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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전 운동화가 7700만원···주식 뺨치는 '스니커테크'의 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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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이 제품은 7700만원이고, 이 제품은 1150만원입니다.”

보석이나 시계 얘기가 아니다. 운동화 얘기다. 금을 붙인 것도 아닌데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운동화라니, 무슨 일일까. 오는 26일 정식 개장하는 여의도 ‘더 현대 서울’ 지하 2층에 자리한 ‘브그즈트 랩(BGZT LAB)’에서 이 운동화들을 직접 볼 수 있다. 브그즈트 랩은 중고 거래 플랫폼인 번개장터가 만든 오프라인 공간으로, MZ세대가 열광하는 한정판 운동화를 테마로 공간을 꾸몄다.

26일 정식 개장하는 서울 여의도 '더 현대 서울' 지하 2층에 위치한 브그즈트 랩. 한쪽 벽면이 한정판 운동화로 채워져있다. 사진 번개장터

26일 정식 개장하는 서울 여의도 '더 현대 서울' 지하 2층에 위치한 브그즈트 랩. 한쪽 벽면이 한정판 운동화로 채워져있다. 사진 번개장터

예술작품처럼 운동화 전시, 판매도 동시에

119㎡(약 36평)의 공간 중 한쪽 벽면에는 시세가 수백만 원대에 이르는 전설적 스니커즈 216족이 전시되어 있다. 혹여나 손상될까 봐 비닐 랩으로 고이 코팅된 운동화들은 마치 예술 작품처럼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중고 스니커즈 시장 달아올라 #큰손은 20~30대 주축 MZ세대 #희소가치 높은 한정판에 열광 #서울옥션블루·네이버 등도 앱 출시

매장 한가운데는 아예 예술 작품처럼 단을 세워 놓고 운동화를 전시했다. 일명 ‘포디움’으로 불리는 이곳에는 현재 시세가 7700만원에 이르는 ‘나이키 덩크 SB로우 스테이플 NYC 피존’ ‘나이키 에어이지2 레드옥토버(시세 약 1600만원)’ ‘나이키 마스야드 1.0(시세 약 1450만원)’ ‘나이키 에어 디올 조던1 하이(시세 약 1150만원)’ 등 현재 가장 희귀하고 소장가치 있는 스니커즈 12족이 전시되어 있다.

디자이너 제프 스테이플과 나이키가 협업해 만든 '덩크 SB 로우 스테이플 NYC 피존.' 2005년 150족 한정 발매돼 현재 시세가 7700만원에 이른다. 유지연 기자

디자이너 제프 스테이플과 나이키가 협업해 만든 '덩크 SB 로우 스테이플 NYC 피존.' 2005년 150족 한정 발매돼 현재 시세가 7700만원에 이른다. 유지연 기자

중고 거래 플랫폼 번개장터가 첫 번째 오프라인 공간을 열면서 주요 테마로 ‘한정판 스니커즈’를 선택한 이유는 중고 시장에서 스니커즈가 갖는 상징성이 크기 때문이다. 단순한 운동화 한 켤레가 아니라, MZ 세대 사이에서 ‘가치 있는 재화’로 취급되는 스니커즈와 스니커즈 리셀(resell·재판매) 문화를 조명해보겠다는 의도다. 실제로 국내·외를 막론하고 중고 스니커즈 시장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시작은 지드래곤, ‘응모나 해볼까’ 일반인도 가세

국내서 스니커즈 리셀 문화가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2019년 나이키 에어포스1과 가수 지드래곤의 브랜드 ‘피스마이너스원’이 협업해 만든 한정판 운동화 ‘파라노이즈’ 덕이다. 이 운동화는 818족 한정판으로 발매돼 리셀 시세가 60배 이상 오르기도 했다. 명품 브랜드와 협업한 제품이 아닌 이상, 나이키·아디다스 등에서 출시되는 일반 운동화는 비싸야 20만 원대다. 한정판 운동화는 보통 ‘래플’ 등 추첨 방식을 사용해 응모를 받아 판매한다. 수량이 정해진 한정판 운동화 시장에서 중요한 건 출시 가격이 아니라 시세다. 해당 운동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가격은 오른다.

