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치의, 두고 계십니까

중앙일보

입력

의사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 곤란한 질문을 받을 때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병에 유명한 의사가 누구냐"는 것이다. 전공은 틀려도 같은 의사 일(?)을 하고 있으니 입소문으로 듣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 사람의 병력이나 질환을 모르는 상태에서 무턱대고 '유명한 의사'를 소개할 수도 없는 일이어서 "일단 주치의에게 먼저 가보라"고 얘기하면, 대개는 그다지 신통치 않은 반응을 보인다. 이유를 물으면, "주치의가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그래서 "동네에서 자주 가는 병원의사가 바로 주치의"라고 얘기하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끝을 흐린다.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주치의 제도 활성화를 위한 움직임이 있어 왔지만, 여전히 동네의 개인의원보다는 규모가 큰 대학병원의 유명 교수를 신뢰하는 듯하다. 물론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옛말에도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 못하다'고 했다. 몸에 이상이 있을 때 최고의 의사를 찾아가서 최상의 치료를 받고 싶은 마음이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역시 가장 큰 문제는 의료전달 체계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몰이해가 아닐까 싶다.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한 지인이 술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피부에 조그만 반점이 생겨 동네의 작은 의원을 찾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어떤 질병인지를 속시원히 알려주지 않았고, 좀더 큰 규모의 지역병원을 찾게 됐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이런 저런 질환들이 의심되기는 하나 확실치 않으니 대학병원에 가보라며 진단서를 써 주었다고 한다. 그는 결국 대학병원에서 질환을 완치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동안의 시간낭비에 대해 매우 화가 났다. 그래서 의사에게 "지금까지 의원이다 병원이다 찾아다니며 헛수고를 했다"며 "왜 사람들이 전부 대학병원으로 가려고 하는지 알 것 같다"고 불만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는 그 의사의 얘기를 듣고 나서 자신의 생각이 잘못됐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 의사는 "이곳에 처음 왔다고 해도 그 정도의 시간이 걸렸을 것이고, 내가 쉽게 병명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의사들이 써 준 진단서에서 의심되는 병들의 범위를 좁혀주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서민의 주치의를 담당하게 되는 동네 개원의와 대학병원 전문의들의 역할은 분명히 다르다. 주치의는 한 사람의 전체적인 건강을 책임지는 역할을 하고, 전문의는 특정한 병에 대해 전문적인 치료와 연구를 담당한다. 주치의는 병이 깊어지기 전 조기에 이를 잡아내 대학병원 전문의에게 연결을 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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