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품속으로 떠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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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시즌에 사람들이 주로 가는 곳은 산과 바다 계곡이다. 도시에서 살던 사람들도 며칠 시간이 주어지면 너나없이 자연을 찾아 간다. 늦잠이나 자고, 보지 못한 영화들을 찾아 감상하고, 느긋한 장거리 외식을 나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휴식이 될 터인데 무엇 때문에 가는 길 오는 길 밀려가며 굳이 ‘자연’을 찾아나서는 것일까.

여러 가지 사유가 있겠지만, 휴가가 주어지면 자연부터 찾아나서는 것은 역시 자연의 품 속이 편안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 이론으로 따져서가 아니라 거의 본능이 그러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자연을 찾는다는 것은 넓은 의미에서 일종의 ‘귀향’이다. 귀향은 지친 심신을 달래는 데 가장 좋은 보약이다.

옛 여인들은 한 번 외지로 시집을 가면 거의 친정 구경 한 번 다시 못하고 그곳에서 일생을 마치는 일이 허다했다고 한다. 강릉 오죽헌의 시립박물관에 가면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는 보기 드문 왕족 관련 유물이 보존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조선 현종 때 왕이 특히 사랑하던 딸 명안공주가 강릉의 해창위 오태주에게 시집을 갔는데, 오빠 숙종이 동생을 그리워하며 보낸 한글 편지를 비롯해 왕실의 단자며 각종 판본 등이 국가의 보물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다. 대관령을 넘는 험하고 먼 길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무리 왕족이라도 한 번 출가외인이 된 뒤에는 함부로 친정을 오가지 못하고 오매불망 편지로만 혈육의 정을 나누었던 것을 유추해 알 수 있다.

시집간 여자가 다시 고향 구경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는데, 이유없이 시름시름 앓는 경우가 간혹 예외에 속했다고 한다. 이런 때는 고향에 소식을 보내면 친정 아버지가 고향쌀을 지고 방문하는 풍습이 있었고, 간혹 난치병일 때는 아예 고향으로 돌아가 몸을 고칠 때까지 머물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객지에 몸이 묶인 여자가 이유없는 병을 앓을 때, 그 ‘심신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묘약이 바로 고향이었던 것이다.

고향이란 마음의 병을 고치고 몸의 기운을 새롭게 한다. 고향으로 갈 수 없을 때는 고향에서 자란 먹거리를 먹거나 혹은 고향사람을 만나 소식을 듣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이것이 신비로운 고향의 힘이다.

요컨데, 설사 자기가 나고 자란 고향이 아니더라도, 여름 휴가와 같은 휴식의 기회가 주어질 때 사람들이 시골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일종의 귀향과 같은 행동이란 것이다.

동물에게는 ‘귀소본능’이라는 게 있다. 사람이 지쳤을 때 고향을 찾는 본능도 그와 관련이 있다. 귀향은 반드시 오래지 않아도 좋다. ‘일시적 안식’만을 취해도 사람은 충분히 기운이 새로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광고 카피도 있지만, 정말 홀가분하게 떠나볼 일이다. 자연의 품안에서 한껏 재충전을 하고 돌아와 다시 현실의 파고에 힘껏 부딪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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