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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대사도 미국처럼 “외교중심=인도ㆍ태평양, 한국 합류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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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 스미스 주한영국대사가 18일 관저에서 영국의 외교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대사가 착용한 마스크엔 영국이 올해 야심차게 개최하는 유엔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6) 마크가 그려져 있다. 제니 홍 주한영국대사관 공보관 제공

사이먼 스미스 주한영국대사가 18일 관저에서 영국의 외교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대사가 착용한 마스크엔 영국이 올해 야심차게 개최하는 유엔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6) 마크가 그려져 있다. 제니 홍 주한영국대사관 공보관 제공

“우리의 향후 10년 외교 정책의 중심축은 인도ㆍ태평양이다. 한국을 포함한 우리의 세계 동맹국들이 중국이 제기하는 도전에 맞서 협력하길 바란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의 발언이 아니다. 블링컨 장관이 정의용 외교부 장관을 만나던 18일 오전, 사이먼 스미스 주한 영국대사가 중앙일보 등 일부 언론을 서울 중구 대사관저로 초청해 강조한 발언이다. 영국 정부가 16일(현지시간) 발표한 향후 10년간 글로벌 전략(Integrated Review)의 요지를 설명하면서다.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와 1.4㎞ 떨어진 주한영국대사관에서도 같은 메시지가 전달된 셈이다.

스미스 대사는 “중국은 국제사회에 기회이기도 하지만 도전과제이기도 하다”며 “우리는 중국과 일부러 대립각을 세우지는 않겠고, 그런 상황을 원하지도 않지만 만약 우리와 동맹이 공유하는 가치를 중국이 훼손한다면 대가를 치러야 함을 분명히 밝혀둔다”고 강조했다. 선명한 메시지다. 영ㆍ미가 사전 교감을 한 것은 아니지만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국제사회가 동시에 대(對) 중국 공동 전선을 형성하고 한국에 합류를 압박하고 있는 형국이다.

영국 정부가 내놓은 이 향후 10년 전략 보고서는 브렉시트(Brexit) 시대 영국의 외교 청사진이다.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한 영국이 국제사회에서 어떤 역할과 책임을 할지에 대한 선언이다. 영국 정부에선 도미니크 라브외교장관이 직접 발표를 할 정도로 공을 들였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과 궤를 함께하며 외교 전선을 새롭게 다지는 의미가 크다.

올해 11월 영국이 개최하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와 관련해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회의를 열고 있다. AFP=연합뉴스

올해 11월 영국이 개최하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와 관련해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회의를 열고 있다. AFP=연합뉴스

영국은 오는 6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의장국인 동시에, 11월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를 개최한다. 영국 정부는 G7 의장국 재량으로 초청할 수 있는 게스트 국가로 한국ㆍ인도ㆍ호주를 골랐다. 인도ㆍ호주는 중국과 공개적으로 외교 통상 갈등 관계에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23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하는 것도 G7 참석을 위해서라고 청와대가 밝힌 바 있다.

G7 의제에 대해서 스미스 대사는 “기회로서의 중국과 도전으로서의 중국의 의미 모두 논의 테이블에 오를 것”이라며 “중국은 비교적 빠른 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국가로서, 좋은 일뿐 아니라 해로운 일까지 모두 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과 영국이 한목소리로 강조하는 인도ㆍ태평양 전략에 대한 한국 정부의 스탠스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묻는 중앙일보의 질문에 스미스 대사는 정색한 뒤 이렇게 말했다.

“(한국 정부가) 자유의 가치를 상기했으면 한다. 1980년대 (자유가 억압됐던) 한국과 지금의 한국이 얼마나 다른지는 한국 정부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영국과 한국은 자유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파트너이다. 자유무역부터 표현의 자유 등, 자유의 엄청난(massive) 가치를 옹호하는(championing) 데 한국도 합류하기를 바란다.”   

사이먼 스미스 주한 영국대사가 18일 오전 대사관저 앞마당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전수진 기자

사이먼 스미스 주한 영국대사가 18일 오전 대사관저 앞마당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전수진 기자

약 70분 간 진행된 회견은 상당 부분을 스미스 대사는 중국과 미국, 인도ㆍ태평양 키워드에 할애했다. 영ㆍ미 관계에 대한 질문에 스미스 대사는 “외교ㆍ안보 분야에서 미국은 영국의 가장 핵심적(salient) 파트너라는 점은 이번 보고서에서도 분명히 밝히고 있다”고 강조하며 “중국에 대한 관점을 공유한다는 점이 바로 현 영ㆍ미 관계를 설명하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영국은 예외주의(exceptionalism)를 추구하지 않는다”며 “우리와 함께 비전과 가치를 공유하는 전 세계 모든 국가와의 효율적 협력을 중시하며, 중국과 우리의 관점이 다르다는 사실은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미스 대사는 이어 중국 신장(新疆) 위구르족 인권 문제와 홍콩 문제, 중국의 세계 무역 공급망 교란 문제를 적시해 우려를 표했다.

이번 영국 정부의 외교전략 보고서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핵탄두 보유 한도를 10년 안에 260개로 늘리겠다고 명시한 부분이다. 영국 정부가 지난 2010년 당시 핵탄두 보유 한도를 225개에서 2020년대 중반까지 180개로 줄이겠다고 했던 약속을 뒤집은 것이다. 이에 대해 스미스 대사는 “영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제6조(핵 군비 축소 책임 규정)를 준수하며, 보고서에서 강조한 것은 (핵탄두) 숫자가 아니라 효율적 핵 억지를 위한 최소 수준의 핵무장”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북핵 및 이란 핵 문제에 대해선 “핵확산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에 합류한다면 경제 개발 성공이라는 포상이 주어지겠지만 그렇지 않고 비협조를 택한다면 그 경제 제재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점은 변함없다”고 강조했다.

스미스 주한영국대사가 지난달 주한영국대사관저에서 블랙핑크 멤버들에게 COP26 홍보대사를 맡은 데 대한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의 감사 서한을 전달하고 있다. 주한영국대사관 제공

스미스 주한영국대사가 지난달 주한영국대사관저에서 블랙핑크 멤버들에게 COP26 홍보대사를 맡은 데 대한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의 감사 서한을 전달하고 있다. 주한영국대사관 제공

한국과 영국의 협력에 대해 스미스 대사는 COP26 개최국인 영국의 대사로서 기후변화 문제를 강조했다. 그는 “신재생 에너지 부문에 있어서 한국은 수소 분야에서, 영국은 풍력 발전 분야에서 앞서 있으며 상호 협력 잠재력이 크다”며 “지난해 한국이 탄소 제로 2050 법안을 통과시킨 것도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COP26은 11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개최되는데, 블랙핑크가 홍보대사다. 보리스 존슨 총리가 블랙핑크에 홍보대사직 수용에 대해 감사 편지를 보내 스미스 대사가 직접 전달하기도 했다. 스미스 대사는 “블랙핑크 멤버들 개개인이 기후변화 문제에 관심이 크다”며 “COP26 홍보대사로 블랙핑크처럼 적임자는 찾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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