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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에게 ‘킬’ 당한 세계 최강 뮌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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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14일(한국시각) 열린 독일축구협회 포칼 2라운드 경기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물리친 뒤 환호하는 이재성(오른쪽)과 홀슈타인 킬의 선수들. 이재성은 승부차기를 성공시켰다. [EPA=연합뉴스]

14일(한국시각) 열린 독일축구협회 포칼 2라운드 경기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물리친 뒤 환호하는 이재성(오른쪽)과 홀슈타인 킬의 선수들. 이재성은 승부차기를 성공시켰다. [EPA=연합뉴스]

“형, 즐기고 올게. 몇 대 몇일지 모르지만.”

독일 FA컵 32강전서 승부차기 승 #뮌헨, 지난해 3관왕 등 유럽 최강 #이, 승부차기 네번째 키커로 성공 #6월 계약 끝나면 FA로 이적 전망

독일 분데스리가2(2부) 홀슈타인 킬 이재성(29)은 형 이재혁씨에게 이렇게 농담했다. 14일 열린 2020~21시즌 독일축구협회(DFB) 포칼(독일 FA컵) 2라운드(32강전) 경기 전 통화에서다.

상대가 독일, 아니 세계 최강 바이에른 뮌헨이다 보니, 그런 얘기할 만 했다. 뮌헨은 지난 시즌 분데스리가(1부), 유럽 챔피언스리그, 포칼을 모두 우승한 ‘트레블’(3관왕) 팀이다. 이번 시즌 리그 9년 연속우승을 노린다. 포칼 최다 우승팀(20회)이기도 하다.

그런 뮌헨을 2부 리그 소속 홀슈타인 킬이 무너뜨렸다. 연장전까지 2-2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6-5로 승리했다. 유럽 언론은 킬의 승리를 ‘킬링(kieling)’으로 표현했다. ‘홀슈타인 킬(kiel)’과 ‘자이언트 킬링(Giant killing)’의 합성어다. 약자가 강자를 잡는 이변 의미한다. 뮌헨이 포칼에서 하위리그 팀에 덜미를 잡힌 건, 2003~04시즌 8강전에서 2부 소속 알레마니아 아헨에 진 이후 17년 만이다.

바이에른 뮌헨전 승리에 앞장 선 홀슈타인 킬 이재성(오른쪽). [사진 홀슈타인 킬 인스타그램]

바이에른 뮌헨전 승리에 앞장 선 홀슈타인 킬 이재성(오른쪽). [사진 홀슈타인 킬 인스타그램]

이재혁씨(SJ스포츠 대표)는 “32강전 대진이 발표되자 킬 선수들은 ‘뮌헨 누구와 유니폼을 교환할까’만 생각하며 자포자기했다. 그런데 승리한 거다. (이)재성이도 경기 직후 ‘이게 무슨 일이지’라며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뮌헨 선수들이 곧바로 경기장을 빠져나가, 재성이도 유니폼은 교환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어 “뮌헨이 최근 전체 라인을 많이 끌어 올린다. 그래서 킬은 강하게 압박한 뒤 뒷공간을 노렸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킬은 전반 14분 세르주 나브리에 선제골을 내줬지만, 전반 37분 바르텔스의 골로 1-1을 만들었다. 후반 르로이 사네에 실점해 다시 끌려갔지만, 추가시간 5분에 하우케 발의 헤딩골로 2-2 동점을 만들었다. 이재성은 4-1-4-1포메이션에서 ‘가짜 9번’으로 선발 출전했다. 전반 38분 뒷공간을 침투해 골망을 흔들었지만, 오프사이드가 선언됐다. 사실 경기 전부터 상대의 경계대상으로 꼽혔다.

이날 경기장에는 눈보라가 몰아쳤다. 교체카드 5장을 다 쓴 연장 후반 11분, 킬의 이재성과 판 덴 베르크가 다리 경련으로 쓰러졌다. 독일 빌트는 “두 선수가 얼굴이 일그러진 채 차가운 그라운드에 누웠다. 116분간 헌신으로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이재성은 승부차기 키커로 나섰고, 자신 있는 슈팅으로 영웅이 됐다”고 극찬했다.

홀슈타인 킬 이재성이 승부차기에서 노이어를 속이고 킥을 성공시키고 있다. [사진 이재성 인스타그램]

홀슈타인 킬 이재성이 승부차기에서 노이어를 속이고 킥을 성공시키고 있다. [사진 이재성 인스타그램]

이재성은 승부차기 네 번째 키커였다. 정확한 왼발슛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페이크 모션에 속은 뮌헨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는 정반대로 몸을 날렸다. 이재성은 국가대표였던 2018년 러시아 월드컵 한국-독일전에서 2-0 승리를 맛봤는데, 당시에도 상대 골키퍼는 노이어였다. 이재성은 16강전에서 백승호의 다름슈타트(2부)를 만난다.

이재혁씨는 “킬의 승리는 독일에서 큰 뉴스다. (이)재성이가 2018년 K리그 전북 현대를 떠나 유럽에 진출했을 때 어두운 전망도 있었다. 하지만 1부에서도 잘할 수 있다는 걸 조금씩 증명했다”고 말했다. 킬은 2부에서 전반기 1위였고, 현재 3위다. 이재성은 5골·2도움을 기록 중이다. 팬은 그의 성(姓)을 따 ‘리블링(Liebling)’이라 부른다. 독일어로 ‘내 사랑’이란 뜻이다.

이재성은 요즘 장발이다. 코로나19로 현지 미용실 영업이 중단됐다. 2019년 말부터 길렀는데 결국 자르지 못하고 있다. 헤어스타일이 문어 같다는 말도 듣는다. 원정경기를 마치면 새벽 버스로 7시간 반 이동한 뒤 햄버거로 식사를 대신할 때도 있다.

이재성과 킬의 계약은 올해 6월에 끝난다. 이후에는 이적료 없이 자유계약선수(FA)로서 팀을 옮길 수 있다. 지난해 여름 함부르크(독일)가 이적료 300만 유로(40억원)를 제시했지만, 소속팀 반대로 잔류했다. 거함 뮌헨을 무너뜨린 이재성이 1부에서 긴 머리를 휘날리며 뛰는 모습을 팬들은 기다린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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