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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이러려고 검찰 출신 민정수석 시켰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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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오른쪽)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몇 차례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이뤄진 검찰 인사에서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자신의 의견을 묵살하고 만든 인사안을 대통령이 재가한 것이 원인이 됐다고 한다. 사진은 지난해 12월31일 임명될 당시 청와대 춘추관을 찾은 유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왼쪽)과 신 수석. [뉴시스]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오른쪽)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몇 차례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이뤄진 검찰 인사에서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자신의 의견을 묵살하고 만든 인사안을 대통령이 재가한 것이 원인이 됐다고 한다. 사진은 지난해 12월31일 임명될 당시 청와대 춘추관을 찾은 유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왼쪽)과 신 수석. [뉴시스]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몇 차례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신 수석은 지난해 12월 31일 임명됐다. 일한 지 50일도 채 되지 않은 대통령 참모가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사퇴 의사를 나타낸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아니나 다를까 검찰과 청와대 간 가교 역할을 하는 그가 최근 검찰 인사 과정에서 배제당한 것이 원인으로 꼽혀 논란이 일고 있다.

인사·중수청 ‘패싱’ 논란 신현수 사의 #‘소통’ 맡기고 배제할 거면 중용 말아야

청와대는 어제 “검찰 고위급 인사 과정에서 검찰과 법무부 사이에 이견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신 수석이 몇 차례 사의를 표시했고, 그때마다 대통령이 만류했다”고 밝혔다. 이어 “신 수석의 거취에는 변화가 없는 상태”라며 사의를 수용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신 수석이 주변 사람들에게 “내 역할이 없다”고 토로했다 하니 사의를 접을지는 미지수다.

신 수석은 이번 검찰 고위급 인사를 앞두고 검찰과 법무부 사이의 물밑 조율을 시도했다. 현 정부 들어 첫 검찰 출신 민정수석인 만큼 최대한 양측 입장을 잘 반영해 중재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난 4일 대전지검이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기류가 바뀌었다고 한다. 결국 신 수석과의 협의가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요일인 지난 7일 법무부가 전격적으로 이성윤 서울지검장이 유임되고, 심재철 검찰국장이 서울남부지검장으로 전보되는 내용의 인사안을 발표했다.

신 수석이 누군가. 노무현 대통령 당시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과 일한 그는 정권 출범과 함께 국정원 기조실장을 맡았다. 비검찰 민정수석을 고수하던 청와대가 정권 후반 그를 택한 건 대통령의 신뢰가 바탕이 됐다. 검찰 출신 신 수석에겐 윤석열 검찰과의 소통이란 임무가 주어졌고, 윤 총장 측도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수석 취임 한 달여 만에 이뤄진 인사의 결과는 ‘철저한 패싱’이었다.

비단 인사만이 아니다. 최근 여권 인사들이 검찰의 직접수사권 폐지 및 검찰청 해체를 골자로 한 ‘중대범죄수사청’ 설립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도 신 수석의 의견은 무시됐다. 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윤 총장은 문재인 정권의 총장”이라며 껴안는 듯했지만 결과적으론 자신들이 원하는 인사를 위해 검찰 출신 신 수석을 내세워 이용한 모양새가 됐다. 소통의 책임을 맡겨 놓고는 역할을 인정해 주지 않고 허수아비 취급을 할 거면 대체 왜 중용했나.

혹시 여권 인사들은 신 수석이 자기들 뜻을 그대로 따를 것이라 기대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다른 인사를 택했어야 했다. 그는 상식에 기반해 일하는 사람이다. 성실하고 평판 좋은 공직자를 임명해 놓고선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패싱을 일삼을 거라면 그런 인사는 애시당초 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