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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블핑 제니'같은 스타 된다" K팝 아이돌 키우는 AI 회사

중앙일보

입력

케이(K)팝 아이돌을 키우는 인공지능(AI) 회사가 있다. 2017년 문을 연 딥스튜디오다. 가상 캐릭터 남자 연습생 4명과 실제 사람인 여자 연습생 16명이 소속돼 있다. 그룹 이름은 '유어스(YOURS).' 아직 데뷔 전인데도 유어스의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공식 계정 팔로워는 이미 20만명이다. 직원 4명, 누적 투자유치액 5억원의 작은 회사 소속 연습생이지만 대부분의 팔로워가 미국·브라질·인도네시아에 있는 해외 팬일 정도로 글로벌 팬덤을 형성했다. AI 개발사 딥스튜디오는 어쩌다 'K팝 스타'를 키우게 된 걸까. 이들이 생각하는 아이돌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창업자인 류기현(30) 대표를 지난 6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류기현 딥스튜디오 대표 인터뷰

류기현 딥스튜디오 대표가 지난 6일 중앙일보와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정민 기자

류기현 딥스튜디오 대표가 지난 6일 중앙일보와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정민 기자

왜 가상 아이돌을 개발했나.
K팝 아이돌에게 요구되는 자질이 춤, 노래, 인성, 외모 등인데 한 사람이 소화하기에 너무 많다. 가상 존재가 대신 한다면 세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 봤다.
인플루언서나 연예인도 AI가 대체할 수 있다고 보나.
가상 아이돌이라고 모든 게 AI는 아니다. 지금은 설정·스토리는 사람이 만들고, 외모만 AI가 만든다. AI가 예술인을 완전히 대체하는 건 부적절하다. 재능이 있지만 뭔가 부족해 도전할 수 없는 사람을 돕는 형태여야 한다. 노래 잘하고 춤 잘 추지만 외모 경쟁력이 떨어지면 AI 아바타나 얼굴로 보완하는 식이다. 매력적인 가상 캐릭터에 자신의 춤과 노래를 입힌다는 의미다. 누구나 자신의 꿈과 재능을 살려 스타가 될 기회가 생길 것이다.
'YOURS'로 불리는 딥스튜디오의 가상 연습생들 [사진 딥스튜디오]

'YOURS'로 불리는 딥스튜디오의 가상 연습생들 [사진 딥스튜디오]

스타는 희소해야 하지 않나.
독특한 장점을 살린 스타가 많아질 것이다. Z세대(1995~2004년생 Z세대) 취향은 개인마다 다르다. 성별도 남녀를 넘어 제3의 성 등 여러 가지로 구분하는 세대인데, 각자 좋아하는 스타가 다를 수밖에 없지 않겠나.
가상 인간은 호불호가 갈린다.
유튜버도 처음엔 이상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그걸로 인기를 얻고 돈을 버는 사람이 나오면서 직업으로 인정받고 인식이 바뀌었다. 경제적 가치가 입증된 사례가 여럿 생기면 어느 순간 대중화하지 않을까.
딥스튜디오가 생각하는 'AI 아이돌'이란 결국 뭔가.
블랙핑크의 제니가 아니어도 누구나 제니만큼 인기 있는 아이돌이 될 수 있는 것. 비주얼·노래·춤 담당 등 여러 명의 재능이 한 명의 가상 아이돌에 모여 커 나가는 형태다.
'YOURS'로 불리는 딥스튜디오의 실제 연습생들 [사진 딥스튜디오]

'YOURS'로 불리는 딥스튜디오의 실제 연습생들 [사진 딥스튜디오]

지난해 초 실제 걸그룹 육성에도 뛰어들었다.
아이돌이란 가상이든 실제든 결국 캐릭터 만드는 사업이다. 실제 연습생을 함께 키우는 게 더 빠른 길이라고 생각했다. 가상 아이돌만 했을 땐 이미지 합성에 걸리는 시간 때문에 다양한 콘텐트 실험이 불가능했다. 실제 연습생을 키워보며 고객(팬)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예민한지 훨씬 빨리 파악할 수 있었다.
AI 회사가 연예기획사가 됐다. 전문성이 떨어지진 않나.
안무 및 레슨, 촬영, 프로듀싱, 의상 등은 외주를 준다.
팬 투표를 통해 데뷔가 결정된다고.
여자 연습생의 경우 100만표를 얻은 7명의 연습생이 나왔을 때 하나의 그룹이 데뷔한다. (가상의) 남자 연습생 또한 비슷한 형태로 데뷔시키고자 한다.
'YOURS'로 불리는 딥스튜디오의 실제 연습생들 [사진 딥스튜디오]

