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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혁명 현장”이라며 “집회보다 일상”…광화문에 나무 7017그루 심는 서울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9개 시민단체가 지난해 11월 재개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을 반대하는데도 서울시는 공사를 계속하고 있다. 서울시는 그간 시민 의견을 충분히 반영한 데다 기존에 추진되던 사업인 만큼 권한대행이 사업을 추진하는 데 법적인 하자도 없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시의 견해와 달리 절반이 넘는 서울시민은 사업에 반대하고 있으며, 상당수 시민은 사업 자체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단체는 “서울시와 소통한 내용이 실제론 반영된 게 없다”며 “명분 쌓기용 소통 횟수보다 실천이 중요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서울시, 73.5%가 찬성했다지만…56.7%가 반대”

지난해 11월부터 '재구조화 공사'가 진행중인 광화문 광장의 모습. [허정원 기자]

지난해 11월부터 '재구조화 공사'가 진행중인 광화문 광장의 모습. [허정원 기자]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은 현재 세종로 중앙에 있는 광장을 세종문화회관이 있는 서쪽으로 옮기는 사업이다. 광장면적은 총 3만4600㎡로 이곳에 사계 정원, 물놀이 정원, 야외무대 광장 등을 조성한다. 11~12차로인 세종대로는 7~9차로로 좁힌다. 찻길은 동쪽으로 쏠리게 만든다. 여기에 광화문 앞에 동서로 뻗은 사직로 일부에 ‘월대(정전 앞 기단)’를 복원해 도로를 곡선으로 변경한다. 총 사업비는 791억원이다.

 그러나 시민단체와 서울시가 견해차를 보이면서 재구조화 사업을 둘러싼 논란은 봉합되지 않고 있다. 서울시는 작년 “서울시민 73.5%가 광화문광장의 변화·개선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발표했지만 18일에는 이와 반대되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시사저널이 서울 거주 18세 이상 남녀 505명을 대상으로 여론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56.7%가 사업에 반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광화문광장 재조성 상상도. [서울시]

광화문광장 재조성 상상도. [서울시]

 찬성 의견은 34.4%로 반대 의견보다 22.3%포인트 낮았다. 특히 정치 성향에 따라 찬반이 극명하게 갈리는 모습을 보였다. 자신을 ‘진보’라고 답한 응답자는 65.3%가 찬성했고, ‘보수’라고 답한 응답자는 67.9%가 반대했다.

 여기에 중도층의 66.8%가 반대하며 전체적인 무게 추가 ‘반대’로 기울었다. 지난해 서울시는 이 사업을 재개하며 “330회에 걸친 시민토론을 거쳤다”고 했지만, 광화문 재구조화 사업 자체를 모른다는 응답도 전체의 44.4%에 달했다.

 “의견반영 없었다” 비판에도 미동 없는 서울시

서울시민재정네트워크, 경실련,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지난해 11월 16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특별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착공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서울시민재정네트워크, 경실련,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지난해 11월 16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특별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착공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문제는 사업 설계 초기부터 서울시와 논의해온 시민단체가 “의견 반영이 미흡하다”며 반대의견을 냈음에도 공사가 강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은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은 원래 계획대로 차질없이 추진된다”며 “올해 10월이면 새로운 광화문 광장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업을 제고할 뜻이 없음을 밝힌 셈이다.

 이에 경실련·도시연대·서울시민연대 등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졸속추진 중단을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는 “시민단체와 32회 소통한 결과는 아무것도 반영되지 않았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대표적인 게 서울시가 광화문 재구조화 사업의 목적으로 추진 중인 수도권광역급행철도 A노선(GTX-A) 광화문역을 신설하는 문제다.

 시민단체는 “역 한 곳에 약 3474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하는 건 무리”라고 지속해서 주장해왔다. 이미 GTX-A 노선에 서울역이 포함돼있고 서울역과 광화문을 잇는 수많은 대중교통 수단이 있는데 대규모 예산을 투입할 만한 가치가 있느냐고 주장한다. 또 역을 여러 개 만들면 표정속도(역 정차시간을 포함한 전체구간의 평균속도)가 100㎞ 이하로 떨어져 급행열차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다른 지역에도 역을 만들어달라는 요구가 있을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강행 의지를 보였다. 올해 예산안에 GTX 광화문역 신설 사업비 4000만원을 책정하고 지방행정연구원에 타당성 조사 용역을 맡겼다. 타당성 조사는 중앙정부의 중앙투자심의를 신청하기 위한 사전 절차로, 조사 결과는 2월 나올 예정이다.

“촛불 현장”이라면서 “집회보다 일상”…나무 7000그루 심는다

지난해 11월 서울시가 발표한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추진' 자료. 집회ㆍ시위보다는 일상을 강조했다. [서울시]

지난해 11월 서울시가 발표한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추진' 자료. 집회ㆍ시위보다는 일상을 강조했다. [서울시]

 여기에 광화문광장 공사 계획을 기습적으로 발표해 광장 기능도 마비시켰다는 비판도 나온다. 현재 공사중인 광화문광장은 집회를 열 수 없는 상태다. 시민단체는 “민의(民意) 표출의 상징인 광화문광장을 사용할 수 없게 한건 국민의 자유를 침해한 행위”라며 서울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특히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추진’ 자료를 통해 “(광화문광장은) 87년 민주항쟁, 촛불 시민혁명 등 역동의 역사를 만들어온 민의의 현장”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정작 ‘공간조성 방향’을 설명한 대목에서는 “집회·시위보다는 시민의 일상이 있는 공간으로 조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광장에 나무를 심으면 집회·시위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서울시가 광장에 심을 나무는 총 7017그루(큰 나무 317그루ㆍ키 작은 나무 6700그루)에 달한다. 시민단체는 “나무 심기는 이미 삼성 종로타워 등에서 집회·시위를 방해하는 방법으로 악용됐다”고 비판했다.

동절기 공사금지 원칙 어겨…시민단체, “사회적 합의 필요”

서울시의 '보도공사 클로징 11' 기간 중인 지난해 12월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 공사현장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시의 '보도공사 클로징 11' 기간 중인 지난해 12월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 공사현장의 모습. [연합뉴스]

 서측으로 치우친 ‘편측 광장’을 추진한 근거가 빈약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정협 권한대행은 재구조화 공사를 추진하며 “한양도성 내 보행공간 확충이라는 시정의 연장 선상으로 추진된 것”이라고 밝혔지만, 보행 통행량은 동쪽이 서 측의 2배에 달했다. 2019년 5월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평일 오후 6~7시 사이 통행량은 세종로 동쪽이 1815명, 서쪽이 941명이었다.

 이 사업을 추진하면서 서울시가 내부 지침을 어긴 사실도 드러났다. 서울시는 동절기(11월~2월) 공사금지 원칙인 ‘보도공사 클로징11’을 2012년부터 9년째 적용 중이다. 겨울철에는 땅이 얼어 부실 공사가 될 수 있고 보행자의 안전도 위협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서울시는 금지 기간인 지난해 11월부터 지금까지 공사를 계속하고 있다.

 시민단체는 권한대행 체제에서 사업을 추진하기보다 오는 4월 재보궐 선거에서 새로운 시장이 선출된 후 재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경실련 관계자는 “서울시는 단기간에 구체적 성과를 내기 위한 대규모 토건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새로운 서울시장이 들어선 뒤 충분한 사회적 합의와 비전을 마련해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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