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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정호의 시시각각

미국의 ‘2류 동맹’ 길 가는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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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한국은 미국·일본·호주·인도로 이뤄진 4개국 안보 협의체 쿼드(Quad)에 참여해야 하나. 지난 12일 열린 첫 쿼드 정상회의를 계기로 이 물음에 새삼 눈길이 쏠린다.

미, 쿼드·일본의 전략적 가치 중시 #쿼드 참여하되 후유증 최소화해야 #불참 시 한·미 동맹 위상 추락 분명

이와 관련해 요즘 미국 외교통들은 예사롭지 않은 메시지를 쏟아낸다. “중국을 견제하려면 쿼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며 이를 위해 일본을 중시하라”는 주문이다. 실제로 지난달 말 ‘포린 어페어스’에는 ‘아시아 자유 질서의 지도자, 일본’이란 노골적 제목의 글이 실렸다. 핵심은 “미국은 인도·태평양 내 오랜 동맹인 일본을 따라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지난해 9월 보수적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도 ‘미·일 동맹, 늘어난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도 여전히 미흡’이란 보고서를 냈다. 이 밖에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브루킹스연구소 등에서도 쿼드와 일본의 전략적 가치를 강조하는 보고서가 줄을 이었다.

이들 싱크탱크는 미 외교의 길라잡이였다. 그러니 미국이 어떻게 나올지 뻔하다. 다음 달 조 바이든 대통령의 첫 대면 정상회담 상대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가 된 것도 다 이유가 있다.

그럼 한국을 보는 미국의 시각은 어떤가. 이는 최근 이뤄진 바이든과 한국·일본·호주 정상과의 통화를 보면 안다. 그는 일본·호주 총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미·일 동맹은 인도·태평양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초석(cornerstone)’이며, 미·호 동맹은 ‘닻(anchor)’이라고.

반면에 한·미 동맹은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핵심축(linchpin)’”이라고 바이든은 말했다. 이런 비유는 미국의 오랜 레토릭이다. 하지만 그의 표현엔  큰 차이가 있다. 일본·호주는 큰 인도·태평양의 안보 파트너로, 한국은 훨씬 좁은 동북아의 동맹으로 규정한 까닭이다.

전엔 안 그랬다. 2013년 박근혜-오바마, 2017년 문재인-트럼프 정상회담 때는 한·미 동맹을 “아시아·태평양의 중심축”이라고 미국은 강조했었다. 결국 한·미 동맹의 중요성이 아태에서 동북아 차원으로 쪼그라든 것이다.

많은 전문가는 한·미 동맹의 위상 회복을 위해 한국의 쿼드 가입이 절실하다고 본다. 그래야 태평양·인도양을 아우르는 동맹으로 대접받는다는 거다. 게다가 쿼드는 지진·쓰나미 같은 자연재해와 코로나 등 전염병 대응을 위한 협력까지 논의하는 기구다. 그러니 쿼드 참여 시 이들 네 나라의 도움도 얻을 수 있다.

이런데도 현 정권은 중국 눈치를 보느라 미적거린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 등은 최근 “투명성·개방성·포용성 등의 국제규범을 지킨다면 어떤 지역 협력체와도 협력할 수 있다”고 밝혔다. 언뜻 보면 쿼드 참여 선언처럼 들리지만, 여기엔 ‘포용성’이란 꼬리가 달려 있다. 특정한 나라, 즉 중국을 견제한다면 이는 포용적이 아닌 배타적 협력체가 된다. 참여하지 않을 핑곗거리인 셈이다. 사드 배치에 따른 경제 보복도 가시지 않은 터라 중국 비위를 또 거스를 엄두가 안 날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국 편에 서야 하나, 아니면 미·중 모두와 적당한 거리를 둬야 하나. 물론 답은 나와 있다. 쿼드에 들어가되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게 최선이다. 쿼드는 2007년 창설됐지만, 중국의 압력과 일본·호주에 친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2008년 흐지부지됐었다. 그러다 중국의 위협이 커지자 2017년 일본 아베 정권 주도로 부활한다. 주목할 대목은 재탄생한 쿼드가 완연한 반중 성향인데도 지난해 이후 중국이 보복은커녕 경제교류를 늘리자고 일본·호주에 손짓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중국이 쿼드 가입을 문제 삼아 경제적 불이익을 주려 한다면 “왜 한국만 그러느냐”고 반격할 수 있다.

위대한 과학자이자 신학자인 아이작 뉴턴이 갈파했듯, “재치란 적을 만들지 않고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한국은 일본·호주에 못 미치는 ‘2류 동맹국’으로 추락할 게 분명하다.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