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이름짓기(네이밍)는 마케팅의 첫걸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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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연구 1>

여성전문병원을 표방하고 있는 영동제일병원(원장 노성일)은 최근 발산 지역에 산과 전문병원을 세우면서 양쪽 병원을 통괄하는 이름을 새로 만들었다. 영동제일병원이란 명칭은 10여년 전 충무로에 있는 제일병원(현 삼성제일병원)에서 분가해 나오면서 사용해오던 이름. 당시에는 제일병원이란 이미지를 전수함으로써 이름 덕(?)을 톡톡히 보았던 것이 사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환자들에게 연계병원과 같은 혼란을 줄 뿐 아니라 여성전문병원으로서의 컨셉에 걸맞지 않고, 국제화시대에도 떨어진다는 판단아래 과감하게 바꾸게 된 것.
네이밍 회사를 통해 최종 선택한 이름은 4개. 이들 이름을 여성 환자 3백명을 대상으로 친근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40%를 넘는 사람들이 '미즈메디'라는 이름에 낙점을 주었다. 노원장은 "미즈메디는 병원의 성격을 잘 나타내주면서 미래지향적이고 젊은 세대에게 취향에 맞는 것 같아 만족스럽다"며 "발산동 병원이 개원하는 내년 초부터 이름을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사례 연구 2>

병원도 브랜드 시대가 되고 있다. 피부과전문의 12명이 '피부사랑이라는 공동 브랜드로 병원을 차려 시선을 끌고 있다. 피부사랑은 부산의 O원장이 아이디어를 내 전국에 흩어져 있는 12명의 피부과의사들이 동참, 프랜차이즈 형식으로 출발했다.
12명의 전문의들은 병원이름, 로고, 인테리어를 똑같이 했고 의료기기를 공동으로 구입했다. 의료기기를 구입할 때는 회사를 직접 방문, 품질과 가격에 대해 평가를 매긴 뒤 제일 높은 점수를 받은 제품을 선택했다. 또 내부 인테리어도 공동 발주했다.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 의료기기와 약을 공급받을 수 있고, 인테리어도 최소비용으로 고급 까페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꾸밀 수 있었다는 것이 O원장의 설명.
공동브랜드는 소형전문점이 가진 강점을 잘 살려준다. 우선 이미지를 단일화시킨다는 장점 이외에 공동 구매, 공동 홍보를 통해 규모의 경제효과와 마케팅 효과를 동시에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이다. <네이밍 전문회사 '이름쟁이' 홈페이지에서 발췌>

병원이름이 바뀌고 있다

지금까지 병원 경영자들은 병원명칭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의원급은 자신의 이름을 앞에 내세우거나 모교 또는 지역의 고유명사를 딴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지고 있다. 의료기관들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눈에 띠고 기억에 남게 하는 명칭의 중요성이 점차 부각되고 있는 것. 상품이나 상호에 성패를 거는 기업 마케팅 전략이 병원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상호나 상품명을 특허청에 등록함으로써 브랜드를 독점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이러한 추세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요즘 눈에 띠는 병의원 상호들을 살펴보자. 현재 프랜차이즈로 성공한 예치과. 예라는 단어가 예술적이라는 이미지를 주면서, 'Yes'의 우리말을 연상시켜 긍정적이면서 다소곳한 분위기를 전달한다. 피부과에서는 고은, 고운세상이라는 명칭이 같은 느낌이고, 에이플러스 치과, 탑성형외과, 드림성형외과는 최고 또는 이상적인 치료를 실현한다는 이미지를 연출한다. 비뇨기과에서는 '굿모닝비뇨기과의원'이 아침에 보여주는 남성의 자신감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돋보이는데 이후 굿모닝증권 등 다른 업종에서 같은 이름을 사용, 고객에게 이름을 반복해서 각인시켜 주는 어부지리를 얻고 있다.

과별 전문성을 보여주는 이름으로는 사지접합(특히 손가락)을 전문으로 하는 두손성형외과, 치질을 전문으로 하는 학문외과(항문으로 발음)나 대항병원, 라식 등 근시수술을 하는 밝은 안과, 밝은 세상 안과 등이 돋보인다.

공동개원을 한 이지함피부과나 차&박피부과의원은 동업의사의 성을 따 만들어 성공한 좋은 예. 이밖에도 척추전문 우리들병원과 치매전문 효자병원, 꽃마을 한방병원 등은 가족과 같은 친근감과 평온한 느낌을 주는 대표적인 이름이다.

병원 이름짓기의 포인트

고객이 상표를 보고 인식한 뒤 1차적인 선호를 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0.6초라고 한다. 따라서 온갖 간판과 광고판이 밀집되어 있는 도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기억에 남게하는 방법은 역시 톡톡 튀는 이름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몇가지 갖춰야할 전략이 있다.

