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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급 근거 뭐냐" 대표에 돌직구···MZ세대에 당황한 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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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최근 대기업 성과급을 둘러싼 내부 갈등이 확산하면서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간 경영진이 주는 대로 받았던 직원들은 이젠, 회사에 직접 "금액 산정 근거가 뭐냐"는 돌직구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공정성과 실리를 중시하는 MZ세대(1980년대 후반~2000년대에 태어난 세대)의 목소리가 커진 것이 성과급 논란이 커진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6일 재계에 따르면 시작은 SK하이닉스였다. 지난달 28일 회사 측이 지난해 성과급에 대해 ‘연봉의 20%’로 공지하자, 직원들은 지난해보다 영업이익이 두 배로 늘었는데 지난해와 액수가 같은 건 불합리하다고 반발했다. 이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연봉 반납을 선언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불길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주요 대기업 성과급 논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주요 대기업 성과급 논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SK하이닉스의 모회사인 SK텔레콤도 비슷한 논란이 불거졌다. SKT 노조는 최근 박정호 부회장에게 실적 대비 성과급이 줄 것으로 우려된다며 성과급 산정 기준에 대한 투명성을 지적하고, 성과급 체계 전면 개편을 요구했다. 박정호 사장이 직원들과 소통에 나서고 설 명절용 사내 포인트 300만 포인트를 지급했으나 노조는 임시방편이라며 반발을 이어가고 있다.

삼성전자에서도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 담당 DS부문은 연봉의 47%, 스마트폰 담당 IM 부문은 50%, 소비자 가전(CE) 부문에 속한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50%, 생활가전사업부는 37% 등으로 성과급을 지급한다고 최근 공지했다. 그러자 지난해 가장 많은 영업이익을 올려 전사 실적을 이끈 DS 부문 직원들은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반응이다. 가전 부문 직원들도 지난해 역대 최고 실적을 냈는데 차별받고 있다는 불만을 보인다.

LG전자는 이달 중 지난해분 성과급을 결정해 공지할 예정이다. 직원들은 다른 기업이나 사업 부문끼리 비교하며 성과급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고 있어 LG전자도 비슷한 갈등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노사협의 과정에서 사측이 기본급의 245%를 성과급으로 제시하자, 같은 그룹사의 사업부문과 비교해 못 미치는 지급률이라며 불만이 터졌다.

공정성·실리 중시 MZ세대 목소리 커져  

업계에서는 올해 유독 성과급 논란이 커진 배경 중 하나로 공정성과 실리를 중시하는 MZ세대의 특성을 꼽는다. 회사를 ’평생 직장‘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원칙·실리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면 참지 않고 명확하게 불만을 표시한다. 이들은 불투명한 기준의 성과급 책정은 납득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형평성과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아 일한 만큼 보상받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은 사기저하로 이어진다.

자료: 사람인

자료: 사람인

실제로 SK하이닉스 성과급 논란에서 입사 4년차인 한 직원은 '성과급 산정 방식을 밝히라'는 항의 이메일을 대표 포함 임직원들에게 공개적으로 보냈다. 이렇게 자신의 의사를 당당히 표현하는 세대가 지금의 성과급 체계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건 당연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사내 게시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직장인 커뮤니티 등이 직장인들이 의견을 표시하는 채널이 다양해지고 외부로 빠르게 전파되는 점도 관심을 증폭시켰다.

반면 기업들은 성과급 산정 기준은 '기업의 기밀'이며, 이를 공개할지 여부는 회사의 고유 권한이라고 본다. 성과급은 기본급과 달리 노사의 협의 사항이 아니다. 특히 모든 직원이 만족하는 성과급 산식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데다, 기업이 향후 영업적자 등 불확실성에 빠질 경우까지 고려해야 한다. 경영진이 회사의 현재와 미래를 종합해 적절한 액수를 정하는 게 맞다는 것이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미래를 대비해야 하는 시점에 인력 이탈까지 걱정할 판이 됐다. 여론에 휩쓸려 과도한 성과급을 지급하면 투자 재원이 부족해 다른 기업과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도 있다. 매년 비슷한 논란이 불거지면 노사화합도 멀어질 수 있다.

그러나 기업들은 올해 논란을 계기로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한 4대 그룹 부사장급 임원은 “단순히 액수뿐만 아니라 보상 체계와 기준, 투명성에 대한 문제 제기”라 “직원들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정보를 사전에 제공하고 소통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선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도 "한국 기업의 문화가 과거 '위에서 찍어누르던' 체계에서 이젠 수평적 관계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라며 "그만큼 소통이 기업 경영에서 중요해졌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성과급 논란이 일부 대기업 직원들에만 해당하는 '그들만의 리그'라는 비판도 나온다. 통상 기본급의 300~400% 수준의 성과급을 지급하던 정유업계는 올해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정유 4사의 지난해 누적 손실은 5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코로나19로 ‘최악의 보릿고개’를 겪는 항공업계도 성과급을 기대하기 힘들긴 마찬가지다. 업황 부진이 계속되는 조선ㆍ중공업의 경우 성과급을 지급하는 업체가 거의 없다.

주요 직장인 커뮤니티에서는 "딴 세상 이야기"라는 반응이 많다. 상대적으로 연봉이 적은 중소기업 직장인들은 대기업에서 벌어지는 이런 논란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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