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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의 삼국지 채색한 아들 “모든 인물에 아버지가 있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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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20면

고우영 화백의 차남인 고성언 실장. 고 화백의 자화상(왼쪽), 고 화백이 자신과 비교했던 유비 캐릭터와 함께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고우영 화백의 차남인 고성언 실장. 고 화백의 자화상(왼쪽), 고 화백이 자신과 비교했던 유비 캐릭터와 함께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아버지 『삼국지』에선 조조가 비교적 멋진 리더로 그려졌지만, 그런 조조도 적벽에서 관우한테 죽을 뻔했을 때 관우의 사람됨에 하소연해서 비열하게 살아남잖아요. 요즘 정치판하고 엇비슷하지 않나요. 나이 들어 다시 보니, 어릴 적 본 『삼국지』와 느낌이 달랐죠.”

연재 43년 만에 『삼국지』 컬러판 #고성언씨, 디지털 스캔해 색 입혀

고우영(1938~2005) 화백의 대표작『삼국지』를 43년 만에 처음 채색판으로 펴낸 아들 고성언(52, 고우영 화실 실장)씨의 말이다. 이번 올컬러 완전판(문학동네)은 아버지 생전 그림 작업을 도왔던 그가 직접 흑백 펜화 원고를 디지털 스캔해 색을 입혔다. 지난달 26일 경기도 김포 ‘고우영 화실’에서 만난 그는 “색깔만 입혔을 뿐 스토리는 토씨 하나 안 바뀌었다”면서 “채색하며 다시 보니 스토리 깊이가 옛날에 읽을 때랑 다르더라. 인물들의 마음을 시대상과 각자 나이대, 현생활에 자꾸 밀접시켜 돌아보게 만든다”고 했다.

1978~80년 일간스포츠에 연재된 『고우영 삼국지』는 권모술수를 꼬집은 풍자와 해학, UFO·서부극 등 동서고금을 자유자재로 넘나든 패러디로 사랑받았다. 그러나 이듬해 단행본(우석출판사)은 검열 과정에서 폭력·선정성을 이유로 100여 페이지가 삭제·수정돼 총10권 분량이 절반 가까이 잘려나갔다. 24년이 지난 2002년에야 무삭제 완전판이 나왔을 때, 고 화백은 이 작품에 대한 심경을 “불구가 된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 치료해줄 엄두를 못 내고 24세의 청년이 되기까지 길거리에서 앵벌이를 시켰다”고 작가의 말에 털어놨다.

고 화백에게  『삼국지』가 당대를 풍자하는 역사적 지도였다면 아들 고성언 실장에게  『삼국지』는 아버지 그 자체였다. “모든 인물에 아버지가 다 있어요. 장비가 험한 말 할 땐 아버지 말투랑 똑같고. 관우의 엄숙함도 아버지죠. 제일 닮은 건 유비죠. 아버지 결혼하실 때 저희 외할아버지도 ‘자네는 유비일세’ 하셨대요.”

고 화백은 관찰자의 자세가 철저했다. 90년대 왼쪽 눈이 실명 위기에 처했을 때도 핏줄이 터진 눈에 보이는 풍경을 그림으로 남겼을 정도다. 고 실장은 “아버지가 골프를 치셨는데 (왼쪽 눈 탓에) 거리조절이 안 돼서 스코어가 엉망이었을 때도 퍼팅이 딱 들어가면 ‘일목요연(一目瞭然)’이라 농담하셨다”고 돌이켰다. 고 화백의 사남매는 예술감각을 물려받아 모두 예대를 나왔다. 고 화백의 곁을 가장 오래 지킨 이가 셋째인 고 실장이다. “저는 기억도 안 나는 아기 땐데, 아버지 말씀이, 집에서 일간지 연재 마감을 하는데 제가 신기해서 옆에서 보며 까불다가 귀중한 원고에 잉크를 쭉 엎었대요. 말도 잘 모를 때부터 연필 잡고 끄적끄적했다더군요. 고등학교 때부턴 용돈 벌겠다고 아버지 옆에서 배경 작업을 도와드리기도 했어요.”

2002년 미국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SVA) 대학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하던 그는 아버지의 암 발병 소식에 귀국해 병시중과 바깥업무를 자처했다. 가족을 대표해 ‘고우영 화실 실장’이라 불린 세월이 어느덧 20년. 그도 딸 셋을 둔 아버지가 됐다. 첫손에 꼽는 아버지 작품은  『삼국지』도, 『일지매』도 아니다. “가족에 대한 만화(‘무지개’)를 그린 적이 있으세요. 짤막짤막한 에피소드에 일상생활을 담은 것인데 저는 그 만화를 제일 좋아해요. 1·4 후퇴 때 용기없던 자신을 표현한 일화부터 어머니 처음 만날 때 창피해서 마음 속인 기억까지. 과장된 이야기도 없고 잔잔하죠. 원본을 못 찾아서 일부만 아버지 1주기 추모전 때 도록에 수록했죠.”

그는 “삶이 어렵고 답 없고 막힐 때 아버지가 계셨다면 ‘이럴 땐 어떻게 할까요’ 이러면 ‘야 네 맘대로 해’ 말하셔도 어쨌든 그 한마디에 위안이나 답을 얻을 텐데, 그게 제일 아쉽다”고 했다. “너무 빨리 가신 것 같아요. 60대 중반, 너무 아까운 나이잖아요.”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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