'YOURS'로 불리는 딥스튜디오의 실제 연습생들 [사진 딥스튜디오]

왜 이런 방식인가.
기존에는 아무리 훌륭한 연습생이라도 회사 마음에 들지 않으면 데뷔할 수 없었다. 결정 주체를 소수 권위자가 아닌 다수의 팬으로 바꾸고 싶었다. 방송국과 유튜브로도 비유할 수 있다. 언제 어떤 프로그램을 방영할지를 편성 PD가 아닌, 사용자 데이터 기반의 알고리즘이 정하는 유튜브 같은 시스템이다.
경연 프로그램인 프로듀스101을 차용했나.
그것도 맞다. 프로듀스101이 투표로 데뷔를 결정했다면 우린 어떤 콘텐트를 찍을지도 팬이 정한다. 참여도에 따라 팬 등급이 1~99로 나뉘는데, 등급이 높을수록 더 자기 의견을 많이 반영할 수 있다.
팬이 모든 것을 결정하면 관리가 되나.
우리보다 팬들이 쓴소리를 잘한다. 가령 한 연습생이 미국 원주민의 전통 수공예품인 '드림캐처'의 사진을 올린 적이 있었는데, 해외 팬들이 문화적 전유(다른 문화집단의 문화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가 될 수 있다며 따끔하게 혼내더라. 콘텐트나 연습생이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하는 게 팬이다.
딥스튜디오 직원들. 왼쪽부터 류장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오혜림 콘텐츠 기획자, 조범석 CTO, 류기현 대표. 맨 아래는 딥스튜디오 슬로건인 'Bigger than myself'를 전달하기 위한 조범석 CTO의 합성본. [사진 딥스튜디오]

딥스튜디오 직원들. 왼쪽부터 류장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오혜림 콘텐츠 기획자, 조범석 CTO, 류기현 대표. 맨 아래는 딥스튜디오 슬로건인 'Bigger than myself'를 전달하기 위한 조범석 CTO의 합성본. [사진 딥스튜디오]

실제 연습생을 육성할 때 기술은 어떻게 활용되나.
스타일링이나 환경, 배경 구축에 쓴다. 머리색이나 옷만 가상화한다든지, 살고 있는 공간을 사막으로 바꿔 비용을 절약하는 식이다. 한 번의 염색, 한 번의 촬영으로 비용이 휘발되는 기존 방식보다 더 경제적이다.
기술 기업이 아이돌 사업을 하는 이유는.
인간의 외로움을 해결하고 싶어서다. 사람이 가장 외로운 시기가 18~21세와 60세 이상이라고 한다. Z세대에게 아이돌은 단순히 잘생기고 예뻐서 좋아하는 존재가 아니다. 삶을 살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그리고 메타버스(현실처럼 사회·경제활동을 하는 가상공간)의 시대가 반드시 온다고 믿는다. 메타버스의 핵심은 '나보다 나은 나(Better than yourself)'다. 현실 속 나보다 더 많은 걸 할 수 있는 나의 아바타들이 속속 등장할 거다.
루다의 목표는 '세상에 외로운 사람이 없게 하는 것'이다. [사진 스캐터랩]

루다의 목표는 '세상에 외로운 사람이 없게 하는 것'이다. [사진 스캐터랩]

비슷한 목표를 갖고 있던 AI 챗봇 '이루다'는 최근 여러 논란이 됐다.
우리가 만들려는 가상 아이돌은 루다와 개념이 다르다. 사람의 콤플렉스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라, AI 뒤에 사용자가 있다. 결국 (성희롱 등에 법적 제재가 가능한) 사람 대 사람의 소통인 것이다. 루다가 하루에 1000만건씩 대화한 점을 보면 존재의 필요성 면에선 의미가 있다고 본다. 혐오 발언에 대해선 충분한 사전 테스트를 통한 AI 검증과 혐오성 발언을 일삼는 사용자의 제재가 필요하다고 본다.
K팝 메타버스가 최종 목표인가.
그렇다. 가상 아이돌과 실제 아이돌이 함께 활동하는,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속 초거대 가상현실 '오아시스'의 K팝 버전을 만들고 싶다. 해외 팬들에게 K팝 아이돌은 선망의 대상이다. 누굴 데뷔시키고 어떤 활동을 할지 투표하는 것을 넘어, 자신이 직접 아이돌이 되는 것이 그들의 마지막 꿈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스타가 될 기회를 열어주는 기술과 가상 공간이 필요한 이유다.

김정민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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