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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통위 불참 이낙연 급소환 왜? 안건 강행조차 제대로 못 한 여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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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는 22일 전체회의를 열고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3건에 대한 비준동의안을 여당 단독으로 의결했다. [연합뉴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는 22일 전체회의를 열고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3건에 대한 비준동의안을 여당 단독으로 의결했다. [연합뉴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3건에 대한 비준 절차가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인 외교통일위원회 문턱을 넘었다. 외통위원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반발하는 야당을 제외한 채 이를 강행처리했는데, 정작 외통위원인 이낙연 당 대표의 불참으로 한때 정족수가 부족해 외부 일정을 소화중인 이 대표를 급히 부르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외통위는 22일 전체회의를 열고 ILO 핵심협약인 29호(강제 또는 의무 노동에 관한 협약)·87호(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협약)·98호(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협약) 비준동의안안 3건을 의결했다.

국회 외통위, ILO 핵심협약 3건 의결 #국민의힘 "절차적 흠결" 항의 후 퇴장 #정족수 부족, 이낙연 대표 호출 해프닝

국민의힘은 ILO 핵심 협약의 관련 법안인 노동관계법 개정안이 지난해 12월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 처리된 데 대한 ‘절차적 흠결’과 ‘협약 비준으로 인한 노사 불균형’을 주장하며 회의장을 단체로 퇴장했다. 핵심 협약 비준 시 실업자·해고자 등의 노조 가입이 허용되면서 노사 간 갈등을 유발한다는 주장이었다. 외통위 야당 간사인 김기현 의원은 이날 “ILO 협약 비준동의안이 노사 양측을 보호하는 대처수단으로서 균형성을 갖췄는지에 대한 정부 측의 충분한 자료 제공이 없었다”고 항의했다.

"통상 문제로 비화" vs "절차적 흠결"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 현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 현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ILO는 노동자의 기본적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항을 190개 협약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이 중 8건은 반드시 지켜져야 할 협약이라는 의미에서 핵심협약으로 지정했는데, 한국은 현재 아동 노동 금지 등 4개 협약만 비준한 상태다.
한국의 ILO 핵심협약 미비준은 과거 외교 문제로 비화하기도 했다. 유럽연합(EU)은 2019년 한국이 ILO 핵심협약과 관련한 국제규범 의무를 이행하고 있지 않다며 전문가 패널 소집을 요청했다. 전문가 패널 소집은 한-EU 자유무역협정(FTA) 제13장에 따른 분쟁 해결 절차의 마지막 단계다. 국민의힘의 반대에도 민주당이 ILO 기본협약 비준을 강행한 데는 이 문제가 자칫 EU와의 통상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정부의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정족 수 부족 "이낙연 대표 데려와라" 

국민의힘 소속 국회 외통위원들은 22일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동의안에 대한 여당 강행 처리에 반발해 회의장을 집단 퇴장했다. 오종택 기자

국민의힘 소속 국회 외통위원들은 22일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동의안에 대한 여당 강행 처리에 반발해 회의장을 집단 퇴장했다. 오종택 기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항의하며 집단 퇴장하자 민주당은 여당 단독으로 비준안 의결을 시도했다. 하지만 정족수 부족으로 비준안을 의결하지 못한 채 전체회의가 사실상 중단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안건을 의결하기 위해선 총 21명의 외통위원 중 과반인 11명 이상이 회의에 출석해 안건에 찬성해야 하는데 이날 전체회의에 출석한 민주당 의원은 송영길 위원장을 포함해 9명뿐이었다. 전해철 의원이 행정안전부 장관이 되면서 궐석 상태였고, 외통위원인 이낙연 대표는 이날 불참했기 때문이다. 외통위 회의는 오후 2시부터였는데 이 대표는 오후 2시10분부터 영등포구의회에서 민주당 소속 기초의원들과의 간담회에 참석 중이었다.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무소속 김홍걸 의원을 더해도 출석 인원이 과반에 미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에 이낙연 대표를 급히 호출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송영길 위원장이 의결을 선언하기 직전 외통위 관계자가 귓속말로 정족수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리자 "그럼 어떻게 해? 1명 더 있어야 해?" "(이낙연 대표)오기로 했어?"라고 말하는 게 마이크에 잡히기도 했다. 
이후 한동안 정회도 아닌데 회의는 진행되지 않는 애매한 상태에서 민주당 의원들과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이인영 통일부 장관 등만 멀뚱히 앉아있는 풍경도 연출됐다. 외통위 여당 간사인 김영호 의원은 이날 전체회의에서 “한국과 유럽연합 간 핵심협약 비준 여부를 둘러싼 분쟁이 발생해 노동권이 경제 통상과 연계되는 문제라는 걸 야당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초당적인 협력이 필요한 국익이 걸린 사안에서 퇴장한 야당은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는데, 정작 여당 소속 외통위원은 다 참석하지도 않은 것이다.

외통위는 이날 전체회의에서 ILO 핵심 협약 비준안 외에도 여권법·영사조력법 개정안과 북한이탈주민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외통위 문턱을 넘은 3건의 핵심협약 비준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한국은 ILO 핵심 협약 8건 중 7건을 비준한 국가가 된다. 나머지 한 건의 핵심협약인 105호(정치적 견해 표명 등에 대한 강제노동 제재) 협약의 경우 남북 분단 상황 및 국가보안법과의 충돌 등의 문제로 비준안 처리가 잠정 중단된 상태다. 105호 협약과 관련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7월 “협약 취지를 국내법에 반영하기 위해선 국내 형벌체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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