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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진중권의 퍼스펙티브

진중권 "고무신 대신 공항...탄핵정부보다도 못한 문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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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가덕도에 관문 공항이 들어서면 하늘길, 바닷길, 육지길이 만나 세계적 물류 허브가 될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부산으로 내려가 이렇게 말했다. 이 행사에 당·정·청의 고위 인사들이 총출동했다. 노골적인 선거 개입이다. 재집권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집요한 의지가 엿보인다.

국민 53.6% 반대 가덕신공항 특별법, 60년대 매표정치의 회귀 #박근혜는 김해공항 확장 결정, 문 정부는 탄핵정부만도 못한 정권 돼 #무책임한 여권, 한심한 야당…매표의 대금은 결국 국민 세금으로 #공적 마인드라곤 전혀 없는 이들이 의원, 장관, 대통령 하는 나라

나라를 좀먹는 후견주의

이렇게 특정 집단에 재화를 제공하는 대가로 표를 얻는 행태를 ‘후견주의’(clientelism)라고 한다. 후견주의는 한정된 재화의 균등하고 효율적 배분을 저해한다. 당장은 제 지역에 떡고물이 떨어지니 좋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짓을 모든 지역에서 따라할 테니 그 피해는 결국 모두가 고루 입게 된다.

당에서 그 짓을 하면 대통령이 뜯어말려야 한다. 대통령직은 특정 정당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위한 자리다. 대통령이라면 국가의 미래를 위해 당리당략을 버릴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에게 결여된 것이 바로 그 소양. 기어이 이 나라 정치문화를 60년대 매표 정치로 되돌려 놓고야 말았다.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53.6%가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이 ‘잘못된 일’이라 대답했다. ‘잘된 일’이라는 응답은 33.9%. 대상지인 부산·울산·경남을 포함해 모든 곳에서 부정 여론이 우세한 가운데 엉뚱하게 신공항과 무관한 호남지역에서는 긍정적 여론이 우세했다. 여기서 이 사업의 정략적 성격이 드러난다.

신공항은 호남-PK 연대의 물적 토대를 만드는 사업이다. 게다가 PK와 TK의 분열까지 유도할 수 있으니 신의 한 수인 셈. 국민의 혈세로 제 표를 사는 파렴치한 매표행위지만, 이를 견제해야 할 야당도 선거를 치르려면 그 흐름에 편승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무책임의 정치가 보편화한다.

휴지가 된 국토부 보고서

진중권의 퍼스펙티브 그래픽=신용호

진중권의 퍼스펙티브 그래픽=신용호

국토부는 안전성·시공성·운영성·환경성·접근성·항공수요·경제성 등 7개 항목 모두에서 가덕신공항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바 있다. 부산시는 장기 침하가 50년간 35㎝ 진행될 거라 주장하나, 가덕도보다 여러 조건이 더 나은 간사이 공항도 22년 동안 13m가 침하됐다. 유지비가 10조원을 넘었단다.

근처로 빌딩 높이의 배들이 다닌다. 해수부에서 반대한다. 진해비행장과 공역도 겹친다. 공군도 반대한다. 외해라 바람은 세고 활주로는 40미터나 솟아있다. 공항이 항공모함이니 언더슛으로 아시아나기 샌프란시스코 공항 사고보다 끔찍한 참사가 예상된다. 국내선은 김해에 놔둔다니 돗대산 위험은 그대로.

거기에 가덕도에는 지형보전 1등급 지역이 6곳, 녹지자연 절대보존 지역 3곳, 동백꽃 군락지와 1㎞ 안에 낙동강 하류 철새 도래지가 있다. 환경부에서 반대하는 이유다. 원전 2년 연장도 참지 못해 불법을 저질렀던 투철한 환경론자들이 생태계의 보고를 파괴한다. 이게 정권이 자랑하는 ‘그린 뉴딜’인가?

건설비도 말이 7조 5억원이라 하나 실제로는 15조 8천억이 든다. 공항만 지으면 수요가 생기나? 김해공항의 물동량은 인천공항의 10%, 액수로는 5%에 불과하다. 20년 후 물동량이 60만 톤이라는 장밋빛 전망에 따라도, 280만 톤인 인천의 현재 물동량의 4분의 1도 안 된다. 세계적 허브와는 거리가 멀다.

입법농단, 180석의 입법독재

황당한 것은 대통령의 발언. “국토부가 책임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국토부 보고서에는 특별법을 수용하면 공무원의 ‘성실의무 위반’이 된다는 의견이 첨부돼 있다. 그런데 대통령이 공무원들에게 위법을 종용한다. 월성 원전 사건 때도 그렇게 “책임 있는 자세”를 가졌다가 공무원들이 구속됐다.

입법도 졸속이었다. 오죽하면 여당 의원의 입에서 “동네 하천 정비도 그렇게 안 한다.”는 말이 나왔겠는가. 김해신공항은 법적으로는 아직 살아 있다. 폐기되어도 신공항 입지는 새로 선정되어야 하고, 입법은 그다음의 일이다.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한 것은 자기들이 봐도 사업성이 없다는 얘기다.

