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옳고 아내도 옳고 … 갈대家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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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뜻을 따라야 하나, 아내의 생각에 동의해야 하나. 30대 고시생 X씨는 고민 끝에 결국 TV를 통해 자신의 문제를 공개재판에 부쳤다.

외아들로 어머니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자랐던 그는 판사 아들이 소원인 어머니와 아내의 동의하에 결혼 후에도 몇 년 동안 고시공부만 하고 지냈다. 살림은 어머니와 아내가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어렵사리 꾸려왔다. 하지만 해마다 거듭하는 낙방소식에 아내가 최근 자신에게 평범한 일로 새출발하기를 원하면서 아내와 어머니의 극한 대립이 시작된 것이다.

자신의 진로 때문에 고부(姑婦)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불거졌건만 정작 당사자인 그이는 별반 의견이 없다. 어머니와 아내가 의견 조율을 잘 해주면 자신은 그 뜻을 따를 뿐인데 서로 한치의 양보없이 불화를 일으키니 둘다 원망스러울 뿐이다. 그래서 공개적으로라도 자신의 답답한 심정을 하소연하고 남들의 의견에라도 기대고 싶었던 것이다. 사연을 듣던 방청객들은 양편으로 나뉘어 누구의 뜻이 옳은지 한참동안 열띤 토론을 벌였다. X씨의 우유부단함은 당연한 현상인 양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시청자 투표가 실시됐고 결과는 52대 48로 어머니의 근소한 승리로 끝났다.

X씨는 자신을 둘러싼 문제를 두고 일어난 고부갈등 때문에 방황하는 수많은 한국 가장들의 한 예에 불과하다. 이 땅의 남자들은 피곤하다. 명색은 '집안의 기둥'인 가장이지만 참모습은 고부간 파워게임에 치이다 결국 승자의 뜻을 좇아야 하는 꼭둑각시에 더 가깝다.

남자는 가장이 되면 분명한 사회적 역할을 강요받는다. 이 요구에 부응하려면 본인이 하고 싶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명확히 찾아 책임있게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내 뜻을 어느정도나마 이룰 가능성이 높다. 어머니 은혜가 하늘보다 높고 아내에 대한 사랑이 바다같이 넓다 한들 그들의 희망대로 내 인생을 살 수는 없는 일이다.

만일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사랑하는 가족 누군가의 희망에 반할 땐 당사자가 나서서 가족을 설득하고 견해를 좁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자신의 문제에 대한 선택의 칼자루를 어머니나 아내에게 미루는 행동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심리적 퇴행(退行)일 뿐 아니라 고부갈등을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가장인 당신의 선택이 분명할 때 어머니와 아내는 서로 갈등이나 반목 대신 힘을 합해 당신의 성공을 도와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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