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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보는데 학대 찾기엔…" 정인이 검진 의사의 후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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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사망한 정인 양이 안치된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추모 메시지와 꽃들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사망한 정인 양이 안치된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추모 메시지와 꽃들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기껏해야 5분 정도 진료하는데…”
아동학대로 숨진 정인양 사망 20여 일 전(지난해 9월 23일) 진료한 소아과 병원 원장 A씨는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 6일 오후 2시 양천구의 병원에서 기자와 만난 A원장은 "정인이가 아빠에게 잘 안겼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정인양은 3차 학대 조사에서 ‘영양상태 불량’ 신고를 받고 이 소아과를 방문했다. 이 병원에서 정인양은 구내에 염증이 있다는 검진을 받았다. 정인양 사건에 대한 공분이 커지면서 A원장의 책임론도 커지고 있다. 온라인 맘카페에서는 이 병원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강서구에서 꽤나 유명한 소아과" "원장 진료 보려면 짧으면 30분에서 길면 2시간을 기다릴 때도 있었다" "지금껏 저희 애들 둘을 여기에서 진료받은 게 너무나도 후회스럽다” 등의 신상털기가 진행 중이다. 지난 4일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정인이 구내염 진단 의사, 면허 박탈해 달라"는 내용의 청원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정인이 양부랑 아무런 연관없다”

고(故) 정인 양의 묘지에 추모객들이 놓은 정인 양의 그림이 놓여 있다.. 뉴시스

고(故) 정인 양의 묘지에 추모객들이 놓은 정인 양의 그림이 놓여 있다.. 뉴시스

A원장은 진료 당시의 기억을 기자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당시 진료실에는 정인양과 양부, 강서아동보호기관 관계자 2명이 함께 들어왔다고 했다. A원장은 “정인이가 병원에 있는 진료 기구를 건드리며 장난도 치고 아빠에게 잘 안겼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봤다”고 말했다.

이 병원의 또 다른 의료진과 정인양의 양부가 사촌관계라는 의혹도 제기된 것과 관련, A원장은 "이름이 비슷해서 생긴 일이다. 정말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입이 찢어졌는데 구내염으로 진단을 내렸다'는 의혹에 대해선 “입에 2개의 상처가 있었고 구내염이 있었다"면서도 "입에 찢어진 상처가 있었다고 여의사가 진단한 건 지난해 7월"이라고 설명했다.

A원장은 “정인양 몸에 상처도 뚜렷하게 없고, 아기들에게 흔히 생길 수 있는 멍 정도여서 아동학대라고 의심할만한 건 못 찾았다”고 했다. 다만 ‘살이 왜 이렇게 많이 빠졌냐’고 양부에게 묻자 “입을 다쳐서 잘 못 먹었다”고 답해 종합병원에서 검진을 받으라고 했다고 전했다.

“경찰이 아동학대 의심 얘기 안 해줘”

A원장은 "당시 함께 온 아동보호기관 관계자가 정인이의 아빠가 아동학대 의심되는 사람이라고 말을 미리 안 해줬다"면서 "진료가 끝날 때쯤 돼 아동학대가 의심된다고 얘기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강서아동보호전문기관 측은 중앙일보의 질의에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A원장은 "불과 얼마 전 진료실에서 봤던 정인이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린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 자책도 많이 했다"면서 "정인이의 죽음에 관하여 도의적, 법적으로 책임을 질 부분이 있다면 불이익이나 비난도 감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6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 양부모의 지속적인 학대로 숨진 16개월 영아 정인(가명)양을 추모하기 위해 시민들이 보내온 근조화환이 놓여져 있다. 뉴스1

6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 양부모의 지속적인 학대로 숨진 16개월 영아 정인(가명)양을 추모하기 위해 시민들이 보내온 근조화환이 놓여져 있다. 뉴스1

"또 다른 피해자 없어야"

병원 근처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남강(56)씨는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30년 정도 같은 자리에서 진료를 본 원장은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분”이라고 말했다. 이 소아과에 20년간 다녔다는 조혜령(51)씨는 “일부러 허위 진단을 할 분이 아니다. 내 딸이 2살 때부터 다녔는데 훌륭하고 진료도 잘 봐주는 분”이라고 했다.

함민정 기자 ham.minj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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