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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이 칭송한 베를린 '월세 상한제'…1년뒤 "재앙으로 판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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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시에서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임대료 상한제 정책이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법안 발효 1년 간 임대료는 내렸지만 주택난은 오히려 심각해졌다는 이유에서다. [EPA=연합뉴스]

독일 베를린시에서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임대료 상한제 정책이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법안 발효 1년 간 임대료는 내렸지만 주택난은 오히려 심각해졌다는 이유에서다. [EPA=연합뉴스]

1년 전 독일 베를린시가 부동산 해법으로 내놓은 '월세 상한제'가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월세는 어느 정도 잡았지만, 월셋집 공급도 뚝 끊기는 바람에 세입자들이 집 구하기가 어려워지면서다. '베를린의 실험'은 지난해 국내 정부·여당이 전·월세 상한제 입법을 밀어붙이며 모범사례로 내세우기도 했다.

1년간 임대료는 8~11% 하락했지만 #매물 급감에 집구하기 어려워져 #외곽으로 몰리며 인근 임대료 올라 #이코노미스트 "통제 실험 실패" #블룸버그통신 "재앙으로 판명돼"

2019년 베를린 시 정부는 5년간 임대료를 통제한다는 파격적인 법안을 내놨다. 10년 새 임대료가 두 배 이상으로 오르자 나온 대책이었다.

논란 끝에 법안은 지난해 2월 23일 발효됐다. 이에 따라 베를린에서 2014년 이전에 지어진 주택의 경우 임대료가 2019년 6월 기준으로 사실상 동결됐다. 다만 2022년부터는 물가상승률 수준인 약 1.3% 인상이 가능하다. 또 2014년 이전 지어진 주택의 임대계약을 새로 맺을 때는 1제곱미터당 9.8유로(2013년 당시 평균 임대료)를 임대료 상한선으로 설정했다. 약 150만채의 월셋집이 이 법안의 적용을 받았다.

하지만 파격적인 법안이 발효된 지 1년, 주요 언론이 매긴 중간 성적은 '낙제점'이다.

9일(현지시간)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베를린의 임대료 통제 실험은 실패했다”는 제목의 분석 기사 게재했다. 앞서 2일 블룸버그통신은 아예 "재앙(disaster)으로 판명됐다" 는 혹독한 평가를 담은 칼럼을 냈다.

공통적으로 지적한 문제점은 임대 매물의 급감이다. 또 베를린의 월세는 내렸지만 '풍선 효과'로 인근 도시의 월세는 올랐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에 따르면 베를린의 평균 임대료는 지난 1년간 7.8% 떨어졌다. 독일경제연구소(DIW)도 베를린 내 규제 대상 주택의 임대료가 약 11% 떨어졌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하지만 문제는 월셋집을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임대료 상한제로 베를린의 주택난이 훨씬 심해졌다”며 “임대 시장에 나오는  매물이 절반으로 줄었다”고 지적했다. 독일 부동산 사이트도 상한제의 적용을 받는 임대주택의 매물이 약 30% 감소한 것으로 집계했다. 집주인들이 주택을 임대하는 대신 직접 사용하거나, 매매에 나섰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규제를 피해 아예 집을 비워두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베를린에서 집을 구하기 어려워진 이들이 외곽으로 몰려가면서 ‘풍선효과’도 발생하고 있다. 베를린 인근 도시인 포츠담은 지난 1년간 평균 임대료가 12% 급등했다.

베를린시와 기차로 통근이 가능한 근교 포츠담은 지난 1년간 평균 임대료가 12%이상 상승했다. [AFP=연합뉴스]

베를린시와 기차로 통근이 가능한 근교 포츠담은 지난 1년간 평균 임대료가 12%이상 상승했다. [AFP=연합뉴스]

유럽 내 최대 부동산 기업인 보노비아의 최고경영자인 롤프 부흐는 “임대료 상한제는 성과는 별로 없고, 부수적 피해만 심각하다”고 밝혔다.

다만 베를린의 도시개발부 장관인 세바스찬 셸은 베를린의 임대료는 하락한 만큼 정책도 효과가 있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한편 베를린 입주자 협회의 위브케 베르너는 DW에 “아직 4년이 남은 만큼 상한제 효과를 논하기엔 이르다”고 말했다.

시행 1년이 지났지만 법적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임대업자들은 연방헌법재판소에 위헌 소송을 제기한 상태로 독일 헌재의 판결은 몇 달내 나올 예정이다. 만약 헌재가 임대료 상한제를 위헌으로 결정한다면 임대료 인상분이 소급 적용돼 세입자들은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위헌 결정 가능성에 대비해 임대계약 때 미리 추가로 낼 임대료를 합의해 놓는 이른바 ‘그림자 임대료’도 현지에서 통용되고 있다고 DW는 전했다.

석경민 기자 suk.gyeo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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