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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연 90억 받을 땅 8억에…인국공 '이상한 삼각계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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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 17일 오후 인천 영종도 스카이72 골프장 인근의 BMW드라이빙센터. 며칠 전에 큰 눈이 왔지만 말끔하게 치워져 있는 드라이빙 트랙에는 각종 BMW 차들이 쌩쌩 달렸다.

축구장 33개 크기의 영종도 BMW드라이빙 센터 #BMW,공시지가 900억 부지 보유세만 내고 사용 #땅 주인 인국공의 적정임대료는 연 45억 이상 #BMW가 투자하는 조건으로 계약…독일본사 투자없어 #단순 전대자 스카이72, 매년 12억5000만원씩 챙겨

축구장 33개 크기(24만㎡)의 광활한 대지에 드라이빙 트랙, 오프로드 코스, 자동차 전시장 및 박물관, 이벤트 홀 등을 갖춘 일종의 자동차 테마파크로 BMW 마니아 사이에 '성지'로 꼽히는 명소다. 입장료는 무료지만 드라이빙 체험은 하루 최대 200만원(8시간)을 내야 한다. BMW코리아는 2014년 문을 연 이곳을 자사의 대표적인 사회공헌활동 사례라고 소개해왔다. 김효준 BMW코리아 회장은 770억원을 투자해 드라이빙센터를 조성한 게 자신의 최대 성과라고 언론 인터뷰 때마다 밝혔다.

영종도 BMW 드라이빙 센터 내 전시관에는 방문객이 직접 타 볼 수 있는 18대의 자동차가 있는데 비어 있는 차가 없을 정도로 방문객이 끊이지 않았다. [함종선 기자]

영종도 BMW 드라이빙 센터 내 전시관에는 방문객이 직접 타 볼 수 있는 18대의 자동차가 있는데 비어 있는 차가 없을 정도로 방문객이 끊이지 않았다. [함종선 기자]

 공시지가 900억원 땅, 보유세만 내고 사용

BMW코리아는 공시지가 900억원에 달하는 이 부지를 살뜰히 사용하고 있지만, 정작 땅 주인인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이 땅의 임대료로 해당 토지에 대한 보유세 해당금액만 받고 있다. 임대수익을 제대로 못 내고 있는 셈이다.

BMW드라이빙센터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BMW드라이빙센터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원래 이 땅은 국내 골프장 중 최대 수익(2019년 당기순이익 141억)을 올리고 있는 스카이72가 인천공항공사로부터 빌린 땅 중 일부다. 골프장 옆 자투리땅이고 '경관개선지구'로 돼 있어 스카이72가 자신의 돈을 들여 경관 개선 작업을 해야 한다. 그런데 마침 드라이빙센터 부지를 찾고 있던 BMW코리아와 연결이 돼 결과적으로 드라이빙센터로 경관을 '개선'한 셈이 됐다. 경관개선부지 추가개발사업 실시협약은 스카이72골프장 계약과 별개다.

BMW드라이빙센터에서 '한 참가자가 'M 드리프트' 교육을 받고 있다. 드리프트(drift)란 차량을 고의로 미끄러트려 코너를 돌아나가는 고난이도 테크닉이다.[중앙포토]

BMW드라이빙센터에서 '한 참가자가 'M 드리프트' 교육을 받고 있다. 드리프트(drift)란 차량을 고의로 미끄러트려 코너를 돌아나가는 고난이도 테크닉이다.[중앙포토]

