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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도 엄마·아빠 찬스였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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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스포츠팀장

장혜수 스포츠팀장

2016년 10월, 박근혜 정부의 ‘비선 실세’로 불리던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의 딸 정유라는 소셜미디어에 글 하나를 올렸다. ‘있는 우리 부모 가지고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고, 돈도 실력이야’. 이에 앞서 같은 달 열린 서울지방경찰청 국정감사의 주요 쟁점은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 아들의 부속실 운전요원 특혜선발 의혹이었다. 이 자리에서 청장 부속실장은 “(우 수석 아들이) 운전이 정말 남달랐다. 요철을 스무스하게 넘어가고 코너링도 좋았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이들 장면은 ‘엄마(아빠) 찬스’라는 말이 퍼진 계기가 됐다.

‘촛불 혁명’을 거쳐 정권이 바뀌었다. 2019년 8월 조국 당시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 후보에 지명됐다. 가족 관련 의혹이 불거졌다. 가장 크게 주목받은 건 인턴 활동, 장학금, 대학(원) 입시 등 자녀 교육 관련 논란이었다. 사회 계층을 대물림하는 다양한 ‘길’이 그곳에 있었다. 같은 해 12월 추미애 법무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아들의 군 휴가 미복귀 및 무마 의혹이 다뤄졌다. ‘부득이한 사정 때는 전화로도 휴가 연장을 요청할 수 있다’는 걸 몰랐던 군필자들이 땅을 쳤다. ‘엄마(아빠) 찬스’라는 말이 3년 만에 소환된 장면들이다.

흥국생명의 쌍둥이 자매 이재영(왼쪽)과 이다영. [연합뉴스]

흥국생명의 쌍둥이 자매 이재영(왼쪽)과 이다영. [연합뉴스]

최근 스포츠계 및 연예계 ‘학폭’(학교폭력) 폭로가 잇따랐다. 시발점은 여자배구 흥국생명 이재영·다영 쌍둥이 자매를 겨냥한 폭로였다. 중학교 시절 함께 운동한 거로 추정되는 폭로자는 피해 상황과 내용을 구체적으로 털어놓았다. 며칠 뒤 ‘배구 피해 학생 학부모입니다’라는 또 다른 폭로가 이어졌다. 폭로자는 “시합장 학부모 방에서 김경희(이재영·다영의 어머니) 씨가 자기 딸에게 (코칭)하는 전화 소리를 들었다”고 작전 지시 의혹을 제기했다. 김씨는 배구 국가대표를 지냈다. 팀 전술 개입까지는 몰라도, 인맥을 중시하는 한국 스포츠 풍토에서 김씨가 자매 성장의 든든한 배경, 즉 ‘엄마 찬스’가 됐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스포츠계에 부자, 모녀 선수가 많다. 그들도 ‘엄마(아빠) 찬스’에서 자유롭다고 말하기 쉽지 않을 거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최근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과도하게 개입하고, 막대한 시간을 투입하며, 통제적인 육아 방식’을 과보호 학부모의 특징으로 봤다. ‘그런 부모 노릇은 불평등이 증가하고 교육으로 인한 보상이 커진 데 따른 합리적 대응’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는 ‘가장 심했던 곳은 불평등이 가장 크게 두드러진 곳이었다. 가령 미국이나 한국 같은 나라’라고 지적했다.(280쪽) 샌델 교수 얘기를 뒤집어 보면 ‘과보호 학부모, 즉 부모 찬스의 정도가 불평등의 척도’라고 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 속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는 결국 구두선으로 끝날 것인가.

장혜수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