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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에 준법감시위 제안했던 정준영 판사 “새로운 위험 예방까진 못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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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영

정준영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는 ‘준법감시위원회’가 부각됐다. 이 위원회는 18일 재판정에서 서울고법 형사1부 소속 부장판사 3명을 대표해 판결문을 읽은 정준영 부장판사(재판장)가 제안해 만들어졌다.

“컨트롤타워 감시 방안도 없어”

정 부장판사는 2019년 10월 25일 처음 열린 파기환송심 첫 재판에서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삼성 신경영’ 사례 등을 언급하며 이 부회장에게 “실효적 준법감시제도”를 제안했다. 총수를 포함한 기업 임직원들이 직무 수행에서 관련 법률을 지키도록 감시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그는 미국에선 연방 양형 기준 제8장에 따라 준법감시제도가 실효적으로 운영되면 처벌을 낮춰준다는 설명도 했다.

삼성은 지난해 1월 삼성 준법감시위를 만들었고, 김지형 전 대법관이 준법감시위 위원장을 맡았다. 정 부장판사는 그달 17일 공판에서 “삼성의 준법감시제도는 기업 범죄 양형기준의 핵심 내용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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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박영수 특검이 반발하며 재판부 기피신청을 내 재판이 지난해 10월까지 미뤄졌다. 재판이 재개되고 나서 정 부장판사는 삼성 준법감시위의 실효성 등을 판단하기 위한 전문심리위원을 선발하고 강일원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전문심리위원으로 지정됐다. 이 부회장 측 추천으로 김경수(전 대검 중수부장) 변호사가, 특검 측 추천으로 홍순탁 회계사가 전문심리위원에 합류했다. 이들 3인의 평가 결과가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됐다.

시간이 촉박하다는 전문심리위원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2월 14일 평가 보고서가 공개됐다. 강 전 재판관은 최고경영진의 준법 의지와 여론의 감시가 중요하다는 중립적 의견을 냈다. 김 변호사는 준법감시위의 의지와 열의가 높다고 진단했다. 반면 홍 회계사는 준법감시위가 실효적으로 작동되지 않고 있으며 한계가 있다고 평가했다. 준법감시위의 실효성에 대해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각자 보고서였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30일 진행된 결심공판에서 “삼성이란 기업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준법 문화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지, 나아가 저 이재용이 어떤 기업인이 되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할 수 있는 화두를 던져줬다”고 강조했다.

전문심리위원들의 보고서와 이 부회장의 발언 등을 검토한 정 부장판사는 준법감시제도의 실효성을 제고하려는 이 부회장의 진정성과 노력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새로운 제도가 실효성 기준을 충족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는 삼성 준법감시제도가 앞으로 발생 가능한 새로운 유형의 위험에 대한 예방과 감시 활동을 하는 데까지는 이르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삼성그룹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조직에 대한 준법 감시 방안이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지 않고, 과거 정치권력에 뇌물을 제공하기 위해 사용했던 허위 용역계약 방식에 관한 위험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봤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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