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 후보, 제67대 미 국무장관, 퍼스트레이디, 뉴욕주 상원의원까지. 힐러리 클린턴(74)을 수식해온 단어는 많지만, 하나가 더 늘었다. 추리소설 작가다.
2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클린턴 전 장관이 캐나다 유명 추리소설 작가 루이스 페니(63)와 함께 정치 스릴러 소설 『스테이트 오브 테러(State of Terror)』를 집필한다고 보도했다. 두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역할을 나눌지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NYT는 “클린턴의 백악관과 국무부에서의 경험과 페니가 펼치는 중독성 강한 서사를 바탕으로 소설이 쓰일 것”이라고 전했다. 책은 올 10월 발간 예정이다.
CNN이 소개한 책 줄거리에 따르면, 소설의 주인공은 한때 정적(政敵)이었던 대통령의 행정부에 합류한 신임 국무장관이다. 이전 대통령이 집권한 4년 동안 세계 무대에서 미국의 위상은 한없이 추락했고, 테러까지 벌어져 국제 정치는 혼돈에 빠졌다. 세계가 미국의 새 리더십을 주목하는 가운데 각종 치밀한 음모가 펼쳐지면서 주인공은 이를 해결할 팀을 구성하게 된다.
소설 속 설정은 클린턴이 겪어온 현실 정치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그는 2009~2013년 버락 오바마 1기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냈다. 한때 대권을 놓고 격렬히 맞붙었던 경선 라이벌 오바마 대통령과 한배를 탔다. 이 점이 소설의 주인공과 오버랩된다. 클린턴이 자신의 경험을 많이 녹였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NYT는 출판사 측이 “오직 내부자만 알 수 있는 디테일로 구성된 막후 드라마”라고 홍보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소설에서 미국의 국제사회에서의 역할은 축소된 것으로 묘사된다. 이점을 들어 CNN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클린턴의 시각도 담길 것”이라 전망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란과의 핵 합의(일명 JCPOA)는 물론 파리기후협약 등에서 탈퇴하며 '세계의 경찰' 역할을 버렸다. 트럼프에 대한 힐러리의 감정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힐러리와 트럼프는 2016년 대선에서 맞붙었고, 결과는 힐러리의 패배였기 때문이다.
공동 저자로 나선 루이스 페니는 18년 동안 라디오 진행자 겸 언론인으로 활동하다 작가로 전향했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추리물을 주로 썼다. 『가장 잔인한 달(The Cruelest Month)』과 『냉혹한 이야기(A Brutal Telling)』 등 대표작은 23개 언어로 출판됐다. 힐러리와는 2016년에 친해졌다고 한다. NYT에 따르면 힐러리는 2017년 펴낸 자서전 『무슨 일이 있었나(What Happened)』에서 “대선에서 패배한 뒤 페니의 책을 읽었다”며 “그의 스릴러 소설을 읽고 샤르도네(화이트 와인)을 마시고 요가를 하며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저명한 정치인과 소설가가 함께 소설을 쓰는 건 이례적이지만, 처음은 아니다. 힐러리의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이미 2018년 작가 제임스 패터슨과 『대통령이 실종되다(The President Is Missing)』란 추리 소설을 펴냈다. 이 책은 북미 전역에서 200만부 이상 팔리면서 그해 가장 잘 팔린 성인 소설로 꼽히기도 했다. 두 사람은 올해 여름 전직 대통령의 딸이 납치된다는 내용의 『대통령의 딸(The President‘s Daughter)』의 발간도 앞두고 있다. NYT는 “힐러리와 빌 모두 스릴러·미스터리 장르의 팬”이라고 전했다.
힐러리는 앞서 논픽션 책을 여러 권 펴낸 경험이 있다. 그는 2014년 회고록 『힘든 선택들(Hard Choices)』를 통해 국무장관으로서 겪었던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세계 금융위기, 북한과의 긴장 관계를 풀어냈다. 자신의 유년기부터 영부인으로서의 삶을 돌아본『살아있는 역사(Living History)』에서는 남편의 성 추문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 특히 주목받았다. 백악관 인턴이었던 모니카 르윈스키와 남편의 성 추문에 대해 그는 당시 "남편의 고백을 들은 직후 나는 숨을 쉬는 게 어려울 정도로 힘들었다"며 "울면서 '왜 내게 거짓말을 했느냐'고 소리를 질렀다"고 적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