경관개선지구로 지정된 곳이 민간의 '수익시설'로 바뀌는 과정에서 크게 2개의 계약이 2012년 맺어졌다. 우선 땅 주인인 인천공항공사는 경관개선지구를 BMW 자동차복합문화공간으로 개발하겠다는 스카이72의 제안을 받아들여 스카이72와 실시협약을 체결했다. 또 스카이72는 이 실시협약을 근거로 BMW코리아와 임대차계약을 맺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스카이72-BMW코리아 계약 관계.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인천국제공항공사-스카이72-BMW코리아 계약 관계.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익명을 요구한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외견상으로는 각각의 계약이지만 인천공항공사와 스카이72간의 계약은 독일 회사인 BMW가 인천공항공사 땅에 770억원을 투자한다는 전제에 따라 이뤄진 것이고, 실제 인천공항공사가 BMW코리아에 2025년까지 드라이빙센터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줬기 때문에 사실상 삼자 간의 계약"이라고 말했다. 실제 인천시와 인천경제자유구역청 등은 영종도에 거액의 외국자본을 유치한 성공사례로 이 계약을 꼽고 있다.

영종도 BMW 드라이빙 센터에 외국 자본이 투자했다는 것을 보도한 각종 기사 [다음 검색 캡쳐]

영종도 BMW 드라이빙 센터에 외국 자본이 투자했다는 것을 보도한 각종 기사 [다음 검색 캡쳐]

땅 주인인 인천공항공사는 드라이빙센터로 용도가 바뀐 땅에 대해 새로 토지임대료를 책정했다. 스카이72는 토지임대료로 드라이빙센터 총매출액의 5%와 토지 관련 세금(보유세) 중 큰 금액을 인천공항공사에 내게 돼 있는데, 보유세가 더 많아 스카이72는 매년 보유세(3억~8억원, 공시지가 상승에 따라 증액)만 내고 있고 그 외의 임대료는 받지 않고 있다.

토지임대료 가이드라인은 국유재산법에는 공시지가의 5% 이상, 인천공항공사 자산관리규정에는 공시지가의 10% 이상이 최저선이다. 다만 토지의 위치와 쓰임새에 따라 인천공항공사 사장 재량으로 임대료를 조정할 수 있다. 드라이빙센터 인근의 물류단지 임대료는 공시지가의 10%이고, 스카이72골프장의 임대료는 공시지가의 4% 선이다.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공시지가의 10%를 적용할 경우 연간 90억원을 토지 임대료로 받아야 하고 5%를 적용하면 45억원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땅 주인인 인천공항공사와 스카이72가 드라이빙센터 부지에 대해 맺은 실시협약 중 토지사용료 부분.

땅 주인인 인천공항공사와 스카이72가 드라이빙센터 부지에 대해 맺은 실시협약 중 토지사용료 부분.

인천공항공사는 인천공항을 운영하고 있지만 주 수입원은 부동산임대업이고, 1년에 1조2886억원의 영업이익(2019년)을 내는 부동산전문가 집단이다. 2001년부터 수많은 부동산 계약을 통해 임대료를 받아왔는데 이처럼 인천공항공사가 임대료 수익을 못 챙기는 계약은 '전무후무'하다는 게 인천공항공사 직원들의 공통된 얘기다.

인천공항공사의 한 직원은 "당시 스카이72가 국내 골프장 중 매출액 1위 행진을 이어가고 있었고, 그 배경은 서울에서 1시간 이내 거리인 뛰어난 접근성"이라며 "이미 접근성이 충분히 검증된 드라이빙센터 부지를 헐값에 빌려준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인천공항공사의 또 다른 직원은 "BMW라는 글로벌 기업이 투자한다고 해서 편의를 봐 준 측면이 있긴 하겠지만, 유래를 찾기 어려운 이상한 계약"이라고 말했다.

이런 계약의 과실은 스카이72와 BMW코리아가 누렸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스카이72와 BMW 간의 계약서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부지 전대(轉貸)자인 스카이72는 드라이빙센터 공사비 대출액에 대한 원리금 외에 별도로 시설사용료 명목으로 BMW로부터 매년 12억5000만원을 받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이 12억5000만원을 스카이72는 매년 임대수익으로 계상했다. 스카이72 박선영 홍보팀장은 "한국 부동산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BMW 독일 본사의 방침에 따라 드라이빙센터는 스카이72가 국내 은행에서 450억원을 빌려 지었고, 사용료 12억5000만원은 은행대출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스카이72의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에 대한 일종의 보상금 성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대출계약은 자금력이 탄탄한 BMW코리아가 지급보증을 했기 때문에 리스크가 거의 없는 거래로 평가된다.

