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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리니섬의 화산 폭발이 엑소더스 '열 가지 재앙' 만들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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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십계'의 한 장면 [중앙포토]

영화 '십계'의 한 장면 [중앙포토]

구약성서에 나오는 엑소더스의 과정은 매우 드라마틱하다.
이집트인들에게 400여년 동안 노예처럼 부려지던 이스라엘인들은 모세의 지도 아래 이집트를 탈출한다. 파라오 람세스 2세가 이들을 순순히 놓아주려 하지 않자, 야훼는 이집트에 '10가지 재앙'을 내려 겨우 빠져나간다. 이후 추격해오는 이집트 군대는 홍해가 갈라졌다 합쳐지는 기적으로 물리쳤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는 광야에선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낮밤 동안 이들을 보호하고 인도한다.

지질학자 좌용주 교수 『테라섬의 분화, 문명의 줄기를 바꾸다』

워낙 드라마적 요소와 신비한 이적이 많이 등장하다 보니 『출애굽기』에 기록된 이 내용은 하나의 신화 또는 종교적 상징 정도로 받아들여져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자연과학과 고고학이 발달하면서 엑소더스가 마냥 허구만은 아니라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최근 발간된 『테라섬의 분화, 문명의 줄기를 바꾸다』는 기원전 16세기경 그리스 남부 테라섬(오늘날의 산토리니섬)에서 벌어진 대규모 화산폭발에 엑소더스와 아틀란티스 설화가 결정적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학술적으로 치밀하게 분석한 책이다.

과거 테라섬으로 불린 산토리니섬 [네이버 지도]

과거 테라섬으로 불린 산토리니섬 [네이버 지도]

예를 들어 『출애굽기』에서 등장하는 열 가지 재앙에 나타나는 우박, 불, 뇌성 등은 화산으로 인한 기상학적 현상이며, 아홉 번째 재앙인 '흑암'은 화산재가 짙은 먼지층을 형성해 대기를 덮으면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12일 저자인 좌용주 경상대 지질학과 교수에게 책에 대해 직접 들어봤다.

-모세가 홍해를 가른 것도 테라섬의 화산 폭발로 설명이 될까
=고대 그리스나 로마 시대 기록에도 화산 폭발 후 엄청난 쓰나미 현상이 발견된다.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칼데라에 바닷물이 채워지면서 해안선이 순식간에 넓어졌다가 칼데라를 채우고 나면 바닷물이 다시 해안선 일대로 대규모로 닥쳐오는 현상이다. 홍해(Red Sea)는 '갈대의 바다(Reed Sea)'를 잘못 오역한 것인데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건너던 곳은 지금의 홍해가 아니라 나일강과 바다가 만나는 하구의 습지였을 것이다.

-열 가지 재앙을 화산 폭발과 그로 인한 자연적 재해로 설명했다.
=예를 들어 첫번 째 재앙을 보자. 모든 나일강의 물이 핏빛으로 변했고 물고기들이 죽었다, 이는 테라섬 분화로 생긴 쓰나미가 1시간 이내에 이집트 델타에 도착했고, 이로 인해 물의 식수원이 오염되고 물의 산소 함량이 증가시키는데 이는 물고기들을 죽이기에 충분했다. 또 화산재는 엄청난 도성이 있는 적조의 증식을 야기하는데 이런 것들이 쓰나미에 함께 왔다.

영화 '십계' [중앙포토]

영화 '십계' [중앙포토]

-광야를 헤맬 때 낮에는 구름기둥이 더위를 막아주고, 밤에는 불기둥이 길을 밝혀줬다고 한다. 화산하고 어떤 연관이 있나?
=화산 분화가 일어날 때 형성되는 뜨거운 화산재와 화산가스로 이루어진 기둥 모양 구름을 분연주라고 한다. 이것이 공중으로 수 킬로미터까지 치솟을 수 있다. 그런데 테라섬의 화산 폭발이 이집트 지역에서 그렇게 보이려면 그 기둥 높이가 100㎞ 이상이어야 한다. 그런데 테라섬 분화 때의 높이는 36~38㎞라고 한다. 그러니까 실제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동할 때 그런 현상이, 그것도 40년이나 지속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이것은 실제 자연현상을 관찰한 게 아니라 종교적 징표로써 성서에 기록됐다고 생각한다. 다만 테라섬의 분화는 동지중해 지역 사람들에게 분명 큰 인상을 남겼기 때문에 그것이 구전되면서 엑소더스 이야기에 후대 반영됐을 가능성은 있다.

아브라함의 이동과 엑소더스의 주요 무대 [중앙포토]

아브라함의 이동과 엑소더스의 주요 무대 [중앙포토]

-이집트에는 왜 그렇게 이스라엘 사람들이 많았을까.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과거엔 지금처럼 건조하지 않았다. 기온이 지금보다 1~3도 가량 높았던 6000~8000년 전에는 적도수렴대가 이 지역에서 비를 많이 뿌렸다. 그런데 온도가 낮아지면서 적도수렴대가 점차 남하했고, 이 지역도 건조해졌다. 성서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갈데아 우르를 떠난 것도 비를 쫓아온 것이다. 당시 이들은 농경과 유목을 복합적으로 했는데 양 떼를 먹이는 풀도, 경작에 필요한 물도 필요하다 보니 비 내리는 기후를 찾아 가나안, 이집트로 남하한 것이다. 당시 이집트에는 그렇게 아시아에서 흘러들어와 정착한 사람들이 많았다.

-이 책은 아틀란티스에 대해서도 다뤘다. 아틀란티스가 대서양이 아닌 지중해 크레타섬에 있었던 미노아 문명을 가리킨 것으로 보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아틀란티스가 솔론이라는 인물이 살던 시대에서 9000년 전에 있었고 리비아와 아시아를 합친 것보다 크다고 했다. 그런데 이는 전승 과정에서 나온 실수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스에서 사용한 알파벳도 시기에 따라 다른데 '더 크다'와 '사이의 중간'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의 발음이 흡사하다. 9000년 전이 아니라 900년 전, 리비아와 아시아를 합친 것보다 큰 것이 아니라 리비아와 아시아의 사이에 존재했다면 크레타섬 일대일 가능성이 크다. 화산 폭발로 인한 지진과 쓰나미가 결정적 타격을 줬다고 본다.

좌 교수는 지질학회 이사이면서 고고학과 역사를 연계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에게 백두산 화산과 발해의 멸망 연관성을 물어봤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함께 백두산을 오른 2018년 9월 20일 장군봉에서 바라본 천지.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함께 백두산을 오른 2018년 9월 20일 장군봉에서 바라본 천지.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일각에선 발해의 급작스러운 멸망이 백두산의 화산 폭발에서 기인했다고 보기도 한다.
=백두산 화산 폭발은 946년으로 판명이 났고, 발해의 멸망은 926년이다. 20년의 차이가 나기 때문에 직접 연관성은 없다고 본다. 다만 연구 결과로는 946년 이전 9세기에도 몇 차례 소규모 화산활동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래서 잦은 화산활동이 발해의 국력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은 있다. 예를 들어 발해는 수도를 자주 옮겼는데, 이것은 화산활동과 어떤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한다.

좌 교수는 "성서의 이야기를 허구라고만 생각하기보다는 당대 기후변화나 자연과학적 현상과 맞춰보면 보다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지구의 환경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추적하고 그것을 인문학, 특히 역사와 융합하면 인간의 문명이 어떻게 진화하고 성장했는지 더욱 정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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