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거나 말거나, 가거나 말거나…얼어붙은 설

중앙일보

입력 2021.02.03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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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코로나19 장기화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등이 체감하는 설 대목 경기가 꽁꽁 얼어붙었다. 지난달 31일 서울 명동에서 문을 닫은 점포 앞에 하얀색 시트지가 붙어 있다. 김성룡 기자

코로나19 장기화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등이 체감하는 설 대목 경기가 꽁꽁 얼어붙었다. 지난달 31일 서울 명동에서 문을 닫은 점포 앞에 하얀색 시트지가 붙어 있다. 김성룡 기자

서울 마포구에서 퓨전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지민씨는 설 연휴(11~14일)에 이틀만 쉬고 나머지 이틀은 식당 문을 열 생각이다. 최근 매출이 시원치 않은 상황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로 설 연휴에 고향을 찾아가기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김씨는 “건물주가 임대료를 20%나 깎아줘 도움을 받고 있다. 하지만 어차피 고향에 갈 것도 아니고 2월은 장사할 날도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업장에 오는 손님은 많지 않겠지만 배달 앱(애플리케이션)으로 들어오는 주문이라도 받아야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김씨처럼 설 연휴 중에도 영업을 계속하겠다는 자영업자가 적지 않다. 장사가 잘되는 건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더 매출을 내야 한다는 위기감이 있어서다.

초유의 집합금지에 명절대목 실종
소상공인 체감경기 최악 추락
대한항공, 설 임시편 편성도 안해
서울 호텔 70% 비어 개점휴업
직장인 78% “설에 집콕” 조사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자영업자들이 체감하는 경기는 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소진공)에 따르면 지난달 소상공인 체감경기실사지수(BSI)는 35.8을 기록했다. 지난해 12월보다 15.8포인트 낮아졌다. 전통시장 체감BSI는 지난달 33.5로 한 달 전보다 11.3포인트 내렸다. BSI는 100을 기준으로 이보다 낮으면 경기 악화를, 100보다 높으면 경기 호전을 전망하는 사업자가 많다는 의미다. 소진공은 “자영업자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유동인구가 줄어 경기가 악화할 것으로 예상했다”고 전했다.

소상공인시장 경기동향.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소상공인시장 경기동향.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호텔·항공업계의 경우 예전에는 설 연휴가 최대 성수기였다. 유명 관광지의 호텔·리조트 객실이 한참 전에 매진됐다거나, 인천국제공항을 통한 출국자 수가 역대 최다 기록을 갈아치웠다는 뉴스도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여행업계가 극심한 불황을 겪고 있다. 호텔은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상황에서 수용 능력의 3분의 2(66.7%)만 투숙객을 받을 수 있다. 현실은 더 심각하다는 게 호텔업계의 얘기다. 익명을 원한 호텔업계 관계자는 “3분의 2는 고사하고 서울 시내 호텔 대부분 30%도 못 채웠을 것”이라며 “제주도 일부 호텔을 제외하면 전국 대부분의 호텔 사정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호텔신라는 코스피 시장 공시에서 지난해 영업적자가 1853억원(잠정)이라고 투자자들에게 알렸다. 호텔신라의 2019년 영업이익은 2959억원이었다.

대한항공은 올해 설 연휴를 겨냥한 임시 항공편을 띄우지 않는다. 국제선 예약률은 노선별로 차이는 있지만 사실상 20% 이하다. 대한항공은 “제주 노선에만 그나마 승객이 있는데 예년과 비교할 수준이 못 된다”며 “백신을 빨리 보급하든지, 코로나19 유행이 수그러들지 않으면 예전 수준의 회복은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설 연휴를 맞은 일반 직장인들도 고민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설 연휴에 고향에 가자니 5인 이상 집합금지가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다. 유진그룹은 최근 계열사 임직원 1305명을 대상으로 올해 설 연휴 계획 관련 설문조사를 했다. “설 명절을 어디서 보내겠느냐”는 질문에 열 명 중 여덟 명꼴(77.7%)은 “가족과 집에 머무르겠다”고 답했다.

“설 연휴, 귀향·여행 대신 집” 편의점·대형마트 매출 상승 기대 

반면 “고향을 방문하겠다”는 응답은 19%에 그쳤다. 지난해 비슷한 설문조사를 했을 때 “집에서 보내겠다”는 응답은 19%였다.

5인 이상 집합금지 위반으로 과태료 10만원을 내더라도 설 연휴에 친지와 모임을 강행하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금융회사에서 일하는 40대 김영학씨는 “정부가 일부 종교단체 등의 집단 감염은 방치하다시피 하고 인제 와서 그 책임을 일반 국민과 자영업자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추석에도 가족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 과태료 10만원을 내더라도 이번 연휴에는 본가에 다녀오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5인 이상 집합금지 조치로 모든 업종이 설 연휴에 타격을 받는 것은 아니다. 편의점이나 대형마트는 대표적인 수혜 업종으로 꼽힌다. 편의점 브랜드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는 코리아세븐은 가맹점주 등을 대상으로 설 연휴 중 어느 날을 쉴 계획인지 파악하고 있다. 지난해 추석 연휴에는 점포 1만여 곳 중 700여 곳이 하루 이상 쉬었다. 이번 설 연휴에 쉬는 점포는 지난해 추석보다 줄어들 것으로 회사 측은 전망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설 연휴에 가까운 편의점을 찾는 고객이 늘어날 것이란 기대가 있어서다.

세븐일레븐에 따르면 지난해 설과 추석 연휴 기간 도시락 매출은 전년보다 35% 늘었다. 식사 대용인 가정간편식(HMR) 매출도 15%가량 증가했다. 세븐일레븐은 이번 설 연휴를 겨냥해 ‘수미네 풍성한 도시락’과 ‘수미네 모둠전’ 등 기획상품을 내놨다.

이마트·롯데마트 등 대형마트는 이번 설 연휴에 대부분 하루만 쉰다. 롯데·신세계·현대 등 백화점은 설날을 포함해 이틀 정도 쉴 예정이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예전 같으면 국내·외 여행을 하거나 고향을 찾았을 소비자들이 거주지 인근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먹거리를 중심으로 매출이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수기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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