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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비핵화와 정반대의 길 가는 김정은 체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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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한이 노동당 규약을 개정해 ‘공화국 무력’을 부단히 강화할 것이라고 대내외에 천명했다. 5년 만에 개최한 노동당 제8차 대회를 통해 ‘자위적 전쟁억제력 강화’라고만 기술돼 있던 기존 당 규약을 고치고 이를 조국통일 과업과 연결시켰다. 북한 정권의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당 규약 고쳐 ‘공화국 무력’ 강화 천명 #핵 손에 쥐고 제재 푼다는 오판 버려야

‘공화국 무력’이 핵무장을 뜻하는 것임은 불문가지다. 당 규약 개정에 앞서 진행된 ‘총화 보고’에서는 핵추진 잠수함 개발과 다탄두(MRIV) 전략무기, 극초음속 무기 개발까지 공식화했다. 반면에 이번 당대회에서 채택된 공식 문서들에 비핵화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다. 남북 합의 사항이자 북·미 정상회담 합의 사항인 비핵화와는 정반대의 노선을 갈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큰 실망과 함께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앞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당대회 개막식에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수행 기간이 끝났지만 내세웠던 목표는 엄청나게 미달됐다”며 실패를 자인했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다른 자리도 아닌 당대회에서 “일찍이 있어 본 적이 없는 최악 중 최악의 난국”이라고 고백한 것은 북한 경제난이 심각한 한계상황으로 향하고 있음을 인정한 것으로 봐야 한다.

문제는 그 해법이 틀렸다는 점에 있다. 김 위원장은 여전히 해법을 ‘자력갱생’에서 찾고 있다. 최악에 이른 작금의 북한 경제난은 장기화된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에 코로나19 사태와 지난해 대규모 수해가 겹친 데 따른 것이다. 제재라는 근본 원인을 제거하지 않고 자력갱생만으로는 경제난을 벗어날 수 없다. 핵을 손에 쥐고 이를 무기로 제재를 풀겠다는 전략은 현실적으로 국제사회에 통하지 않는다. 이는 2019년 하노이 회담 실패에서 입증된 바다. 곧 출범할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더더욱 기대하기 어려운 셈법임을 북한 지도부는 자각해야 한다. 북한이 진정으로 경제를 발전시키고자 한다면 전략 노선을 수정해야 한다. 해법은 비핵화와 이를 통한 남북관계를 포함한 대외관계 개선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 당대회에서 밝힌 것처럼 미국을 ‘최대의 주적’이자 ‘제압하고 굴복시킬’ 대상으로 삼는 비현실적 인식에서 하루속히 벗어나야 한다.

아울러 우리 정부도 대북 정책과 전략을 변화한 정세에 맞춰 조정해야 한다. 북한은 이번 당대회에서 “남북관계는 판문점 선언 발표 이전으로 되돌아갔다”고 분명히 밝혔다. 방역 협력, 개별 관광 등 문재인 정부의 제안을 ‘비본질적 문제’라고 일축하면서 한·미 군사훈련 중지를 거듭 주장했다. 정부는 메아리 없는 단기적 남북관계 개선 노력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춰 북한의 변화와 비핵화를 이끌어낼 것인지의 본질적 문제에 대북 정책의 중심을 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