1982년 출시 이후 스트리트 패션과 문화의 상징이 된 에어포스1과 지드래곤의 만남으로 화제가 되었던 '나이키 에어포스1 파라노이즈'. 사진 나이키

1982년 출시 이후 스트리트 패션과 문화의 상징이 된 에어포스1과 지드래곤의 만남으로 화제가 되었던 '나이키 에어포스1 파라노이즈'. 사진 나이키

출시 가격의 몇십 배씩 가격이 오르자 요즘은 스니커즈에 관심이 없던 일반인들도 스니커즈 구매에 열을 올리는 실정이다. 일명 ‘스니커 테크’다. 한정판 운동화가 발매된다는 소식에 ‘일단 응모나 해보자’는 이들도 가세하면서 가격이 더 오르는 기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가장 화제였던 명품브랜드 ‘디올’과 나이키가 만나 출시된 ‘에어 디올조던1’의 경우 전 세계 8000족이 일반 소비자들에게 추첨 방식으로 풀렸다. 디올 측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이 추첨에 응모한 사람만 500만 명에 달했다.

지난해 단연 화제였던 한정판 운동화, 에어 디올 조던1. 사진 나이키

지난해 단연 화제였던 한정판 운동화, 에어 디올 조던1. 사진 나이키

전문 중개 플랫폼선 주식처럼 시세 그래프

엑스엑스블루에서 볼 수 있는 조던 1 레트로 하이의 시세 정보. 사진 엑스엑스블루

엑스엑스블루에서 볼 수 있는 조던 1 레트로 하이의 시세 정보. 사진 엑스엑스블루

주로 온라인 카페 등을 통해 개인 간 거래되던 스니커즈 리셀 시장에 전문 중개 앱이 등장하면서 시장은 더 확대되는 양상이다. 2019년 9월에 서울옥션블루에서 한정판 거래 플랫폼 ‘엑스엑스블루’를, 지난해 1월에는 네이버 자회사 스노우가 ‘크림’을 만든 데 이어, 지난해 7월엔 온라인 패션 편집숍 ‘무신사’가 ‘솔드아웃’을 차례로 출시했다. 개인 간 거래에 이들 업체가 개입해 진품 여부를 판별하고 품질 검수를 거쳐 배송까지 해주는 서비스다.

엑스엑스블루에 따르면 앱 출시 이후 회원 수가 꾸준히 증가해 현재 23만명을 기록 중이다. ‘솔드아웃’에서도 2020년 12월부터 매주 진행하는 한정판 판매 이벤트 ‘위클리 래플’ 누적 응모자가 50만 명에 달한다. 해외선 지난해 말 기준 기업 가치 3조원 가까이 인정받고 있는 ‘스톡엑스’가 선두다. 스니커즈 거래를 마치 홈트레이딩 앱으로 주식을 사고파는 것처럼 만든 플랫폼으로 제품마다 시세 그래프가 존재한다.

스톡엑스에서도 제품마다 시세 추이를 볼 수 있다. 사진 스톡엑스 홈페이지

스톡엑스에서도 제품마다 시세 추이를 볼 수 있다. 사진 스톡엑스 홈페이지

스니커즈는 문화상품, 이미 예술품 반열에

스니커즈 리셀 시장의 큰손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다. 엑스엑스블루에 따르면 이용자 연령대 중 20·30세대가 80% 이상이다. 특히 25~35세가 가장 많다. 최재화 번개장터 마케팅 총괄은 “MZ세대들은 명품 가방만큼 희소가치 높은 한정판 스니커즈에 열광한다”며 “단순한 운동화 한 켤레가 아니라 문화적 가치가 깃든 상품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나이키·아디다스가 마이클 조던과 같은 전설적 운동선수, 건축 디자이너 톰 삭스, 혹은 명품 브랜드 디올 등과 끊임없이 협업하는 이유다.

이미 거의 예술품의 반열에 오른 운동화도 있다. 지난해 5월 글로벌 경매업체 소더비에서는 나이키의 '에어조던1'이 56만 달러(약 6억2000만원)에 낙찰된 바 있다. 1985년 제작돼 마이클 조던이 착용했던 신발로, 운동화 경매 사상 최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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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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