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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수지 않고, 갈아엎지 않고 더 나은 일상공간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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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2017년 리모델링된 1960년대 아파트. 530세대가 퇴거하지 않고 개조됐으며, 입주민은 넓고 채광 좋은 테라스를 얻었다. [사진 하얏트재단]

2017년 리모델링된 1960년대 아파트. 530세대가 퇴거하지 않고 개조됐으며, 입주민은 넓고 채광 좋은 테라스를 얻었다. [사진 하얏트재단]

“그들은 새 건물을 짓기 위해 기존 건물을 철거한 적이 없다. 그들은 모든 건축물이 용도가 바뀔 수 있고, 재창조될 수 있으며,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34년 동안 그런 방식으로 일한 그들이 건축 분야 최고 영예인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프리츠커상 받은 라카통·바살 #낡은 아파트 개조해 테라스 선물 #입주민 퇴거 않고도 공사 마무리 #나무 안 베고, 꽃도 꺾지 않는 건축 #어떻게 보일까보다 쓸모에 초점

뉴욕타임스는 16일(현지시간) 프리츠커상 수상자 안 라카통(65)과 장 필립 바살(67)을 소개하며 이렇게 썼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이 올해는 낡은 건축물을 최대한 유지하며 고치고 업그레이드한 프랑스 건축가 듀오, 라카통과 바살에게 돌아갔다. 뉴욕타임스는 “이들은 과거에 대한 향수 없이 기술적이고 혁신적이며 생태학적으로 반응하는 리모델링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전했다.

파리 ‘팔레 드 도쿄’ 현대미술관. [사진 하얏트재단]

파리 ‘팔레 드 도쿄’ 현대미술관. [사진 하얏트재단]

올해 프리츠커상 수상자들의 프로젝트는 서민들의 삶을 바꿨다. 오래된 아파트를 개조하는 작업으로 더 넓은 테라스를 갖게 했고, 입주민을 퇴거시키지 않고 공사를 마무리하기도 했다.

라카통은 “아직 쓸 만한 기존 건물을 철거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면서 “그것은 너무 큰 재료 낭비다. 면밀히 관찰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면 항상 지금 있는 것에서 긍정적인 것들을 찾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바살은 “건물을 지을 때는 건축물과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도록 최선을 다했다”며 “절대 허물지 말고, 한 그루의 나무도 베지 말고, 한 송이 꽃도 꺽지 말아야 한다. 그 자리에 있었던 것들의 기억을 잘 살피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철학은 2012년 파리의 ‘팔레 드 도쿄’ 확장 프로젝트에서도 드러났다. 이들은 1937년 파리 만국박람회 때 사용된 건축물의 원모습을 유지하면서 단순한 재료를 최소로 사용해 오래된 건물을 유럽에서 주목받는 현대 미술관으로 개조했다.

개방감이 돋보이는 보르도 주택. [Philippe Ruault 촬영]

개방감이 돋보이는 보르도 주택. [Philippe Ruault 촬영]

1960년대에 지어진 파리 외곽의 주택을 개조한 프로젝트도 이들의 대표 작업. 바닥 면을 확장해 방의 크기를 늘리고, 발코니와 겨울 정원을 추가했다. 바살은 “건축은 갈수록 더 기술이 중요해지고, 복잡해지고, 규제에 기반을 둔 것이 되고 있다. 우리는 이를 지양하려 한다. 대신 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아주 단순한 요소들, 즉 공기와 햇살을 중요하게 다루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라카통과 바살은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이 창의적으로 쓸 수 있게 설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들은 “주민들이 생각해 내는 용도를 보고 놀란다”며 “테라스의 온실이 식물로 가득 찰 것으로 예상했지만 주민들은 의자와 테이블을 놓고 생활 공간으로 이용했다”고 말했다. “테라스는 생각 이상으로 활동을 위한 장소였다. 대부분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는 입주민도 있었다.”

프리츠커상을 받은 안 라카통(왼쪽)과 장 필립 바살. Laural Charlet 촬영, [사진 하얏트재단]

프리츠커상을 받은 안 라카통(왼쪽)과 장 필립 바살. Laural Charlet 촬영, [사진 하얏트재단]

그들의 프로젝트는 비용이 덜 들고 환경적으로 더 지속 가능할 뿐만 아니라, 공사 기간 거주자들이 퇴거하는 것도 피했다. 이들은 2017년 보르도 인근 그랜드 파크의 530세대가 거주하는 아파트를 개조하며 입주민들이 집에 머문 채 개조하고 확장했다.

바살은 “거주자가 편안함을 느끼거나, 행복을 느끼거나, 혼자 있거나, 구름을 바라볼 수 있다면, 바로 이때 건축은 창조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코로나19를 겪으며 자신들의 건축 철학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일상생활을 하는 공간이 너무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1996년 이들은 보르도의 퍼블릭 광장을 새로 디자인해달라는 주문을 받았을 때 “그대로 두는 게 낫겠다”고 했다. 프리츠커상 심사위원단은 “이 프로젝트에서 이들은 자갈을 교체하고, 라임 나무를 치료하는 등 최소한으로 작업했다”며 “이런 접근은 이미 존재하는 것에 새로운 잠재력을 부여하는 방법이었다”고 평가했다. 무조건 갈아엎는 게 최선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들은 건축물이 궁극적으로 ‘어떻게 보일까’가 주요 관심사는 아니라고 했다. 공간의 목적이나 사용에 초점을 맞추어 내부로부터 설계한다는 의미다. 그 과정이 좋을 때 결과도 비로소 좋다고 믿는단다. 그들은 “우리는 미적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것은 창조 과정의 결과로 생겨나야 하지 우리가 처음부터 염두에 둬야 할 것이 아니다. 아름다움은 항상 마지막에 일어난다.”

두 사람은 1970년대 후반 보르도 건축학교에서 만났다. 사막은 그들에게 제2의 학교였다. 그곳에서 “시적 접근법”이라고 부르는 것을 배웠다. 나무와 직물과 같은 기본적인 재료들로 그늘을 만드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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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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