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에 이상 없어도 소화불량 시달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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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부룩하다, 부대낀다, 신트림이나 구역질이 난다'.

소화불량만큼 다양하게 표현되는 증세도 드물다. 누구나 한두번은 경험해봄직한 소화불량은 가장 대표적인 위장병의 증세다. 과거 속쓰림으로 표현되는 궤양이 가장 흔한 위장병이었으나 수년 전부터 위산분비 억제제 등 강력한 신약의 출현으로 지금은 속쓰림 증세는 현저히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소화불량은 현대의학조차 아직도 시원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소화불량의 뿌리가 '구조'가 아닌 '기능'에서 비롯되기 때문.

궤양의 경우 내시경으로 위를 살펴보면 구조적으로 점막이 헐고 파인 상처가 관찰된다. 그러나 소화불량은 내시경상 구조적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시경으로 바라본 위장은 정상이지만 심한 소화불량으로 고생하는 이들이 많다. 소화불량은 위장의 리드미컬한 움직임과 소화효소의 분비란 기능의 이상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즉 궤양이나 혹 등 구조적 이상은 없지만 음식물을 먹었을 때 위장이 움직임을 멈추거나 효소가 잘 분비되지 않으면 소화불량에 시달리게 된다.

위장의 기능을 주관하는 것은 자율신경이다. 자율신경이란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알아서 작동하는 신경. 과민한 자율신경을 유전적으로 타고나거나 후천적으로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면 자율신경이 혼란에 빠지면서 소화불량 증세가 나타난다. 소화불량을 극복하는 첫걸음은 혼란에 빠진 자율신경을 원래 리듬대로 돌려놓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음악감상이든 바둑이든 몸과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천천히 걷기와 심호흡을 권한다. 천천히 걷기와 심호흡은 잔뜩 성이 난 자율신경을 달래는 데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위장 자체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지 않을 필요도 있다. 정상인도 자신의 위장에 예민하게 주목하면 없던 소화불량도 생길 수 있다. 소화불량을 앓는 사람들은 식사 후 자신의 위장이 괜찮은지 강박적으로 확인하기보다 다른 일에 몰두하는 것이 좋다. 즉 소화불량 증세를 애써 무시하는 것이 정답이다.

음식은 규칙적으로 식사시간에 맞춰 소량씩 천천히 씹는 것이 좋다. 살코기 등 단백질이나 부드러운 곡류는 소화가 잘 되는 반면 기름 등 지방이나 채소 잎 등 거친 섬유소는 소화가 안 된다. 국 등 물이 많아 소화효소를 묽게 만드는 음식도 좋지 않다.

육개장 등 맵고 짠 국이나 삼겹살 등 기름이 많은 육류, 비빔밥처럼 거친 섬유소가 많은 식품은 소화에 좋지 않다. 소화불량이 심할 때는 의사와 상의해 소화효소제나 위장운동기능 촉진제 등 약물을 복용한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대전제는 위장에 혹이나 궤양 등 구조적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고려대의대 안암병원 내과 현진해 교수는 "소화불량은 환자가 느끼는 주관적 증세와 달리 객관적으론 특별한 후유증이 생기지 않고 섭생에 주의하면 잘 낫는 양성 질환이지만 위암의 경우에도 소화불량이 나타나므로 반드시 내시경으로 암이 없음을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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