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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적’ 뺀 새 국방백서 “김정은, 남북관계 개선 의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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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군이 2년 만에 새로 펴낸 『2020 국방백서』에서도 북한군을 '주적'으로 명시하지 않았다. 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피력했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북한 정상외교 거론하며 긍정적 기술 #"대외환경 개선 노력 지속하고 있어"

군이 백서에서 북한 지도자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국방백서는 문재인 정부가 발간하는 마지막 백서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진행된 열병식에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초대형 방사포, 대구경 조종방사포 등 여러 종류의 무기를 공개했다. 사진은 한반도 전역을 사정권으로 둔 초대형 방사포 등을 탑재한 차량이 이동하는 모습. [뉴스1]

북한은 지난해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진행된 열병식에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초대형 방사포, 대구경 조종방사포 등 여러 종류의 무기를 공개했다. 사진은 한반도 전역을 사정권으로 둔 초대형 방사포 등을 탑재한 차량이 이동하는 모습. [뉴스1]

◇"북, 9ㆍ19 군사합의 준수"  

국방부는 2일 공개한 백서에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커졌다고 강조하면서도 과거 백서에서 썼던 '주적'이나 '적'이란 표현을 쓰지 않았다. 대신 2년 전과 똑같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대한 위협"이라고만 썼다.

국방부는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부터 '주적'이라는 표현을 국방백서에 담았다. 김대중 정부에서도 '주적'으로 표현했지만,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직접적 군사위협"(2004년판), "심각한 위협"(2006년판)으로만 기술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선 '적'으로 썼다.

북한이 지난달 14일 노동당 제8차 대회를 기념하는 열병식을 진행했다고 조선중앙TV가 15일 보도했다. 열병식을 지켜보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만족한 듯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지난달 14일 노동당 제8차 대회를 기념하는 열병식을 진행했다고 조선중앙TV가 15일 보도했다. 열병식을 지켜보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만족한 듯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백서는 북한의 대남정책과 관련해 "전반적으로 '9ㆍ19 군사합의'를 준수하고 있다"고 적었다. 또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에서 발생한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통지문을 통해 유감을 표명하고 사과의 뜻을 전했다""당 설립 75주년 열병식 연설에서는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피력했다"고 적시했다.

북한의 대외정책에 대해선 서두에서 "'자주ㆍ평화ㆍ친선'의 외교 원칙을 바탕으로 한반도 주변국들과의 정상외교를 통해 대외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고 했다. 이를 두고 군 안팎에선 "북한이 주장하는 '정상국가' 이미지를 대변하는 듯한 표현"이란 비판이 나온다. 

또 이번 백서에선 기존의 북한 '정권세습'이란 표현을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으로 바꿨다.

북한탄도미사일사거리.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북한탄도미사일사거리.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한·중 '우호', 한·일 '갈등' 강조

새 국방백서에선 주변국에 대한 표현 수위도 달라졌다. 특히 중국은 우호적으로 서술된 반면, 일본에 대해선 갈등 상황이 강조됐다.

중국의 경우 2018년판에 있었던 사드(THAADㆍ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싼 한ㆍ중 갈등 상황이 통째로 빠졌다. 2년 전에는 "사드 배치 결정 발표 후 중국은 자국과 지역의 전략적 안보이익을 해친다는 이유로 강하게 반대했다"며 "이후 대부분의 국방교류협력이 중단되기도 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와 관련, 국방부 관계자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며 "2018년 백서를 내던 당시엔 사드 문제가 심각했는데 그 이후 일단락되고 정상화 단계에 들어섰다고 판단해 넣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2월 23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한 뒤 회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2월 23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한 뒤 회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반면 이번 백서에선 '중국군 유해송환식' 등 전반적으로 한ㆍ중간 우호적인 분위기가 강조됐다. "양국 관계의 안정적 발전"이란 표현도 처음 등장했다.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연구센터장은 "전형적인 중국식 표현으로 국방백서에 왜 이런 표현을 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국방부가 외교적인 뉘앙스를 내세우는 건 곤란하다. 정부가 강조하는 자주국방에도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일본은 2년 만에 '동반자'에서 '이웃 국가'로 격하됐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외교부와도 협의했고 수출규제 등 현안을 고려해 국방부 입장에서는 '이웃 국가' 표현이 맞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9년 6월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환영식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8초간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9년 6월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환영식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8초간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백서는 그간 발생했던 자위대 초계기 위협비행 사건,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등 한ㆍ일 갈등 요소를 짚으며 "양국 국방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에 장애 요소가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ㆍ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ㆍGSOMIA)과 관련해선 "협정 종료통보의 효력정지 상태"라고만 했다. 이런 기술과 관련, 외교가에선 "이미 미국의 경고로 외교적으로는 '죽은 카드'를 실질적으로 정보 협력이 필요한 국방부가 '살아있는 카드'로 묘사하는 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학연구소장은 "극단적으로 일본을 '가상 적'으로, 중국을 '우호국'으로 비치게 하는 기술은 곤란하다"며 "균형감을 상실하면 한·미·일 협력을 강조하는 바이든 행정부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중국은 서해에서 영유권을 주장하며 침범하는 게 현실인데, 과연 우리 군이 주권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라고 덧붙였다.

◇"대구경 방사포, 한반도 전역 사정권"

군은 이번 백서에서 각종 탄도미사일을 비롯해 북한군의 군사적 위협이 커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대구경 방사포를 개발, 한반도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방사포 위주로 화력을 보강하고 있다"고 썼다.

"중부권을 사정권에 둔 300mm 방사포"만 기술했던 2년 전과 확연히 다른 대목이다. 다만 지난달 노동당 8차 대회에서 언급됐던 '전술 핵무기 개발'에 대한 평가는 없었다.

북한의 '핵 보유'도 기존처럼 명시하지 않았다. "플루토늄 50여 ㎏ 보유" "핵무기 소형화 능력 상당한 수준" 등 2년 전과 같은 내용만 담겼다.

북한군사지휘기구도.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북한군사지휘기구도.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번 백서에선 북한 군 조직에서 '인민무력성'을 '국방성'으로 변경한 사실을 공식화했다. 북한의 특수작전군을 처음으로 별도의 군종으로 다루고, 북한이 남한 침투용으로 사용하는 AN-2 항공기를 추가 생산하고 있다는 것도 처음 밝혔다. 재편성된 6개 기계화보병사단이 신형 전차 등으로 노후 전력을 대체하고 있다고도 평가했다.

각종 탄도미사일이 실전 배치되면서 전략군 미사일 여단이 9개(2018년판)에서 13개로 증편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백서는 지난해 10월 열병식에서 공개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ㆍ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북한군이 실 보유한 탄도미사일에 포함했다.

북한개발보유미사일.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북한개발보유미사일.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북극성-3을 준중거리 탄도미사일(MRBM)로 명시하고, 2년 전엔 '신형'으로만 분류했던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을 19-1ㆍ19-4 SRBM 등 구체적으로 세분화했다.

김상진ㆍ박용한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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