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진료시대] 법 따로 진료 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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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A종합병원에서 허리 통증 진료를 받았던 金모(50)씨는 차도가 별로 없어 서울 강남의 B척추 전문병원을 찾았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A병원에서 복사해준 자기공명영상촬영(MRI) 검사 결과를 담은 CD를 B병원에서 읽지 못해 A병원에 가서 필름으로 다시 복사해 와야 했다.

결국 金씨는 당일 진료를 받지 못해 다시 병원에 가야 했고 필름을 복사하는 데 2만원을 추가로 부담했다. 두 병원의 정보 시스템과 장비가 다르기 때문이다.

의료 정보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호환이 안돼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는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원격진료도 법 조항이 모호해 언제든지 불법 시비에 휘말릴 소지를 안고 있다.

◇병원마다 따로따로
경기도 일산병원은 국립암센터를 비롯한 5~6개 대형 병원에서 환자가 CD에 담아온 X-선.컴퓨터단층촬영(CT) 등의 영상을 읽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의료영상시스템(PACS) 전용 모니터에서 읽을 수 없어 해상도가 떨어진다. 이들 병원의 PACS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환자의 진료정보를 전자차트에 담는 전자의무기록(EMR)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의사들이 사용하는 용어나 양식.그림.표현방식 등 진료 기록이나 처방 내역이 천차만별이다 보니 통일하기가 쉽지 않다. 가령 가슴 통증만 하더라도 '흉통''가슴 아픔''가슴 저림' 등으로 쓴다. 통증도 '찌릿하다''쿡쿡 쑤신다'는 식으로 각양각색이다.

삼성서울병원 박철우 정보전략팀장은 "EMR의 궁극적인 목표는 병원끼리 네트워크로 연결해 환자 정보를 주고받는 것인데 지금처럼 병원별로 따로 가면 호환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환자가 삼성서울병원과 분당 서울대병원을 오갈 경우 진료기록을 재래식 방법인 종이로 프린트해서 가야 한다.

◇법 보완 절실
현행 의료법에는 의료기관과 의료기관, 의료인과 의료인끼리만 원격진료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강남구 보건소가 원격진료하는 수서동과 일원2동의 원격영상진료소는 의료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논란의 소지가 있다.

서울대병원이 집에 있는 환자와 연결해 재택진료하는 것도 '의료인과 의료인'규정에 어긋난다는 게 복지부의 해석이다. 하지만 서울대병원 유태우 교수는 "병원에서 진료하는 것과 차이가 전혀 없는데 왜 불법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원격진료에 대한 수가(酬價.진료행위의 가격)도 마련돼 있지 않다. 그래서 강남구 보건소의 경우 진료비가 면제되는 저소득층만 원격 진료하고 있다. 이 보건소 이병철씨는 "수가, 적법 논란 등의 제약 때문에 원격진료 지역을 늘리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미국 버지니아 메디컬센터와 국경을 넘어 영상필름 원격판독을 하던 시공원격영상센터도 한.미 양국의 실정법에 저촉될 우려가 있어 중단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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