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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명호의 미래를 묻다

디지털 분산의료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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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팬데믹이 당겨 온 미래

이명호 여시재 기획위원

이명호 여시재 기획위원

올해는 백신과 치료제의 빠른 개발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이 전망하듯 세계보건기구(WHO)의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종식 선언은 올해 안으로 가능하지 않아 보인다.

코로나19 급속 확산으로 #의료인력·장비 등 한계 봉착 #환자 중심의 맞춤형 의료와 #분산의료 시스템 도입해야

세계는 이제 다방면에 걸친 충격에 대한 반성 속에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성찰과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당연히 일차적인 대상은 보건의료다. 코로나19는 우리 인류에게 질병과 건강·의료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그동안 인류는 의료기술의 상당한 발전을 이뤘다. 감염성 질병이라는 후진국병의 시대는 극복했다고 자부했다. 암과 같은 불치병과 희귀병을 정복하고, 장기 이식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정밀치료와 첨단의료의 단계에 진입하였다고 평가했다. 앞으로 생명 연장을 넘어 죽음을 극복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기대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참담하다. 선진국의 의료시스템이 감염병 환자 급증에 대응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감염자가 급증할 때마다 의료 인력과 병상·장비 부족으로 의료시스템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우려와 경고가 계속 나오고 있다. 의료는 전통적으로 환자와 의사 간의 대면 상호작용 모델(진찰하고 처방한 뒤 치료효과를 확인하는 방식)과 중앙집중식 임상 워크 플로(조립라인같이 환자를 진료과로 이동시키는 것)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중앙집중식 의료시스템에는 응급실과 대기실에 환자들이 한꺼번에 몰려들 경우, 일반 환자에게 바이러스가 퍼지고, 급증하는 환자를 감당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드러났다.

태국 출라롱콘대학 로봇공학센터의 한 연구원이 지난해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환자를 진단하기 위해 개발된 스마트 원격의료 로봇을 점검하고 있다. 태국은 당시에 이미 4개의 병원에서 이 스마트 원격의료 로봇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EPA=연합뉴스]

태국 출라롱콘대학 로봇공학센터의 한 연구원이 지난해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환자를 진단하기 위해 개발된 스마트 원격의료 로봇을 점검하고 있다. 태국은 당시에 이미 4개의 병원에서 이 스마트 원격의료 로봇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EPA=연합뉴스]

코로나19는 현재 의료시스템의 취약성과 동시에 디지털 기술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줬다. 감염 환자의 급증에 직면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서 의료진을 보호하고 일반 환자를 감염에서 보호하는 비대면 진료(원격 의료, 디지털 의료)가 주목을 받았다. 비대면 진료에 사용되는 일부 디지털 기술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있었지만 엄격한 규제와 까다로운 의료보험 기준으로 인해 시장 진입이 어려웠다.

그러나 각국은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비대면 진료를 전격적으로 허용했다. 한국도 한시적으로 전화 진료를 허용해 100만 건의 전화 처방이 이뤄졌다. 미국 등 많은 국가에서 원격의료에 대한 환자의 만족도가 높았으며, 팬데믹 이후에도 계속 원격의료를 이용하겠다는 응답이 70~80%에 달했다. 의료진 사이에서도 원격의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원격의료에 대한 인식 개선은 작은 변화일 수 있다. 팬데믹 상황에서의 중앙집중식 병원 시스템의 붕괴와 원격의료를 경험하면서 의료진 사이에서는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의료시스템을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첫째, 환자 중심의 개인 맞춤형 의료다. 코로나19는 우리가 가진 능력과 인프라에 대해서 눈을 뜨고 효용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스마트폰으로 상징되는 모바일, 웨어러블 디바이스, 스마트워치, 작은 부착형 센서로 심박수 및 심전도 등의 생체정보, 운동 및 수면 등의 활동정보를 비롯해 이동이나 머문 장소 등의 공간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이 데이터를 사용하면 생물학적·심리적 요인과 생활방식 요소를 포함하여 개인의 삶에 대한 디지털 버전을 구축할 수 있다. 개인에 대한 ‘작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상 징후를 경고하고, 치료 순응도를 개선할 수 있다.

둘째는 분산 의료시스템이다. 팬데믹 상황에서 환자의 증상 정도와 위험군에 따라 분류하고 위험도가 높은 사람들이 적기에 치료받을 수 있도록 의료기관과 서비스를 연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한국도 경증 환자를 위한 생활치료센터가 등장했다. 정기적인 일상 진료를 원격의료로 전환함으로써 제한된 의료 자원을 급성 또는 중증 환자에게 집중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원격 응급실을 일반 병원에 분산적으로 설치하면, 중환자실이 있는 대형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하는 과정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대형병원의 중환자실 전문의가 원격 멘토링 등으로 분산된 원격 응급실의 중환자를 관리한다. 환자의 신속한 분류, 중환자실 병상 관리 등으로 제한된 병상으로 효율적인 중환자 관리가 가능하다. 분산 의료시스템이 도입되면 대형병원은 중환자실 병상 관리의 여력을 갖게 되고 중소병원은 병상 활용을 늘릴 수 있다.

