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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44.7세→22세, 어려진 응씨배 4강 진출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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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일러스트 김회룡

일러스트 김회룡

지난주 치러진 9회 응씨배 준결승에서 2000년생 두 명이 나란히 결승에 올랐다. 며칠 전 21세가 된 한국의 신진서와 중국의 셰커가 그들이다. 4강까지 확대해도 평균나이는 22세에 불과하다. 다른 스포츠에 비해 전성기가 빠르다. 바둑나이는 자꾸 어려지는 걸까. 9번의 응씨배를 통해 바둑나이를 살펴보자.

인생경험·연륜도 승부에 긍정적 #바둑나이 더 낮아지지 않기를

1회 응씨배가 열린 1988년으로 돌아가면 4강전은 조훈현(35)-린하이펑(46), 녜웨이핑(35)-후지사와 슈코(63)의 대진이었다. 평균 나이는 44.7세. 특히 63세 슈코의 분전이 놀라웠다. 그는 고목처럼 마른 팔을 뻗어 녜웨이핑을 몰아붙였다. 이런 광경은 이젠 영영 볼 수 없을 것이다. 조훈현은 이듬해 36세에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1992년의 2회 대회는 서봉수(39)-조치훈(36), 오타케 히데오(50)-루이나이웨이(29). 평균 38.7세. 이듬해 40세 서봉수가 우승했다. 31세의 유창혁이 우승한 3회 대회는 4강 평균이 38.5세, 25세의 이창호가 우승한 4회 대회는 4강 평균이 30.25세였다. 평균연령이 계속 낮아졌지만 이때까지는 바둑의 전통적인 이미지가 살아있었다. 바둑은 힘으로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노장도 승부가 가능하다는 것, 바둑은 인생의 경험도 중요하기에 연륜도 승부의 긍정적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40대 명인이 진정한 명인”이라는 옛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라는 것.

그런 점에서 2004년 5회 응씨배는 충격적이었다. 4강의 얼굴은 최철한(19)-펑취안(19), 창하오(28)-송태곤(18). 10대가 3명이고 4강 평균은 불과 21세였다. 우승자는 창하오였지만 보석처럼 반짝이는 10대의 힘이 무서웠다.

1985년생 최철한은 15세 때 농심배 한국대표로 3연승했고 19세 때 최강 이창호를 연파하고 국수와 기성에 올랐다. 최철한은 4년 후 6회 대회 때 기어이 응씨배를 들어 올렸다. 1986년생 송태곤은 17세 때 신인왕전, KBS바둑왕전에서 우승했고 후지쓰배 세계대회서 준우승했다. 18세 때도 TV아시아 준우승과 응씨배 4강. 이제 시작이다 싶었는데 송태곤은 승부를 떠났다. 한계를 느꼈다고 고백하며 일찍 TV 해설자로 전향했다. 최철한과 송태곤은 이창호 시대의 또 다른 천재들이었다.

2012년의 7회 대회 때는 불과 17세의 판팅위가 박정환(20)을 누르고 우승했다. 이창호의 세계대회 최연소우승기록(16세 5개월)에 두 달 뒤졌지만 대단한 기록이었다. 박정환은 7회와 8회 연속 결승에 올랐으나 모두 중국 기사에 막혔다. 그리고 올해 신진서가 생애 처음 응씨배 우승에 도전한다. 신진서는 더욱 강해지고 있어 조훈현-서봉수-유창혁-이창호-최철한에 이어 한국바둑 응씨배 계보에 이름을 올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시 나이 얘기로 돌아가면 뇌를 쓰는 바둑은 몸을 쓰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조금 일찍 피고 조금 일찍 저문다. 왜 그럴까. 바둑이 천재들의 놀이터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뇌가 몸보다 더  빨리 열리고 더 빨리 닫힌다는 의미일까. 생물학적인 문제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바둑나이가 더 이상 낮아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이번 응씨배 ‘4강 평균 22세’가 마지노선이길 희망한다. 선두권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어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AI라는 존재가 변수다. AI가 쏟아내는 끝도 없는 변화들은 탁월한 기억력과 순발력을 요구하고 있고 그 점은 어릴수록 유리해 보인다.

후지사와 슈코는 30년 후배 조치훈과의 결전을 앞두고 “그는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를 한 가닥만 보지만 나는 두 가닥을 본다”고 호언했다. 듣는 이를 흐흐 웃게 만들던 그런 목소리가 바둑의 재미였는데 이제 다시 듣기 힘든 추억이 됐다.

박치문 바둑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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