첫째는 글로벌화.
우리 사회가 국제화·세계화 되고 있기 때문에 진부하고 딱딱한 느낌이 드는 상호로는 어필하지 못한다. 특히 외국에 나가 논문을 발표하는 등 학문적인 교류 및 기술정보를 교환하고 있고, 심지어 교포뿐 아니라 외국 환자들이 국내에 와서 치료를 받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어 작명에 이를 감안해야 한다.

둘째는 차별성이다.
다른 병원보다 좋은 서비스와 치료내용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를 담아야 한다. 병원의 독특한 성격이나 병원경영자의 철학이 담겨 있다면 최상. 위에서 보여준 효자병원, 마리아의원 등은 좋은 예.

셋째는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의료기관이 10년, 20년 뒤 어떻게 성장해나가야겠다는 청사진이 담겨있는 이름이어야 할 것.

넷째는 고객 타겟(표적)이 명확해야 한다.
전문성을 표방한 병원이라면 환자의 세대 및 성별, 지역별, 소득별 타겟을 고려한다.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다면 좀더 감각적인 이름을, 지역병원이라면 신뢰성을 주는 이름을 정해 이에 대한 이미지 구축(컨셉 작업)을 함께 해나도록 한다.

특허청에 이름 올리기

이름짓기가 끝나면 반드시 특허청에 출원하여 등록을 마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특허법은 선출원주의를 따르기 때문에 후발 병원이 이름을 도용하고 이를 먼저 등록하면 앞서 이름을 사용한 병원이라도 간판을 내려야하는 최악의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상표권을 출원(정확하게 상호는 서비스표 등록이라 함)할 때는 우선 특허청에서 이미 출원된 이름이 있는지 명부를 확인해야 한다. 같은 이름은 물론 유사상호일 경우에도 등록이 거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원비용은 20∼30만원선. 10년에 한번씩 이름을 갱신해야 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출원에서 등록까지 1년 정도 소요되지만 일단 출원을 하면 상호에 대한 독점권이 인정된다. 절차가 귀찮고 시간이 없으면 특허법률사무소나 일반 변리사에게 의뢰하는 것도 한방법이다.

법에 저촉되는 이름들

일반 상호와 달리 의료기관은 의료법 35조와 시행규칙 29조에 의해 규제를 받는다.

즉 35조에는 '의료기관 종별에 따른 명칭 이외의 명칭은 사용하지 못한다'고 되어있고, '종별명칭 위에 고유명칭은 의료기관의 종별명칭과 혼동할 우려가 있거나, 특정진료과목 또는 질병명과 유사한 명칭은 사용하지 못한다'고 되어있다. 종별이란 의원, 병원과 같은 병원규모나 피부, 성형 등 진료과목에 따른 명칭. 그리고 고유명칭은 글자 그대로 '한사랑의원'의 '한사랑'이란 단어처럼 병원경영자가 임의대로 붙이는 이름을 말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 규정만 지켜주면 이름을 사용하는데 큰 제약은 없다"고 말했다. 예컨대 '남성'이나 '여성'이란 고유명칭은 산부인과와 비뇨기과라는 종별명칭과 혼동할 수 있고, 요통·근시·당뇨와 같은 질병명을 보여주는 단어는 사용할 수 없다는 것.

네이밍 전문업체들

과거부터 있어왔던 작명소와 네이밍 회사는 어떻게 다를까. 양쪽이 이름을 지어주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전자의 이름에는 동양철학적 의미가, 네이밍 회사들의 이름에는 광고 및 홍보개념과 같은 마켓 전략이 담겨있다.

특허청 추산에 따르면 몇 년 사이 국내에도 상품 및 상호, 기업명만을 전문으로 지어주는 네이밍 회사들이 30여 군데 생겼다. 이중에는 단순하게 네이밍만 하는 곳도 있고, 캐릭터나 로고, 슬로건 등 컨셉 작업까지 해주는 곳 등 다양하다.

네이밍 비용은 유명세에 따라 1백만원에서 5백만원 선. 물론 병원만을 전문으로 하는 네이밍업체는 없지만 그렇다고 병원을 기피하는 것은 아니다. 병원은 아직 네이밍에 대한 인식이 없어 대부분 원장이 이름을 짓는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

현재 대표적인 국내 네이밍전문업체들로는 옹가네·하이트· 국가정보원 등의 이름을 지은 인피니트, 한빛은행·시나브로 등을 작명한 브랜드메이저, 참나무통 맑은 소주·식물나라 등을 만든 크로스포인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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