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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할머니 5년 기다린 선고…내일 日정부 손배 결론 낸다

중앙일보

입력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결론이 8일 나온다. 한국 법원이 피해자 할머니들이 직접 제기한 손배소에 판단을 내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 결과가 향후 한일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 판결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인권 침해 피해, '주권면제 원칙' 예외 인정 여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8일 대전 보라매공원 평화의 소녀상에 겨울 모자와 목도리, 담요, 장갑, 양말 등이 입혀져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8일 대전 보라매공원 평화의 소녀상에 겨울 모자와 목도리, 담요, 장갑, 양말 등이 입혀져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부장 김정곤)는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의 1심 결론을 내린다. 소송이 시작된 지 7년 만에 나오는 판결이다. 이어 13일에도 위안부 피해자 고(故) 곽예남 할머니 등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배소 1심 선고심이 예정되어 있다. 이 소송에는 길원옥 할머니, 고(故) 김복동 할머니, 이용수 할머니도 참여했다.

2013년 민사조정→2015년 재판…5년 만 선고

8일 선고는 2013년 8월 위안부 할머니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1인당 1억원씩 12억원을 배상하라”는 민사조정 신청서를 내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헤이그 송달협약 13조’를 들며 조정을 거부했다. 헤이그협약은 ‘자국의 주권·안보를 침해할 것으로 판단하는 경우’ 송달을 거부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국제 업무 협약이다. 이에 배 할머니 등은 2015년 10월 사건을 정식 재판에 넘겨달라고 요청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이듬해 1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부에 사건을 배당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뉴스1

서울중앙지방법원. 뉴스1

정식 재판은 시작됐지만 일본 정부가 참여를 거부해 4년간 공판이 열리지 못했다. 이에 재판부는 지난해 1월 ‘공시송달’ 절차를 통해 재판을 열었다. 공시송달은 당사자 주소 등을 알 수 없거나 송달이 불가능할 경우 서류를 보관하면서 법원 게시판에 게시하는 송달 방법이다. 해당 절차에 따라 배 할머니 등은 총 4번의 재판을 걸쳐 지난해 10월 열린 최종변론을 끝으로 8일 최종 선고만 남겨둔 상황이다.

‘주권면제론’ 예외 인정할까 

재판의 최대 쟁점은 법원이 ‘주권면제론’의 예외를 인정할지 여부다. 주권면제론은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를 소송 당사자로 삼아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관습법이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주권면제론을 앞세워 소송 참여를 거부하며 무대응 입장을 고수해왔다.

재판부가 일본 측 논리를 받아들이면 사건은 각하되지만 예외를 인정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봉태 변호사(법무법인 삼일)는 “그리스·이탈리아에서도 독일 나치의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주권면제론을 배척했다”며 “인권 침해를 당한 피해자들이 피해를 보상받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재판에 나선 만큼 주권면제 원칙을 적용하지는 않을 것”이라 전망했다.

한·일관계에도 영향 미칠까 

법원이 원고인 위안부 피해 할머니 손을 들어주더라도 일본 정부가 항소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지영 한양대 일본학과 교수는 “일본 정부는 재판 자체를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번 1심이 최종심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번 소송이 한일 관계에 영향력을 미칠 것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2018년 10월 대법원 강제동원 피해 배상 판결 이후 일본에선 관계 복원을 위한 한국 정부의 제안을 수용하지 않고 있다”며 “상징성이 강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까지 나올 경우 일본 측이 외교적으로 한국을 압박할 가능성도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는 사법부 판단에 행정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사법부 업무에 정부가 입장을 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한편 이 소송은 강제징용 배상 청구 소송과 함께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재판 개입’ 의혹을 받은 사건이다. 검찰은 2018~2019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을 수사할 당시 2016년 1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이 ‘위안부 손해배상판결 보고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파악한 바 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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