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모·남편 한꺼번에 살해…그 며느리가 일깨워준 日의 현실

중앙일보

입력 2021.01.07 05:00

업데이트 2021.01.13 15:36

"피고인을 징역 18년에 처한다."

5일 일본 후쿠이(福井)지방법원, 가와무라 요시노부(河村宜信) 판사는 휠체어에 탄 채 법정에 나온 백발의 피고인에게 이같이 선고했다. 피고인의 이름은 기시모토 마사코(岸本政子·72). 그는 2019년 11월 17일 새벽 0시~2시, 함께 살던 시아버지 요시오(芳雄·당시 93)와 시어머니 시노부(志のぶ·당시 95), 남편 다키오(太喜雄·당시 70)를 살해했다.

2019년 후쿠이 기시모토가 살인사건 5일 판결
3인 살해사건으로는 이례적으로 낮은 형량
70대 며느리가 90대 시부모와 남편 병수발
노인이 아픈 노인 돌보는 '노노개호'의 비극

2019년 11월 기시모토가(家) 살인사건이 일어난 후쿠이현 쓰루가시의 집. [사진 후쿠이신문 인터넷판 캡처]

2019년 11월 기시모토가(家) 살인사건이 일어난 후쿠이현 쓰루가시의 집. [사진 후쿠이신문 인터넷판 캡처]

6일 아사히 신문은 이날 재판정의 풍경을 전하면서 "세 명을 살해한 혐의로는 낮은 형량"이라고 전했다. 일본에서 여러 명을 살해한 이에게는 일반적으로 무기징역이나 사형이 선고되기 때문이다. 이런 판결이 내려진 데는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 바로 초고령사회 일본에서 나타난 새로운 사회현상인 '노노개호(老老介護)'다.

시부모 병수발 10년...남편도 쓰러져 

개호(介護)는 '간호·병수발'이라는 뜻의 일본어로, ‘노노개호’ 란 노인이 노인을 수발하고 돌본다는 뜻이다. 기시모토 일가도 그랬다. 며느리 기시모토는 두 딸이 출가한 10여년 전부터 몸이 아픈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혼자 간병했다고 한다.

2016년부터는 시부모의 거동이 아예 불가능해져 두 사람에게 유동식을 먹이고 대소변을 받아내야 했다. 시어머니는 자신을 간호하는 며느리에게 "죽고 싶다"고 여러 번 말했다고 한다.

일본 도쿄의 한 골목을 지나는 노인. [AFP=연합뉴스]

일본 도쿄의 한 골목을 지나는 노인. [AFP=연합뉴스]

거기에 가업을 운영하는 남편까지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의사는 "더 악화하면 움직이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70대 할머니가 세 명의 노인을 돌보며 회사 일까지 처리하는 고단한 일상이 계속됐다.

판결문에 따르면 사건이 일어난 날 밤 기시모토는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에게 "죄송해요. 저도 곧 갈게요"라고 말한 후 수건으로 이들의 목을 졸랐다. 이어 "같이 죽자"며 남편까지 같은 방법으로 살해했다. 그는 수사관에 "내가 죽으면 아이들이 남편을 돌볼 부담을 지게 되는 게 싫었다"고 범행 이유를 밝혔다고 한다.

이후 친척들에게 사죄의 편지를 남기고 자신도 배와 다리를 칼로 찔러 죽으려 했지만 목숨을 건졌다.

"출구가 보이지 않았을 것" 재판부도 공감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살인사건으로 비교적 낮은 형량을 선고한 데 대해 "처벌을 원치 않는 유가족의 뜻을 반영했다"고 밝혔다.

앞서 공판에 나온 남편의 동생은 법정에서 "피고인은 가족들의 간병뿐 아니라 형이 운영하던 회사의 경리 업무나 청소까지 다 도맡았다"면서 "기시모토가(家)에 소중한 사람이었다.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편의 또 다른 동생의 아내도 "시어머니는 항상 '마사코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고 말했다"면서 "간병의 어려움을 우리가 더 빨리 눈치챘어야 했다"고 선처를 호소했다.

재판부도 판결문에서 "피고인 자신의 몸까지 약해진 상황에서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기분이 들었을 수 있다. 피고인의 대처 능력을 초과한 부담이 가해졌을 것"이라며 기시모토가 처했던 상황에 이해를 표명했다.

하지만 "선악을 판단할 수 없는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변호인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어지는 비극..."지원 시스템 필요" 

일본에선 10여년 전부터 비슷한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2013년 2월에는 나라현에서 96세의 전직 경찰관이 자신이 간호하던 91세 아내를 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2016년 사이타마현에서도 83세 남편이 치매에 걸린 77세 아내를 살해했다.

간병의 괴로움에 시달리는 이들은 점점 늘고 있는데, 이들이 기댈 시스템은 아직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다. 이번 재판에 참여했던 60대 배심원은 아사히와의 인터뷰에서 "사건을 일으키느냐 아니냐는 주변에서 작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면서 "간병의 괴로움을 어렵지 않게 털어놓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행정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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