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무 시달린 검찰 직원 자살은 업무재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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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중요사건들을 수사하는 검찰 특수부에서 격무에 시달리다 조울증 악화로 자살한 검찰 직원이 법원에서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았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김창석 부장판사)는 16일 검찰직원 A(사망당시 38세)씨의 유족들이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보상금 부지급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

대학 졸업 후 검찰 9급 직원이 된 A씨는 2000년 5월 7급 주사보로 승진하면서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검사실 참여계장으로 배치됐다.

A씨의 역할은 검사를 보좌하며 피의자나 참고인 조서를 작성하고 증거자료를 확보하는 일. 피의자 검거에 동원되기도 했다.

서울지검 특수부 수사는 2000년 5월부터 2003년 2월까지 ㈜나산 법정관리 비리, 농약함유 한약재 사건, 언론사 탈세 사건, 패스21 사건, 타이거풀스 주식인수 사건, 신앙촌 재개발 관련 뇌물 사건, 부천 범박동 재개발 비리, 계몽사 인수합병 금품사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진정, 고발 사건 등으로 끝없이 이어졌다.

1주일중 사나흘 가량 퇴근도 제대로 못하던 A씨는 2003년 3월 상대적으로 업무가 적은 공안부 검사실로 옮겨갔지만 7월 태국의 한 호텔에서 목을 매 자살하고 말았다.

2000년 10월부터 조울증으로 병원치료를 받아온 A씨는 조울증이 자살의 원인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공무원연금공단은 "선천적, 체질적 요인으로 자살했으므로 업무 연관성이 없다"며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행정법원 재판부는 그러나 "A씨는 수년간에 걸친 심한 업무 스트레스로 조울증이 악화되다 정상적 인식능력과 행위선택 능력이 저하돼 자살충동을 이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조울증은 우울증이 심할 때보다 회복기에 있을 때 자살위험이 더 높다"며 유족들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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