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12살 불량 꼬마를 변하게 만든 전직 매춘부의 사랑

중앙일보

입력 2021.02.20 09:00

[더,오래] 현예슬의 만만한 리뷰(103) 영화 ‘자기 앞의 생’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는 원작 소설이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처음 접하게 된 건 아마도 대학교 다닐 때쯤이었던 것 같은데요. 벌써 십 년도 넘은지라 내용이 상세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몇 번 곱씹게 되는 구절들과 작가의 독특한 이력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에 대해선 조금 뒤에 이야기해보기로 하고 우선 영화 먼저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에밀 아자르의 소설 『자기 앞의 생』을 영화로 만든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자기 앞의 생’ 입니다.

부모를 모두 잃고 방황하는 12살 모모. 시장에서 한 아주머니의 가방을 훔쳐 달아났다가 후견인인 코엔 박사에 들킨다. [사진 넷플릭스]

부모를 모두 잃고 방황하는 12살 모모. 시장에서 한 아주머니의 가방을 훔쳐 달아났다가 후견인인 코엔 박사에 들킨다. [사진 넷플릭스]

부모를 모두 잃은 12살 모모는 코엔 박사를 후견인으로 두고 그의 보살핌 안에 살아가는데요. 세상에 불만이 많은 듯한 그는 못된 짓만 골라 저지릅니다. 그날도 시장에서 한 아주머니의 가방을 훔쳐 달아났죠. 가방에 든 물건을 팔려다가 실패한 그는 물건을 집으로 가져오는데요. 그 모습을 코엔 박사에게 들키죠.

물건 주인을 알고 있었던 코엔 박사는 모모를 데리고 그 집으로 향하는데요. 그곳에서 로사 아줌마를 만나게 됩니다. 매춘부 일을 하다 나이가 들어 그만두고 아이들을 돌봐주고 있죠. 코엔 박사에 의해 훔친 물건을 돌려주고 억지로 사과까지 한 모모. 코엔 박사는 로사 아줌마에게 입양 가정을 찾을 때까지 모모를 맡아 달라고 말합니다. 내 물건을 훔쳐간 아이를 맡아달라니. 끝까지 완강하게 거부하던 로사 아줌마는 양육비를 주겠다는 코엔 박사의 말에 억지로 모모를 떠맡게 됩니다.

그리하여 로사 아줌마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되는데요. 임시 보호처가 생겨 정부의 간섭에서 벗어난 모모는 마약 거래에 빠져 용돈 벌이에 나섭니다. 수완이 좋은 그는 원래 일하던 사람을 제치고 그 구역을 맡게 됩니다.

그럭저럭 그 집에서 적응을 해나가던 무렵, 로사 아줌마는 가끔 정신을 놓기도 하고 때로는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데요. 어릴 적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로부터 살아남은 트라우마일까요. 그 증세는 점차 심각해졌고 코엔 박사는 입원을 권유합니다. 정신이 든 날 로사 아줌마는 모모에게 병원은 극구 싫다고 당부하죠. 모모는 로사 아줌마를 병원에서 탈출시키기로 하는데요. 그들의 탈출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영화 속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 모모와 로사 아줌마가 함께 일출을 보는데 그 모습이 평화로우면서도 슬퍼 보인다.

영화 속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 모모와 로사 아줌마가 함께 일출을 보는데 그 모습이 평화로우면서도 슬퍼 보인다.

이 영화 속에서는 다양한 어른들이 등장합니다. 모모를 가장 먼저 믿어준 코엔 박사와 로사 아줌마가 돌보는 아이의 엄마이자 트랜스젠더인 롤라, 모모가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내어준 상점 주인 하밀 할아버지, 마지막으로 모모의 보호자이자 친구였던 로사 아줌마까지. 날이 선 밤송이 같았던 모모를 한 꺼풀 벗겨내 매끈하고 단단한 알밤으로 만들어준 건 이들의 사랑과 믿음 덕분이었습니다. 사실 모모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 못된 짓을 저지르고 다녔다는 것을 꿰뚫어 봤던 거죠.

로사 아줌마 역을 맡은 배우는 60년대 섹시 스타 이탈리아 여배우 소피아 로렌입니다. 젊은 세대에서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할리퀸을 연기한 마고 로비와 닮은 배우로 기억할 텐데요. 영화계에선 전설적인 아이콘이자 할리우드 최초 아카데미 비영어권 여우주연상 수상자이기도 합니다. 세대가 달라 그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 가지 않지만 젊은 시절 그녀의 사진들을 찾아보시면 이해가 가실 겁니다.

로사 아줌마 역을 맡은 60년대 섹시 스타 소피아 로렌. 영화계에선 전설적인 아이콘으로 통한다.

로사 아줌마 역을 맡은 60년대 섹시 스타 소피아 로렌. 영화계에선 전설적인 아이콘으로 통한다.

마지막으로 앞서 조금 언급한 원작의 작가 ‘에밀 아자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에밀 아자르의 진짜 이름은 ‘로맹 가리’ 입니다. 우리가 한 번쯤 들어봤을 로맹 가리 작품으로는『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가 있죠. 그는 1980년 66세의 나이에 입 안에 권총을 넣고 방아쇠를 당겨 생을 마감했는데요. 그가 사망한 지 6개월이 지나 유서처럼 남긴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이란 책이 출간됩니다. 이 책을 통해 그는 에밀 아자르가 로맹 가리 자신이었음을 밝혔죠.

이 책을 보면 그는 자신의 등에 붙어 있는 로맹 가리의 이미지가 싫었다고 말하며 많이 알려진 자신의 이름 대신 가명을 쓰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로맹 가리라는 이름에서 주는 압박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자기 앞의 생』 같은 좋은 작품을 써낼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실제 로맹 가리는 같은 사람에게 두 번은 안 준다는 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실명과 가명으로 받은 유일한 작가죠.

이를 보며 로맹 가리의 삶이 정말 영화 같다고 느꼈는데요. 이미 영화로 만들어졌더라고요. 2017년 개봉한 영화 ‘새벽의 약속’을 보면 로맹 가리의 삶과 그를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만나 볼 수 있다고 하니 함께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자기 앞의 생
영화 '자기 앞의 생' 포스터.

영화 '자기 앞의 생' 포스터.

원작: 에밀 아자르의 소설 ‘자기 앞의 생'
감독: 에도아르도 폰티
각본: 유고 치티, 파비오 나탈레, 에도아르도 폰티
출연: 소피아 로렌, 아브릴 자모라, 레나토 카펜티에리
음악: 카브리엘 야레드
장르: 드라마
상영시간: 94분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일: 2020년 11월 13일(넷플릭스 오리지널)

hyeon.yese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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