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간병인 한명이 8명 종일 돌봐…“기저귀 갈아줄 시간도 부족”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요양병원 대해부 〈중〉 

“간병제도를 이대로 두면 차라리 빨리 죽는 게 나아요.”

요양병원 간병인 없인 돌봄 불가능 #자격·인력·처우 기준도 없어 문제 #“간호·간병통합 서비스 도입하고 #간병비에 장기요양보험 적용해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수도권의 한 요양병원 간호사 A씨는 간병제도의 문제점을 이렇게 요약했다. A씨는 “요양병원에서 환자가 학대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A씨의 설명이다.

“집에서 가족이 24시간 환자를 봐도 안전하지 못한데, 요양병원은 어떻겠어요. 간병인이 최소 5~6명(평균 7~8명)을 맡아요. 환자는 대소변도 못 가리고, 식사도, 양치질도 혼자 못해요. 간병사는 잠도 잘 못자요. 환자는 ‘지금 오줌 눴으니 기저귀 갈아줘’라고 하는데, 당장 못 해요. 소변 시간이 다 다른데 그때마다 갈면 일 못해요. 치매 환자 욕 들으면서 해보세요. 반나절도 못 견뎌요. 학대 안 할 환경을 만들어 줘야지요.”

간병인 “일 많아 잠도 제대로 못자”

요양병원·요양원 증가 현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요양병원·요양원 증가 현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다음은 중국동포 간병인(60) B씨. 2014년 한국에 온 간병인 7년차다.

“하루에 열 번 기저귀 갈아준 환자도 있어요. 침대에서 자보는 게 소원이에요. 병실 구석에 박스 깔거나 의자 모아서 자는 거야. 환자들이 잠도 잘 안자요. 그래서 나도 깊은 잠을 못 자죠. 옷 갈아입을 시간이 없어서 편한 옷 입고싶어도 그냥 자요. 밤에 환자한테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요. 스트레스 말도 못해요.”

B씨는 다른 말도 했다.

“환자들이랑 세탁기를 같이 쓰죠. 어떤 병원에선 감염 교육을 받았는데, 대부분 그런 거 없어요. 환자별 장갑을 두고 계속 쓰죠. 밥 먹을 때는 식판 돌면서 먹입니다.” 손을 매번 씻는다는 얘기는 들을 수 없었다.

요양병원 간병인 현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요양병원 간병인 현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요양병원에서 코로나19가 창궐한 이유는 정책 실패다. 코호트(동일집단) 격리라는 방역 기법을 잘못 적용했다. 다른 이유도 있다. 후진적인 간병인 제도 때문이다. 경기도 부천 효플러스요양병원에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하자 21명의 간병인이 순차적으로 빠져나가고 1명만 남았다. 빈자리를 의료인이 떠안았고, 행정직원이 간병에 나섰다가 숨지기도 했다. 이 병원 관계자는 “지옥 문이 열리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서울 구로구 미소들요양병원 한 의료진은 “간병인이 빠져나가면서 초반에 환자가 많이 숨졌다”고 말했다.

요양병원 간병제도는 자유시장에 맡겨져 있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순구 교수의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화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간병인의 자격·인력·처우 기준이 없다. 보고서는 “한 간병인이 10~20명 이상의 환자를 케어하다 보니 환자를 신체 보호대에 묶는 등 학대가 발생하고 짧은 시간에 여러 명의 환자에게 밥을 먹여야 하니 억지로 먹이는 사태가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간병인을 구하는 것도, 간병비도 환자에게 “알아서 하라”고 한다.

손덕현 대한요양병원협회 회장은 “요양병원이 과당경쟁을 하면서 간병비를 떠안고, 손해를 벌충하려고 다른 데서 아끼고, 질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어떤 경우는 간병인 2~3명이 40명, 한층을 본다. 어떻게 서비스가 되겠느냐. 약으로 재우거나 신체 보호대를 쓴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고 말했다.

전국 간병인 4만여명 … 41%가 중국동포

요양병원·요양원 비교.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요양병원·요양원 비교.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요양병원 코로나19 감염의 상당 부분이 요양보호사나 간병인에게서 발생했다. 전국 간병인은 4만 여명, 이 중 1만6400명(41%)이 중국동포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없다. 손덕현 회장은 “그들이 아니면 노인 간병은 불가능하다. 이들의 공동 간병 덕분에 자녀가 부모 간병비로 월 50만원 안팎(한국 간병인은 70만~80만원)만 부담한다”고 말한다. 디지털융복합연구에 지난해 1월 실린 논문(일개 지역 요양병원 간병인의 감염관리수행도 연구, 홍나경 제주의료원 수간호사, 강경자 제주대 간호학과 교수)에 따르면 간병인들은 평균 7.9명의 환자를 돌보며, 10명 중 3명 꼴로 본인이 질병을 옮기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24%는 감염 예방 교육을 받지 않았다. 연구팀은 8개 요양병원 간병인 197명을 조사했다.

전문성 부족해 환자 질병 유발도

한 간병인 공급업체 대표는 “어떤 병원은 기저귀를 제공하는데, 이 비용을 아끼려고 2~3회 소변을 보고 교체하라고 요구한다”며 “간병비를 아끼려고 중국동포 간병인을 쓰는데, 이들의 전문성이 떨어져 기저귀 갈다 요도 감염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안은 간병 제도화이다. 문제는 재원이다. 명순구 교수팀은 요양보호사 1명이 6명의 환자를 3교대로 간병한다고 가정할 경우 10만2800명이 필요하고 이들에게 월 226만원 가량을 지급하는데 연간 2조7818억원이 들 것으로 추정했다. 손덕현 회장은 “일반병원처럼 간호·간병통합 서비스(보호자 없는 병원)를 요양병원에도 도입하고, 간병비에 건강보험이든 장기요양보험이든 적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간병인을 제도화하면 요양병원이 더 늘어날 위험이 있다. 이상한 구조에 수혈하는 꼴이 될 것이다. 요양병원을 정리해서 장기요양보험으로 일원화한 뒤 간병비에 보험을 적용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채혜선 기자  sssh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