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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트럼프 팬덤정치, 미국 민주주의를 짓밟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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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의 의사당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시위를 벌이자 경찰 병력이 입구를 경비하고 있다. 시위대는 이날 의사당을 네 시간 동안 점거했다가 경찰과 주 방위군에 밀려났다. 그 뒤 상·하원은 조 바이든 당선인의 승리를 확정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의 의사당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시위를 벌이자 경찰 병력이 입구를 경비하고 있다. 시위대는 이날 의사당을 네 시간 동안 점거했다가 경찰과 주 방위군에 밀려났다. 그 뒤 상·하원은 조 바이든 당선인의 승리를 확정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 성명을 내고 “1월 20일(미 대통령 취임일)에 백악관을 떠날 것이며 질서있는 정권 이양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AP통신·CNN방송 등이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국 상·하원이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승리를 공식 확정하자 이같이 밝혔다. 트럼프가 지난해 11월 3일 대선 뒤 평화로운 정권 이양 의사를 밝힌 것은 처음이다.

‘대선 불복’ 시위대 의사당에 난입 #경찰과 충돌 과정서 최소 4명 숨져 #의회 진통 끝 바이든 당선 확정 #트럼프 “질서있는 정권 이양” 밝혀 #시위대 수천명 벽넘고 창깨고 난입 #의사당 뚫린 건 207년 만에 처음 #롬니 “대통령이 유발한 반란 사태” #트럼프 내각, 공화 일부도 탄핵 거론

하지만 하루 전날까지 대선 결과에 불복하고 지지자들에게 의회로 가라고 목소리를 높인 트럼프의 선동정치는 폭력 시위대가 미 의사당에 난입해 4시간 동안 점거하는 초유의 사태를 불렀다. 미 권력의 심장부이자 국민을 대표하는 민주주의의 전당인 의회가 ‘나만 옳다’고 믿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폭력적으로 ‘점령’당했다. 과거 내정이 불안하거나 독재가 판치는 국가에서나 볼 수 있던 정치적 폭력 사태가 미국식 민주주의의 심장이라는 워싱턴 의사당에서 벌어졌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6일 상·하원 합동회의가 열리던 의사당을 점거하자 미 언론들은 “쿠데타 시도”(니컬러스 크리스토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이자 “폭동”(제이크 태퍼 CNN 앵커)이라고 평가했다. 미 의사당이 외부의 침입을 받은 것은 미국이 영국과 벌였던 ‘1812년 전쟁’(1812~1815년) 당시인 1814년 워싱턴이 함락돼 백악관과 의사당이 불탄 지 207년 만에 처음이다.

이날 의사당에선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승리를 공식 확정하는 상·하원 합동회의가 열렸다. 회의를 시작한 지 1시간이 지난 오후 2시쯤 의사당 밖에 있던 시위대가 바리케이드를 넘어 내부 진입을 시도했다. 시위대는 턱없이 부족한 경찰 병력을 젖히고 벽을 넘고 완력으로 문을 열거나 유리창을 깬 뒤 의사당 내부에 진입했다. 수백 명이 뚫은 길을 따라 수천 명이 난입했다. 회의를 주재하던 마이크 펜스(헌법상 상원의장 겸임) 부통령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경호국의 호위를 받으며 회의장을 떠나야 했다. 상원과 하원 본회의장은 출입이 봉쇄됐다. 트럼프식 팬덤정치가 비극을 불렀다.

트럼프 “의회 가라” 선동…민주당 “당장 끌어내려야” 탄핵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6일(현지시간) 워싱턴 의사당에 난입해 회의장을 점거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대선 승리 확정을 위한 상·하원 합동회의가 6시간 동안 중단됐으나 이후 속개돼 7일 새벽 최종 인증됐다. 사진은 하원 본회의장에 시위대가 난입하자 황급히 하원 관람석으로 대피한 의원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6일(현지시간) 워싱턴 의사당에 난입해 회의장을 점거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대선 승리 확정을 위한 상·하원 합동회의가 6시간 동안 중단됐으나 이후 속개돼 7일 새벽 최종 인증됐다. 사진은 하원 본회의장에 시위대가 난입하자 황급히 하원 관람석으로 대피한 의원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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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권력’은 폭력 시위대에 밀려 전원 대피했으며 의회 직원들은 각 주의 선거 결과가 담긴 상자를 챙겨 나왔다. 뉴욕타임스는 “자칫하면 ‘폭도’들에게 선거 결과를 도둑맞을 뻔했다”고 전했다.

시위대는 상원과 하원, 두 건물을 잇는 돔 형식의 건물인 로툰다를 활보했다. 조금 전까지 펜스 부통령이 앉아 있던 상원의장석을 점거하고 펠로시 하원의장실에선 책상에 발을 올려놓고 공권력을 조롱했다. 이날 4명이 숨졌다. 공화당의 밋 롬니 상원의원은 “이 사태는 오늘 대통령이 유발한 것”이라며 “반란 사태”라고 비난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폭도들은 뒤로 물러서서 민주주의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라”며 촉구하고, 트럼프를 향해선 “지금 전국 방송에 나가 이 점거를 끝내라고 요구하라”고 압박했다. 바이든 담화가 나온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이제는 집으로 가야 할 때”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압승했는데, 그것을 도둑맞았다”며 선거 조작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 뒤 워싱턴DC는 주방위군 1000명 등 공권력을 추가로 투입해 시위대를 의사당 밖으로 몰아냈다.

지난해 11월 3일 대선 뒤 워싱턴에서 불복 시위가 열린 건 이번이 세 번째다. 지난해 11월과 12월 비교적 평화적으로 열렸던 시위와 달리 이번에 폭력 사태로 치달은 배후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선동의 언어가 자리 잡고 있다. 6일 낮 12시 트럼프는 ‘미국을 구하는 행진’이라고 적힌 플래카드 아래에서 지지자들에게 여러 차례 ‘의회로 가라’는 메시지를 보내며 사실상 시위대의 의사당 진입을 부추겼다. 트럼프의 연설 두 시간 뒤 시위대는 의회를 점거했다.

미국 민주당 의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을 당장 끌어내려야 한다며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수정헌법 제25조 발동을 촉구했다. 수정헌법 25조는 대통령이 그 직의 권한과 의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될 경우 1순위로 부통령이 직무를 대행하도록 한다. 일부 트럼프 내각 인사들과 공화당 인사들도 내부에서 수정헌법 제25조 발동을 통한 트럼프 대통령 해임 방안 등을 거론하고 있다고 CNN이 보도했다. 현재 관련 논의가 의회에도 전달됐다. 정치전문매체 더힐도 행정부 일부 당국자가 트럼프 해임 논의에 착수했다면서 당국자들이 비상조치에 관련해 전화와 메시지를 교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스테펜 슈미트(정치학) 아이오와주립대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은 계속해서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역설적으로 오늘 트럼프주의는 크게 힘을 잃었다”고 말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이날 “민주주의가 전례 없는 공격을 당했다”며 “증오와 혼란을 조장하는 대신 문제 해결을 위해 정치를 되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미 공영 라디오인 NPR이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워싱턴지국 편집국장인 제럴드 세입은 이날 칼럼에서 “2개의 정당과 하나의 나라를 송두리째 흔든 하루”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트럼프가 지지자들을 설득했다면 공화당은 평소 공언대로 법과 질서의 정당으로 비칠 수 있었는데 이번 사태로 그런 이미지와는 멀어졌다”며 트럼프식 정치에서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음을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트럼프가 지지자들에게 폭력을 부추겼다”며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인택 국제외교안보에디터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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