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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된 향나무' 무단 싹뚝 대전시, 이번엔 "건축법까지 위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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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들보·벽 등 뜯어내면서 신고 안 해"

90년 된 향나무를 무단 제거한 대전시가 이번에는 건축법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 건물 리모델링을 위해 들보·벽 등 핵심 구조물을 뜯어냈지만 관할 자치단체와 협의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의 힘, 22일 대전시 검찰에 고발

대전시는 옛 충남도청 자리에 소통협력 공간 조성 사업을 추진하면서 충남도·문화체육관광부·대전 중구 등 관련된 여러 기관과 협의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의 힘 대전시당은 22일 건축법 위반 등 혐의로 허태정 대전시장과 담당 직원을 고발했다.

옛 충남도청사에 있던 나무가 절단된 모습. 대전시는 이곳에 있던 향나무 128그루와 은행나무 등을 무단 제거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옛 충남도청사에 있던 나무가 절단된 모습. 대전시는 이곳에 있던 향나무 128그루와 은행나무 등을 무단 제거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대전시와 충남도 등에 따르면 대전시는 지난해 6월부터 중구 선화동 옛 충남도청사 부속 건물을 대상으로 ‘소통협력공간’조성사업을 추진해왔다. 소통협력공간사업은 옛 충남도청사 부속건물인 무기고동·선관위동·우체국동 등을 리모델링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여기에는 사회적자본지원센터·사회혁신센터가 입주하고, 공유주방·카페·갤러리도 설치할 계획이다. 사업비는 총 123억5000만원이다. 시설비가 63억5000만원이고, 나머지 60억원이 프로그램 운영비다. 대전시는 “소통협력공간은 시민이 직접 참여하고 아이디어를 발굴해 지역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대전시 "협의 대상인지 몰랐다"

 대전시는 리모델링을 위해 이들 충남도청 부속 건물 내부를 뜯어내는 사실상 대수선 공사를 했다. 대수선이란 건축물의 기둥·보· 내력벽·주계단 등의 구조나 외부 형태를 수선·변경하거나 증설하는 것이다. 대수선하려면 건축법(제 11조등)에 따라 관할 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대전시는 중구청장에 신고 등 절차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옛 충남도청사내 우체국 건물의 나무 들보가 잘려나간 모습. 대전시는 중구청에 신고절차 없이 리모델링 공사을 진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방현 기자

옛 충남도청사내 우체국 건물의 나무 들보가 잘려나간 모습. 대전시는 중구청에 신고절차 없이 리모델링 공사을 진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방현 기자

옛 우체국 건물 안내판. 프리랜서 김성태

옛 우체국 건물 안내판. 프리랜서 김성태

 대전 중구 관계자는 “선관위와 우체국 건물 등을 리모델링한 것은 들보·벽 등을 제거하는 대수선 공사에 해당한다”라며 “대전시는 중구와 사전에 아무런 협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충남도가 손상된 건축물을 원상 복귀하라고 명령을 내린 상태이니 일단 지켜보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대전시 관계자는 “리모델링 공사가 중구에 신고해야 하는 대상인지 미처 몰랐다”며 “건축물 훼손이 많이 돼 원상 복구는 불가능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4월부터 2개월간 리모델링 건축물을 대상으로 내진 성능평가를 했다”며 “그 결과 안전 문제 등을 고려해 철골 구조물 등을 별도로 설치했고 당초 설계보다 시설 보강이 더 필요해 예산이 추가로 들어가야 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옛 충남도청사에 있는 선관위 건물 내부 벽과 기둥 등이 손상됐다. 대전시는 안전이 우려되자 쇠기둥을 임시로 설치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옛 충남도청사에 있는 선관위 건물 내부 벽과 기둥 등이 손상됐다. 대전시는 안전이 우려되자 쇠기둥을 임시로 설치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해당 건물 보와 벽은 철거한 상태

 실제 지난 21일 소통협력공간 조성사업 공사 현장을 가보니 2층짜리 건물인 우체국과 무기고는 목재 들보가 모두 잘려나간 상태였다. 창틀은 뜯어낸 다음 쇠기둥을 설치했다. 무기고는 2층으로 향하는 계단도 철거했다. 건물 외벽은 군데군데 금이 가 있고, 벽돌은 군데군데 떨어져 나갔다. 지붕에서는 일부 기와가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었다.

 선관위 건물은 내부 벽과 보를 대부분 철거한 상태였다. 선관위 건물 천장에는 철골 구조물을 설치했다. 이들 건물은 1966년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와 현장을 둘러본 건축설계사 이모씨는 “무리한 공사를 한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며 “행정기관이 아닌 일반인이 이런 공사를 했다면 즉각 고발 조치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무기고 건물은 도청사와 함께 1932년 지어 

 이들 건축물은 보존 논란도 일고 있다. 대전시가 우체국 건물에 부착한 안내판에는 “세로로 길게 장식 없는 창과 모임지붕 형식의 일식 기와가 특징이다. 2층 내부는 일본식 도코노마(다다미방 장식공간)와 독특한 비례로 분절된 목재 반자(방 마루 천장을 평평하게 만드는 구조)가 설치되어 있어 일본 주택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쓰여 있다.

옛 충남도청사에 있는 선관위 건물 벽이 헐리고 지붕에는 철골구조물이 설치돼 있다. 건축 전문가들은 "이 정도로 대규모 공사를 하면 안전에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우려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옛 충남도청사에 있는 선관위 건물 벽이 헐리고 지붕에는 철골구조물이 설치돼 있다. 건축 전문가들은 "이 정도로 대규모 공사를 하면 안전에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우려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건축설계사 이씨는 “지은 지 50년이 넘은 우체국 건물 등은 과거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는 사료가 될 수 있다”며 “이미 문화재로 지정된 충남도청사 건물과 맞먹는 보존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무기고 건물은 충남도청사 건물과 함께 1932년 지어졌다. 충남도 관계자는 “무기고는 충남도청 역사와 함께한 상징적인 건축물”이라고 했다. 선관위 건물은 충남도청사 건물과 연결돼 있다. 충남도는 22일 소통협력 공간 조성 사업 현장을 실사한다.

 이와 함께 대전시가 옛 충남도청 자리에서 옮겨 심은 향나무 중 일부는 말라 죽은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 조경업자는 “향나무를 논바닥처럼 습기가 많은 곳에 이식하면 제대로 성장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대전시는 도청사에 있던 향나무 128그루를 잘라 폐기 처분하고 44그루는 유성구 금고동 양묘장에 옮겨 심었다. 대전시는 또 충남도청사에 있던 90년 된 은행나무·삼나무 일부도 제거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전시가 옮겨심은 향나무가 말라죽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대전시가 옮겨심은 향나무가 말라죽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이에 대해 대전 중구의회 김연수 의장은 “소통협력 공간을 조성하면서 시민이나 관련 기관과 전혀 소통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대전시는 사과하고 책임자를 문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 힘 대전시당은 허태정은 대전시장과 소통협력공간 조성 사업 담당 국장·과장 등을 공용물건손상죄·직무유기죄·건축법위반죄 등혐의로 대전지검에 고발했다. 국민의힘은 고발장에서 “소통협력공간 마련을 위한 공사를 진행하면서 청사의 소유자인 충남도 승인 없이 공용물건인 향나무를 제거하고 건축물을 리모델링하면서 관할 기관의 신고 등 절차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대전=김방현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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