분자 진단키트 전문기업 씨젠의 연구원들이 서울 성동구 씨젠의료재단 분자진단센터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분석·검사를 하고 있다. [뉴스1]

분자 진단키트 전문기업 씨젠의 연구원들이 서울 성동구 씨젠의료재단 분자진단센터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분석·검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인류는 팬데믹과의 싸움을 통해 디지털을 기반으로 새로운 의료시스템의 가능성을 경험하게 됐다. 현재 우리는 고령화에 의한 노인성 질환, 생활습관에 따른 만성질환, 정신질환의 증가, 예방적 의료의 취약으로 의료비 급증이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디지털 기술은 개인 맞춤형 의료의 가능성, 원격 및 분산 의료의 가능성을 제시해 주고 있다.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의료 시스템을 재편해야 할 시점이다. 개인의 일상적 모니터링, 분산된 의료 시설, 전문화된 병원이 긴밀하게 연계된 의료 시스템이 요구된다. 일상 생활 공간, 거주지에서 건강이 모니터링되고, 건강상의 조치가 필요할 경우 거주지 내의 전문 병원에 의해 관리되거나 연계된 분산 의료 시설에서 치료를 받고, 응급이나 중증인 경우 대형 병원의 응급실에서 치료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일상적으로 건강을 모니터링하면 특정 질병이 발생하거나 감염병이 발생하는 것을 조기에 감지하여 확산을 막고 적절히 치료할 수 있다.

한국이 초기에 코로나19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사스와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감염병 의심자와 일반 환자를 분리하는 체계적인 감염병 관리기준을 마련해 안정적으로 의료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팬데믹 동안 각국은 다양한 디지털 의료 경험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디지털 기반의 분산 의료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준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은 10년 넘게 ‘원격의료반대’ 라는 보이지 않는 장벽에 갇혀 있다. 디지털 기반 분산의료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할 것들이 많다. 또 다른 위기가 닥치기 전에 새로운 의료시스템을 준비해야 한다.

팬데믹 기간에 사용된 디지털 의료 기술들

팬데믹의 시작과 함께 디지털 기술은 주목을 받았고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한 것은 감염자 진단검사와 추적관리 방법이다. 감염자를 중심으로 접촉자, 접촉 장소를 추적하는 핀포인트 통제를 통해 감염자 경로를 차단해 대다수 사람이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실시간 유전자 증폭(RT-PCR) 진단기술과 모바일 GPS 위치 추적이라는 디지털 기술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캐나다 스타트업 블루닷(BlueDot)은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전염병 확산을 경고하기도 전에 빅데이터 분석 기법으로 비정상적인 폐렴이 발생해 번지고 있다는 것을 알렸다.

감염 환자 급증으로 의료 시스템이 감당하지 못하고 붕괴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구원자로 나선 것은 디지털 의료 기술이었다. 태국 디지털위원회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의료 서비스 제공, 코로나19 확산 추적 및 억제를 위해 디지털 플랫폼과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했다. 41개 병원에는 로봇 솔루션을 배포해, 의료진과 격리된 환자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지원하고 환자와 접촉을 줄였다.

중국에서는 낙후된 의료 시스템을 보강하는데 디지털 기술이 적극 활용되었다. 우한과 전국의 병원에 AI 기반 CT 영상 판독 도구를 배포해 수 시간 걸리던 판독을 수 초 내로 단축했다. 촬영한 CT 영상을 수십 ㎞ 떨어져 있는 전문가들이 판독하는 것도 허용했다. 이런 조치는 한정된 의료 인력으로, 몰려드는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을 확장해 의료 시스템의 안정에 기여했다.

이처럼 코로나19 상황에서 디지털 기술은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인공지능 기계학습을 이용한 디지털 역학감시, 의료영상 분석, 증상보고를 위한 설문조사 앱, 데이터 분석 및 시각화, 휴대용 진단장치를 활용한 신속한 케이스 식별, 증상 확인용 웨어러블과 센서, 휴대전화 위치 데이터와 이동패턴 분석, 챗봇 커뮤니케이션 등. 특히 원격의료는 응급 및 1차 진료 모두에서 성공적인 의료 모델로 사용됐다. 팬데믹 기간 동안 선진국 및 개발도상국에서 의료진과 환자 모두 디지털 의료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명호

싱크탱크 여시재 기획위원, 미래학회 부회장. 연구와 자문·강연 등으로 지식과 인사이트를 나누는 활동을 하고 있다. 기술경영을 전공했고, 디지털과 사회변화를 연구하고 있다.

이명호 여시재 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