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은 16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의 18대 국회의원 등에 대한 사찰 의혹에 대해 “불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국회 정보위 야당 간사인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전체회의를 마친 뒤 브리핑에서 “불법 사찰 정보냐”고 물었더니 국정원이 “불법이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하 의원은 “국정원이 불법 사찰로 수집한 정보를 ‘직무범위 이탈 정보’라고 공식 명명했다”고 설명했다. 여당 간사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정원은) 이명박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국정원에 2009년 12월 16일 정치인 등 관심 대상에 대한 정보를 수시로 축적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정보 수집 과정에서 미행이나 도청 등 불법적 수단이 활용됐는지에 대한 국정원의 답변에 대해선 여야 간사가 다소 다르게 이해했다. 하 의원은 “국정원이 ‘그런 방법을 사용한 근거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김 의원은 “박지원 국정원장이 굉장히 모호하게 답했다”면서 “‘정보위원 3분의 2 이상이 요구하면 보안문서를 해지해서 확인해보겠다’고 답했다”고 설명했다.
정치적으로 예민한 다른 지점들에 대한 여야 간사의 설명에도 온도 차가 있었다. 하 의원은 이명박 정부의 불법 사찰이 박근혜 정부까지 이어졌는지에 대해 국정원이 “개연성은 있으나 확인하지 못했다. MB정부 때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라고 한 지시를 중단한 근거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이어 하 의원은 “박 원장은 MB정부 이전 특히 DJ와 노무현 정부 때는 (불법 사찰이) 없었다”고 말했지만 “(김대중 정부 시절) 임동원, 신건 전 국정원장이 1800명을 상시로 불법도청 했고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 박형준 청와대 정무수석이 관여됐는지에 대해서도 “근거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국정원의 대답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박근혜 정부라든지 기타 불법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게 아니다”라면서 “정확히는 봉인한 문서를 해지해 보지 않아서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DJ정부 때 임동원, 신건 전 원장 사건은 사실이지만 개인에 의한 일탈이었다”면서 “정부가 주도해 국정원 전체가 동원되는 사찰은 없었다”고 맞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 곽상언 변호사 등 친인척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의 임기 말인 2008년 2월 5일 사찰했다는 것에 대해선 공통적으로 “국정원이 정권교체기에 자발적으로 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답했다.
김 의원은 “박 원장이 ‘대법원 판례에 따라 국회의원 등 정보가 수집된 당사자가 국정원에 요청하면 문건을 공개 처리하겠다’고 말했다”면서 “이미 진선미 민주당 의원, 배진교 정의당 의원,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의원 등이 공개를 청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국정원은 사찰 정보 공개 여부에 대해 개인 정보가 포함된 비공개 기록물이라 일반에 공개하는 것은 법률 위반 소지가 있지만 국회 정보위 재적 위원 3분의 2 이상이 요구하면 비공개를 전제로 보고하는 것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 의원은 “박 원장이 국회에 ‘국정원 60년 불법사찰 흑역사 처리 특별법’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고 말했다. 국정원이 수집한 정보 중 적법 정보와 불법 정보를 분리하려면 이걸 볼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 의원은 “국가 정보기관이 가진 불법 정보를 폐기하기 위해선 야당 입장에서도 이 특별법이 필요한 것 같다”며 “여야가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체회의 후 일부 야당 정보위원들에게선 박 원장의 설명에 대한 불만도 흘러나왔다. 국민의힘 소속 한 정보위원은 “최초 방송 보도에 ‘국정원 고위관계자’가 털어놨다고 나왔는데 국정원에서 유출 조사를 할 건지 물었더니 박 원장은 ‘유출된 것도 아니고 해당 방송사에 항의할 계획도 없다’는 납득 안 가는 답을 했다”며 “불법 정보 내용을 안 봤다는데 어떻게 직무범위 이탈인지 판단했느냐는 질문에 대한 박 원장의 답변도 모호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52명은 16일 오전 “국가정보기관의 사찰성 정보를 공개하라”는 특별 결의안을 발의했다. 대표 발의자인 김병기 의원은 “자신에 대한 정보를 자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권리는 모든 국민에게 있는 헌법적 권리”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 김승환 전북도 교육감 등 당시 야권 주요 인사들과 18대 여야 국회의원 전부를 사찰했다는 의혹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제기됐다. 시민단체 ‘내놔라 내파일’이 국정원을 상대로 제기한 정보공개청구를 대법원이 지난해 11월 받아들이면서, 국정원은 63건의 문건을 당사자들에게 공개했다.
송승환 기자 song.seunghw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