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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마지막 이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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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현예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김현예 내셔널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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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틀에 턱을 괴고 앉아 밖을 바라보는 사내의 눈엔 슬픔이 가득하다. 파란 강물 위로 검정 치마를 입은 여성이 보인다. 하얀 저고리 여성은 두 손 힘껏 머리 짐을 받쳐 든 채 어디론가 가고 있다. 우리에게 ‘소’의 화가로 알려진 이중섭(1916~1956)의 ‘돌아오지 않는 강’(1956년)이다. 현해탄 너머 두고 온 아내와 두 아이에 대한 그리움을 죽음이 임박한 마지막 순간까지도 붓끝에 담았다. 그의 마지막 이사는 숨을 거두기 1년 전인 1955년에 이뤄졌다. 평안남도 평원에서 태어나 평양과 정주, 일본 도쿄를 거쳐 다시 원산. 그리고 서귀포와 부산, 통영, 대구, 서울까지 수없이 거처를 옮겨야 했던 그의 마지막 장소는 서울 정릉이었다. 전쟁과 가난 탓에, 정릉에서의 시간은 1년도 채 되지 않아 끝이 났다.

당신의 마지막 이사를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여기, 원치 않는 마지막 이사를 두고 발버둥 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 ‘집’은 우리네 여느 집과는 다르다. 의사가 있고, 간호사가 있다. 대개 이 집에 들어와 살기 위해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이란 시간을 기다리고서야 입주할 기회를 잡는다. 이 집에 사는 사람은 대부분 80대 이상의 어르신들로 치매·중증질환을 앓고 있다.

이곳의 이름은 강남 구립 행복 요양병원. 지난 1일 서울시로부터 코로나19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됐으니 ‘환자 이송을 강제하겠다’는 통보가 왔다. 250여명 환자의 보호자들은 퇴원을 거부하고 있다. 보호자 대표회를 맡고 있는 현두수씨는 이곳에 89세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그의 모친은 이곳에서 연명 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정부가 감염병 전담병원을 만든다며 일시에 나가라는데, 그간 가족처럼 익숙해진 의사와 간호사·간병인 없이 모친 홀로 나가 살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환자에겐 이곳은 평안히 임종을 맞이하기 위한 마지막 거처다. 통계청에 따르면 병원·요양병원 등에서의 사망은 지난 2019년 기준 전체 사망의 77.1%에 달한다. 10년 전(65.9%)보다 늘어난 수치다. 요양병원이 병원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들에게 코로나 치료를 위한 병상이 필요하니 어느 날 갑자기 나가라 통보한다면 그것은 폭력과도 같다. 우리 모두는 평안한 마지막을 맞이할 자격이 있지 않은가.

김현예 내셔널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