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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도 미룬 79세 美간호사, 생일 전날 코로나로 끝내 은퇴

중앙일보

입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이어지고 있는 미국에서 한 노(老) 간호사의 죽음을 추모하는 물결이 일고 있다.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은퇴를 미루며 아비규환에 빠진 응급실을 지키다 결국 코로나19에 감염돼 숨지게 된 사연이 알려지면서다.

주인공은 앨라배마주 쿠사밸리 메디컬센터의 응급실에서 일하던 배티 그리어 갤러거(78)다. 그는 지난 10일 자신이 일하던 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79세 생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미 앨라배마주의 쿠사밸리 메디컬 센터는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간호사 갤러거의 죽음을 추모했다. [페이스북 캡처]

미 앨라배마주의 쿠사밸리 메디컬 센터는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간호사 갤러거의 죽음을 추모했다. [페이스북 캡처]

19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갤러거는 43년간 줄곧 응급실 간호사로 일했다. 응급실에서 그는 '엄마'로 불렸다. 고령에도 환자는 물론이고 간호사 동료들을 극진히 챙기면서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응급 상황에서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동료들을 위해 출근길에 늘 햄버거를 사 들고 출근했다고 한다.

갤러거에게도 이 병원은 특별하다. 이곳에서 남편을 만났고, 두 아들을 자신과 같은 간호사로 키웠다. 남편 척 텔러는 "갤러거는 일을 사랑했고, 병원은 고향과 같았다"고 말했다.

16년 전 한 번의 은퇴 기회가 있었다. 당시 나이 62세. 동료들 대부분이 은퇴를 선택했지만, 그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해 8월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폐허가 된 미 남부 재난 현장을 찾아 떠났다.

그리곤 모두의 예상을 깨고 다시 쿠사밸리 병원으로 다시 돌아왔다. 당시 그는 "응급실에서의 일상이 그립다"면서 "내 생의 마지막 날까지 이 병원 응급실에서 일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미 앨라배마주의 쿠사밸리 메디컬 센터 의료진이 코로나19 환자를 돌보다가 숨진 간호사 베티 그리어 갤러거를 애도하며 만든 틱톡 영상. [틱톡 캡처]

미 앨라배마주의 쿠사밸리 메디컬 센터 의료진이 코로나19 환자를 돌보다가 숨진 간호사 베티 그리어 갤러거를 애도하며 만든 틱톡 영상. [틱톡 캡처]

그러던 지난해 3월 또한번 위기가 찾아왔다. 코로나19가 확산하자 동료들은 고령의 갤러거를 걱정하며 은퇴를 권유했다. 동료들의 간곡한 당부에 이틀간 집에 머무르기도 했다. 하지만 사흘째 되던 날 그는 다시 햄버거를 손에 들고 응급실에 나타났다. 당시 놀란 동료들을 향해 "나는 응급실 간호사"라며 "환자를 돌보는 일을 죽을 때까지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지난 10개월 동안 갤러거는 20대 후배 간호사들과 함께 코로나 최전선을 지켰다. 12시간씩 2교대 근무를 했고, 야간근무도 거른 적이 없었다. 갤러거 특유의 유쾌한 성격은 지쳐가던 응급실에 활력소가 됐다.

하지만 환자와 동료를 챙기느라 그 자신은 돌보진 못했다. 한 달 전부터 거친 숨소리를 몰아 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피로가 누적된 탓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코로나19 검사 결과 양성판정이 나왔다.

코로나19로 자신이 일하던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 간호사 베티 그리어 갤러거(왼쪽). [틱톡 캡처]

코로나19로 자신이 일하던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 간호사 베티 그리어 갤러거(왼쪽). [틱톡 캡처]

의사는 전담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라고 권했지만 갤러거는 사양했다. 자신이 일하던 병원에서 동료들과 끝까지 함께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병원 중환자실에서 두 아들과 수 십명의 동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갤러거의 사연은 동료들이 동영상 공유앱 틱톡에 그의 생전 영상을 올리면서 뒤늦게 알려졌다. 30만 회 이상 조회된 영상에는 추모의 글이 이어지고 있다. 동료 니키 조 하텐은 "갤러거는 언제나 남을 돕기를 원했다"며 "그가 그랬던 것처럼 모두가 생의 마지막까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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