“가덕도 신공항을 되돌릴 수 없도록 법제화하겠다.”(이낙연 대표) 예비 결과 사업성이 없어도, 사업타당성조사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아도, 환경영향평가에서 반환경적 사업으로 평가돼도 저 법이 있는 한 사업을 되돌릴 수가 없다. 이 나라에서는 비가역성의 열역학 법칙을 입법에 적용한다.

법률이 ‘올 마이티’하다는 말은 태어나서 처음 듣는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이 법은 하천·환경·항만·군사시설 등 관련 법률 31개를 일거에 무력화한다. 한마디로 법률들의 법률, 즉 헌법 아닌 헌법인 셈이다. 그 법의 전능함은 물론 180석의 전능함에서 나온다. 거의 제헌권력 수준의 입법 독재다.

도대체 왜 가덕도인가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의 타당성 연구에서 김해신공항은 818점, 밀양은 665점, 가덕도는 635점을 받았다. 그런데 국무총리실에서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이를 뒤집었다. 국가 사업을 재집권의 수단으로 악용하니 635점 짜리가 818점 짜리의 대안이 되는 해괴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당·정·청에서는 온갖 장밋빛 환상을 부풀리나 김해에 대한 가덕도의 비교우위는 딱 하나, 야간운항이 가능하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런던의 히드로, 암스테르담의 스키폴,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등 유럽의 대표적 공항들도 야간 운항을 제한·금지하고 있다. 그래도 허브 노릇 하는 데 아무 지장 없다.

활주로 한 줄이 김해에 있든 가덕도에 있든 차이라곤 야간운항이 가능한 것뿐인데 난리가 났다. “산업구조 재편의 기폭제”(김경수 경남지사)가 되고, “북극항로의 연중 이용이 현실화되고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연결되는 미래”(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가 열린단다. 북극항로와 횡단열차가 김해로는 연결이 안 되나?

가덕도 공항에 반대하는 것은 “지역 홀대”라고 선동을 한다. 사유실험을 해 보자. 부산시에서 주장하는 건설비 7조 5천억원을 주되, 공항의 건설·보수·유지 및 운영에 관한 일체의 권리와 책임을 부산시에 넘겨주는 것이다. 이 제안을 과연 그들이 받을까? 아마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붕괴되는 국가 시스템

그 사업이 세금 먹는 하마가 되리라는 것을 그들도 안다. 가덕도에 대한 집착은 외려 그 기대감(?)에서 나온다. 하지만 4대강에 뿌린 22조원은 지역민이 아니라 건설업자들의 배로 들어갔다. 표본수가 적어 신뢰하기 어렵지만 부·울·경에서도 54.0%가 특별법이 잘못된 일이라 답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이 정권은 절차와 질서를 파괴해 국가의 엔트로피를 정말 비가역적으로 증가시키고 있다. 국토부·환경부·해수부 등 정부 부처의 공식 의견은 무시됐다. 관련 31개 법률이 일거에 무력화됐다. 5개 시·도지사들 사이의 합의도 번복됐다. 국가 운영의 시스템 자체가 망가지고 있는 것이다.

선례가 만들어졌으니 앞으로 선거철마다 비슷한 특별법들이 계속 만들어질 게다. 대구·경북 신공항 특별법도 만들어 달란다. 우리 충청도는 핫바지인가? 발끈한 서산시장이 “충남도 찍소리”는 해야겠다며 민간공항 지어달란다. “특별법은 바라지도 않는다. 예타 면제 대상 사업으로라도 선정해 달라.”

철딱서니 없는 정치인들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조국 전 장관은 이렇게 말했었다. “선거철 되니 또 토목 공약이 기승을 부린다. 신공항 10조면 고교 무상교육 10년이 가능하며, 4대강 투입 22조면 기초 수급자 3년을 먹여 살린다.” 그랬던 그가 가덕도 신공항에는 ‘노무현 국제공항’이라는 이름까지 지어 바친다.

공구리도 남이 치면 나쁜 토목, 내가 치면 착한 토목이란다. 자기들이 비난하던 MB(이명박 전 대통령) 정권과 뭐가 다른가. 정의당 대표 시절 심상정 의원은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정한 것을 “박근혜 정권에서 한 일 중 가장 책임있는 결정”이라 평가한 바 있다. 이 정부는 어느새 탄핵 정부만도 못한 정권이 됐다.

당·정·청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고, 편승하는 야당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들이 매수한 표의 대금을 우리는 피 같은 세금으로 대신 치러야 한다. 공화국은 ‘공적 업무’(res publica)라는 뜻이다. 이 나라에선 공적 마인드라곤 전혀 없는 이들이 의원을 하고, 장관을 하고, 심지어 대통령을 한다. 고무신이 공항으로 바뀐 것을 ‘발전’이라 불러야 하나? 그래도 1960년대 정치인들은 고무신 뿌리는 데에 제 돈을 썼다. 요즘 정치인들은 그 일을 하는 데에 나랏돈을 쓴다. 빤한 부조리를 보고도 막을 길이 없다. 대통령부터 정치인들이 하나같이 저속하고 무책임하다. 제발 철 좀 들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