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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1000㎞ 별거’로 배터리 갈등 봉합…명분 얻고 비난 피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SKC 공장이 들어설 말레이 KKIP공단 조감도. 사진 KKIP 홈페이지

SKC 공장이 들어설 말레이 KKIP공단 조감도. 사진 KKIP 홈페이지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동박(銅箔ㆍCopper Foil)을 만드는 SK넥실리스가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에 공장을 짓기로 결정하면서 동종업체 일진그룹과의 마찰을 마무리했다. 동박은 배터리에서 발생한 열을 방출하고 전극 형상을 유지하는 지지체 역할을 하는 핵심소재다.

27일 SK에 따르면 넥실리스는 첫 해외진출 부지를 코타키나발루 KKIP공단으로 결정했다. 2023년까지 6500억원을 투자해 연 생산량 10t 규모의 기업으로 키운다는 방침이다. SK넥실리스는 SKC가 100% 지분을 갖고 있고, SKC의 최대주주(40%)는 SK㈜다.

에너지업계가 SK의 말레이시아 투자에 주목하는 이유는 중견기업인 일진그룹과의 갈등 때문이다. 두 회사의 갈등을 놓고 업계와 정치권에선 ‘제 2의 LG-SK 배터리 분쟁’으로 비화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논란의 장소는 보르네오 섬에 있는 말레이시아의 4대 도시 중 하나인 쿠칭(Kuching)이었다. 일진그룹의 소재 회사인 일진머티리얼즈는 이곳에 2017년부터 동박 공장을 세워 운영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쿠칭~코타키나발루는 차로 1000㎞ 거리다. 사진 구글맵

말레이시아 쿠칭~코타키나발루는 차로 1000㎞ 거리다. 사진 구글맵

그런데 지난해 하반기 SK가 같은 도시에 동박 공장 부지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나오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일진 측은 “초창기 어려움을 딛고 이제 현지 직원들의 숙련도를 끌어올렸는데 같은 곳에 SK 공장이 들어오는 의도는 뻔하다”며 “우리보다 높은 임금을 제시해, 일 잘하고 한국말도 배운 직원을 빼간다면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며 반발했다. 당시 SK는 “현지 주(州) 정부가 먼저 제안한 땅에 대한 입지 적합도를 검토하는 상황일 뿐”이라며 “우리가 먼저 고른 땅도 아닌데. 일진의 직원과 기술을 빼가려 한다고 몰아세우는 건 부당하다”고 반박했다.

당시 논란은 산업통상자원부에 대한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거론됐다.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논란을 언급하며 “일진에서 SKC로 노동자가 옮겨간다든지 기술 이전과 관련한 문제 발생 가능성이 있다”며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배터리 분쟁이 국제적으로 벌어지면서 법률 비용만 4000억원이 발생해 기업들이 미래 투자를 위해 쓸 돈이 소모되고 있는데, 이같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정부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진 "선의의 경쟁", SK는 "ESG 경영" 명분

결국 SK가 쿠칭에서 동북쪽으로 1000㎞ 떨어진 코타키나발루에 새 공장입지를 결정하면서 논란은 끝났다. 일진 측은 “SK의 말레이시아 진출 자체를 반대한 적은 없었다”며 “이제 배터리 소재 분야에서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SK의 동박. 사진 SK넥실리스

SK의 동박. 사진 SK넥실리스

SK는 일진의 반발을 의식한 결정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SKC는 “공장 사용 전력 100%를 신재생에너지로 사용할 수 있는 ‘RE100’ 실현이 가능한 지역이 코타니카발루였다”고 밝혔다. SKC는 이 지역의 수력발전 등 신재생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점, 수출에 필요한 항구와 공항이 갖춰진 점, 가스ㆍ용수 기반이 우수한 점 등을 입지 결정 이유로 꼽았다.

이로써 SK는 최태원 회장이 강조하는 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 등 비재무적 요소를 경영 핵심 기조로 삼는 것) 경영 강화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중견기업에 대한 기술 침해 논란도 예방하는 두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게 업계 평가다. 김영태 SK넥실리스 대표는 “세계에서 가장 얇은 배터리용 동박을 가장 길고 넓게 생산하는 최고의 기술력을 공고히 하겠다”며 “말레이시아 진출로 원가경쟁력을 확보하고 추가 투자도 지속해 세계 1위 지위를 다지겠다”고 말했다.

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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