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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중심 정부랬는데”…20년만의 폐업 고민 노숙인 자활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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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인천내일을여는집이 운영하는 계양구재활용센터. 사진 이준모 목사 제공

인천내일을여는집이 운영하는 계양구재활용센터. 사진 이준모 목사 제공

“어제는 10원도 못 벌었어요. 직원들 걱정에 며칠째 잠을 설쳤습니다”

수화기 너머 이준모 목사의 목소리는 떨렸다. 인천에서 사회적기업인 계양구 재활용센터를 꾸려온 그는 최근 20 여년만의 폐업을 고민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매출이 절반으로 주는 등 적자가 계속돼서다. 두 달에 780만원인 임대료를 구하지 못해 처음으로 한국자산관리공사에 임대료 납부 유예를 신청했다.

IMF 위기 뒤 시작한 노숙인 위한 활동

지난해 8월 사단법인 인천내일을여는집은 인천시 부평구 부평역 부근에서 노숙인에게 찐빵을 나눠주는 행사를 진행했다. 사진 이준모 목사 제공

지난해 8월 사단법인 인천내일을여는집은 인천시 부평구 부평역 부근에서 노숙인에게 찐빵을 나눠주는 행사를 진행했다. 사진 이준모 목사 제공

계양구 재활용센터는 20년 전인 2001년 이 목사의 강단에서 출발했다. 1998년 외환위기 여파로 늘어나는 노숙인이 안타까웠던 그는 교회 일부를 노숙인을 위해 내놨다. 인천시 등이 힘을 보태면서 지상 2층, 지하 1층 다세대주택을 임대해 노숙인 쉼터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그는 노숙인 긴급구조와 쉼터 마련에 그치지 않았다. 외곽순환도로 밑 계양구청이 운영하던 재활용센터를 넘겨받았다. 고장 난 물품을 수거한 뒤 수리해 다시 판매하는 일이었다. 노숙인들에게 빵을 주기보단 빵을 만드는 기술을 익히게 하자는 게 이 목사의 생각이었다.

2010년 사회적기업으로 인증받았지만, 한국도로공사가 도로 밑에선 재활용센터를 운영할 수 없다고 하면서 새 보금자리를 찾아 나섰다. 급하게 한국자산관리공사와 임대계약을 맺고 계양구 계산동 현 건물로 이주했다. 이 목사에 따르면 최근까지 계양구 재활용센터를 거쳐 간 노숙인은 1000명이 넘는다. 이 중에는 다른 직업을 찾아 인생 2막을 연 이들도 있다. 2012년 들어온 엄모(35)씨가 대표적이다. 그는 5년간 재활용센터에서 일하면서 주경야독 끝에 사회복지사가 됐고 현재 사회복지 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운영중단 위기

이 목사의 헌신도 코로나19 사태를 피해갈 수 없었다. 이 목사는 임대료 감면에 희망을 걸었다. 임대료 부담만 덜어줘도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지난해 5월 인천시와 계양구는 산하 시설관리공단 관리시설에 입주한 업체에 임대료를 절반으로 감면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계양구 재활용센터가 있는 건물은 한국자산관리공사 소관이란 점이 발목을 잡았다. 이 목사는 한국자산관리공사와 기획재정부에 임대료를 감면, 면제해달라 요청했다. 한국자산관리공사는 “재활용센터 상황은 안타깝다”면서도 “정부로부터 임대료 감면이나 면제 등 방침이 없어 수용할 수 없다”는 답신을 보냈다. 기획재정부는 “관리자 1인 외 노숙인 6인을 고용하고 있는 재활용센터는 소상공인(5인 미만)이 아니라 지원받을 수 없다”는 취지로 답변했다고 한다.

“지원 사각지대 놓인 사회적기업”

지난해 8월 이준모 목사가 수원역에서 노숙인에게 찐빵을 건네고 있다. 사진 이준모 목사 제공

지난해 8월 이준모 목사가 수원역에서 노숙인에게 찐빵을 건네고 있다. 사진 이준모 목사 제공

계양구 재활용센터는 2019년부터 정부로부터 사회적기업 인건비 명목으로 지원을 받았다. 오는 5월이면 이조차 받을 수 없다. 기한이 3년이어서다. 현재 재활용센터에는 노숙인 6명과 장애인 1명이 일하고 있다. 코로나19 불황 속에 건물 임대료와 직원 인건비 지급에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이 목사는 사회적기업이 정부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지원정책 밖 사각지대에 놓였다고 호소했다. 앞서 기재부는 2017년 8월 “국유재산을 개발해 사회적 경제조직과 벤처·창업기업, 국공립어린이집 등 공익 목적을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발표에 맞게 노숙인 자활을 돕는 사회적기업에 정책적 배려를 해야 한다는 게 이 목사의 주장이다.

이 목사는 “이번 정부가 사람 중심 정책을 펴겠다고 해서 기대했다”며 “그런데 노숙인 취업센터도 없애고 노숙인을 고용하면 사회적기업에 주던 혜택도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장 사회적기업과 대화 없이 탁상행정으로 정책을 만들다 보니 노숙인, 장애인의 일자리가 불안하다. 정부 부처가 칸막이를 없애고 지원방안을 고민해줬으면 좋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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