녀에게 이전하는 방식으로 편법 증여했다. E씨와 그의 자녀들은 국내 거주자로 증여세를 내야 했지만, 외국 시민권자라는 이유를 내세워 비거주자로 위장해 증여세를 누락했다.

해외부동산 투자를 해 ‘대박’을 내고도 양도세를 내지 않은 의료업체 사주도 있었다. 이들은 수익이 가족에게 돌아가는 가족신탁(Family Trust)을 설정해 부동산 매각대금을 은닉했다.

국세청이 지난 2019년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역외탈세 및 다국적기업 조세회피자 318명을 조사한 결과 추징한 세금만 1조1627억원이었다. 이 중 5건은 조세포탈 혐의 등으로 검찰 고발했다.

노정석 국세청 조사국장은 “이번 조사는 국가 위기를 개인적 축재에 이용하고 우월한 경제적 지위와 전문지식을 탈세에 사용한 반사회적 역외탈세 혐의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탈세 혐의를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세종=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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