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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물가지표 일제히 뛴다고 속지마라? “인플레 아닌 리플레”

중앙일보

입력

주요 물가지표가 오름세를 나타내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디플레이션(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 가능성, 구조적인 저물가를 걱정하던 지난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이는 지난해 경기침체에 따른 기저효과와 글로벌 경기회복 기대가 반영된 단기적인 현상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3대 물가 지표만 보면 한국 경제에 인플레이션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24일 통계청ㆍ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지난달 생산자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0.9% 상승했다. 4년 만에 최대 상승 폭이다. 생산자물가지수는 원자재, 중간재 가격, 제품 출고가 등을 반영하는 지표로 소비자물가의 선행지표로 여겨진다.

지난달 수입물가지수 역시 전월 대비 2.8% 오르며 2개월째 2%대 상승했다. 역시 소비자물가를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소비자물가는 지난달 전월 대비 0.8% 올랐는데, 최근 유가ㆍ농식품 가격이 반영되면 이달에 오름세를 키울 가능성이 크다.

3대 물가지표인 소비자ㆍ생산자ㆍ수입물가가 동시에 2개월 연속 상승한 것은 2019년 4~5월 이후 약 2년 만에 처음이다. 향후 1년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대한 전망인 ‘기대인플레이션’은 이달 2.0%로 1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여기에 미국 등 주요국에서도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재난지원금 같은 대규모 재정부양책에 따라 유동성이 확대된 점도 인플레이션 압력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진 급격한 인플레이션보다는 리플레이션(reflation)이 나타날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리플레이션이란 물가가 점진적으로 상승하지만 심각한 인플레이션에 이르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인플레이션이 가속할지는 ‘물가가 올라 임금이 오르고, 다시 물가가 이를 따라 오르는’ 연속적인 상승작용을 봐야 하는데, 이런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고 짚었다. 하 교수는 “재난지원금 지급, 농수산물의 공급 애로 등이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는 있겠지만 우려할 수준의 인플레이션인지는 의문”이라면서 “경기 회복 과정에서 나타나는 리플레이션이라고 보는 게 맞다”라고 덧붙였다.

"'나쁜 인플레 아닌 좋은 인플레" 의견도

시중에 유동성이 많이 풀린 데 따른 잠재적 위험일 뿐, 인플레이션 압력이 현실화하진 않았다는 의견도 많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의 경우 지난해 성장률이 워낙 안 좋았고, 올해 빠르게 경제를 회복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게 된 것”이라며 “반면 한국은 지난해 선방한 덕에 올해 성장이 상대적으로 완만할 것으로 보이는데, 물가도 이에 맞춰 서서히 오를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도 “생활필수품 가격이 올랐다는 점에서 체감 물가가 올랐다고 느낄 수 있지만, 실제 소비자물가는 별로 오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세계 주요국에서 나타나는 인플레이션 조짐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판단하는 분위기다. 김성택 국제금융센터 전문위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경기부양책ㆍ백신접종 등으로 리플레이션이 진행되고 있다”며 “(해외 투자은행의) 컨센서스는 ‘좋은 인플레이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공급 축소나 비용 상승에 따른 '나쁜' 인플레이션이 아닌, 수요 회복과 경기회복 기대감을 바탕으로 하는 자연스러운 인플레이션이라는 의미다.

다만 국내외 증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심화하면 금리를 올려야 하는데, 이것이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고 주식의 상대적 이익률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다. 뉴욕ㆍ유럽증시와 한국 증시는 인플레이션 경고음이 커지면서 최근 기세가 한풀 꺾였다.

세종=손해용ㆍ임성빈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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