중앙일보가 단독 입수한 스카이72와 BMW코리아 간의 드라이빙센터 관련 계약서

중앙일보가 단독 입수한 스카이72와 BMW코리아 간의 드라이빙센터 관련 계약서

또 스카이72 측의 설명대로라면 BMW코리아가 한국 자동차문화 발전을 위해 투자했다고 하는 770억원의 출처와 사용처도 그동안 알려졌던 것과는 다르다. 일단 드라이빙센터 조성을 위해 독일 본사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돈은 1원도 없다. 공사비는 스카이72가 국내 은행에서 빌린 것이고, BMW코리아는 한국에서 번 돈으로 매년 이에 대해 원금과 이자를 갚아나가고 있다. BMW코리아 측은 "지금까지 공사비 대출금에 대해 280억원을 갚았다"며 "독일에서 드라이빙센터 관련 투자자금이 별도로 들어온 건 아니지만, 독일 본사에 들어갈 수익금 중 일부가 드라이빙센터에 쓰인 것이기 때문에 투자로 보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BMW가 매년 갚아나가고 있는 공사비는 정상적인 땅 임대료(연간 45억~90억원)에도 못 미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벤츠코리아는 용인에 에버랜드 드라이빙 트랙 일부만을 자사 행사 때 사용하는 조건으로 연간 임대료 20억원가량을 내고 있다.

 직원 교육센터 짓는 데 쓴 돈도 한국 위한 투자금? 

또한 드라이빙센터 옆에는 BMW 직원들의 정비 교육을 위한 5500㎥ 규모의 트레이닝 아카데미와 영종도 유일의 BMW 정비센터도 있다. 정비센터 등에 들어간 100억원 이상의 돈까지 BMW코리아 측은 투자비로 계산했는데, 트레이닝센터는 BMW의 자체교육시설이고, 정비센터는 수익시설이다.

 지역주민에게 개방하게 돼 있는 축구장 등의 체육시설 부지는 주차장으로 변경돼 있다. 보도블록의 색이 밝은 부분이 축구장 있던 자리 [함종선 기자]

지역주민에게 개방하게 돼 있는 축구장 등의 체육시설 부지는 주차장으로 변경돼 있다. 보도블록의 색이 밝은 부분이 축구장 있던 자리 [함종선 기자]

사회공헌활동과 관련해 BMW코리아 측은 "도서 지역 어린이들을 초청해 자동차의 원리 등을 무료로 알려주고 있고 지역 주민들을 직원으로 채용해 지역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린이들을 위해 2층에 마련된 키즈드라이빙스쿨은 2018년 11월부터 운영을 하지 않고 있고, 지역주민들을 위해 365일 개방하게 돼 있는 1만2000㎡의 주민체육시설은 최근 주차장으로 변경됐다.

인천공항공사와 스카이72간의 실시협약 기간은 지난해 말로 끝났는데, 스카이72와 BMW코리아는 연장 계약을 통해 2025년까지 사용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 실제 스카이72와 BMW 코리아 간의 계약서에는 이런 내용이 명시돼 있다.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스카이72와 정식 계약은 2020년 말로 끝난 상태"라며 "스카이72에 우선협상권을 주기는 했지만, 인천공항공사는 정상적인 토지임대료를 받을 수 있는 구조로 계약을 할 것이고, 만약 스카이72와 협상이 여의치 않으면 소송을 통해 정당한 권리를 되찾을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스카이72는 인천공항공사와 가장 많은 소송을 벌인 법인이고,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공사 때는 진입도로 공사 문제로 소송을 벌여 인천공항공사로부터 80여억원을 받아내기도 했다.

함종선 기자 ham.jongs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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