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속" 경고에 입찰 31% 급감···"건설사 1900개 페이퍼컴퍼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관계자들이 '광화문 재구조화 공사' 작업을 하고 있다. 세종대로 사람숲길 조성공사는 서울시가 발주한 사업이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는 관련 없음. [뉴시스]

지난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관계자들이 '광화문 재구조화 공사' 작업을 하고 있다. 세종대로 사람숲길 조성공사는 서울시가 발주한 사업이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는 관련 없음. [뉴시스]

市 공사 입찰 16%가 ‘서류뿐인 회사’

서울시에 등록된 건설사업자 1만3000여곳 중 1900여곳이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페이퍼컴퍼니’라는 분석이 나왔다. 서울시가 지난해 7월부터 발주한 공사에 입찰한 건설사업자를 대상으로 사전단속을 한 결과다. 이들 페이퍼컴퍼니는 법으로 정해진 기술능력과 자본금, 시설·장비 등을 제대로 갖추지 않아 부실시공 위험이 큰 데다 입찰 때 공정한 경쟁을 해치는 주범으로 꼽혀왔다.

서울시 “수주만 하고 편법 하도급”

서울시는 “지난해 7월부터 시가 발주한 공사에 입찰한 지역제한 경쟁 111개 건설사업자를 대상으로 사전단속을 한 결과 부적격업체 18곳(16.2%)을 적발했다”고 9일 밝혔다. 이들 기업은 건설산업기본법 10조에 따른 기술능력, 자본금, 시설·장비 등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건설공사를 따내기 위해 페이퍼컴퍼니를 만든 뒤 각종 불법행위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격증 빌리고, 자본금·설비 없는 경우도

지난 2014년 세종시 '모아 미래도 아파트 철근 부실시공 의혹'과 관련해 당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 직원들이 공사현장 특별점검에 나선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 2014년 세종시 '모아 미래도 아파트 철근 부실시공 의혹'과 관련해 당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 직원들이 공사현장 특별점검에 나선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프리랜서 김성태.

이중 지난해 12월 서울시 발주공사 입찰에 참여했던 A건설사는 서류상 전문면허 3개를 보유해 기술자 6명이 상시 근무해야 함에도 실제 근무자는 없었다. 또 기술자 중 일부는 6000여만원의 개인사업소득이 있는 것으로 조사돼 제3자가 A사에 면허를 빌려주고 직원인 척 꾸민 것으로 나타났다.

A사는 자본금이 없는데도 재무제표에는 6억원을 기재했다. 2001년 취득한 기계장치, 자동차 등이 감가상각이 완료돼 잔존가치가 ‘제로(0)’였는데도 허위로 기재한 것이다. 감가상각이란 기업의 설비 등이 시일경과에 따라 자본가치가 점점 소모되는 것을 말한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페이퍼컴퍼니가 공사만 수주하고 특정 업체에 하도급을 밀어주는 경우가 많다”며 “전문성 부족, 저가 기자재 사용 등 편법 때문에 부실시공 위험이 높다”고 말했다.

자본금 기준이 미달하자 허위로 잔고 증명서를 발급받은 사례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입찰에 참여한 B건설사는 “자본금을 가짜로 맞춰주겠다”는 투자 자문회사의 소개로 2억원을 실제 거래 없이 허위로 만들었다. 또 지난해 10월 입찰에 참여한 C건설사는 법에 명시된 시설·장비를 실제 보유하지 않았고, 기술자들은 법으로 정해진 윤리·실무 교육을 받지 않았다.

서울시, “영업정지 처분”…“자격증 대여는 등록말소”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서울시청 본청. [뉴스1]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서울시청 본청. [뉴스1]

서울시는 “적발된 업체에 대해 6개월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을 진행 중”이라며 “향후 타인의 국가기술자격증을 빌린 경우엔 등록말소 등 강력한 행정 조치를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국토교통부 등 관련 전문기관에선 서울시 등록 건설업체 1만2992개 중 약 15%를 페이퍼컴퍼니로 추정하고 있다. 서울시가 페이퍼컴퍼니의 입찰 참여를 막기 위해 공고문에 ‘건설업자 등록기준 실태점검을 하겠다’는 내용을 추가한 이후 입찰 참여업체가 31%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서울시는 3월부터 서울시 본청이나 사업소의 공사예정금액 2억원 이상 발주공사로 조사 영역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적발될 경우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이 내려진다.

한제현 서울시 안전총괄실장은 “올해 1월 1일부터 건산법 개정으로 종합건설업체와 전문건설업체가 상대 분야의 일감을 수주할 수 있게 ‘업역규제’가 없어진 만큼 건설업 등록 기준을 꼼꼼히 들여다볼 방침”이라며 “페이퍼컴퍼니의 부실시공, 안전사고, 건전한 업체의 수주 기회 박탈 행위 등을 근절하겠다”고 말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