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꺼내 든 두 전직 대통령 사면론으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문파(文派)의 표적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강성 지지층이자 민주당 핵심 지지 기반으로 꼽히는 문파는 민주당 권리당원 게시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이 대표를 비판하고 있다. “촛불 국민을 배신했다” “국민의힘으로 떠나라” 등의 내용이다. 일부 문파들은 이 대표 사무실에 직접 전화를 하거나 항의 방문하는 등 화력이 집중되는 모양새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사면 조건으로 ‘당사자의 반성’을 요구하며 한발 물러섰을 뿐, 사면 건의의 뜻 자체는 굽히지 않고 있다. “사면과 관련한 입장에 변함이 없다”(3일 언론 인터뷰), “(당원들이) 수용하기 쉽지 않은 것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절박한 심정에서 말했다”(4일 언론 인터뷰) 등 연일 소신 발언 중이다. 문재인 정부의 2인자(국무총리)에 이어 민주당 1인자(대표)를 맡은 이 대표가 문파와 거리를 두기까지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①경계=사실 이낙연 대표는 지난해 정치인 이낙연으로 당에 복귀할 때만 해도, 문파에 호의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았다. 그해 3월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이 대표는 문파에 대해 “제가 전략을 쓴다고 영향받을 분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비판하지도 않았다. “그분들만 특별히 다르다고 느끼지는 않는다”는 거다.
실제 행동도 그랬다. 문 대통령이 “마음의 빚이 있다”(1월 신년 기자회견)고 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서 “공정을 지향하는 시민들께 많은 상처를 줬다”고 소신을 밝혔다. 민주당이 ‘민주당만 빼고’라는 칼럼을 쓴 임미리 고려대 교수를 고발하자 “겸손해야 한다”며 고발 철회를 요청해 관철하기도 했다.
②눈치=하지만 8ㆍ29 전당대회가 다가올수록 미묘하게 변했다. 금태섭 전 의원이 공수처법 본회의 표결(2019년 12월)에서 무효표를 던졌다는 이유로 당 차원의 징계 논의가 있을 때도, 조응천ㆍ박용진ㆍ김해영 등 전ㆍ현직 의원들이 징계 부당성을 따졌을 때도 이 대표는 침묵을 지켰다.
전당대회를 코앞에 두고선 윤석열 검찰총장과 최재형 감사원장 등 정부와 갈등을 빚는 인물들을 향해 “왜 저렇게 직분을 마음대로 넘나들까 마뜩잖게 느껴진다. 좀 더 직분에 충실했으면 좋겠다”(8월 5일 언론 인터뷰)고 쓴소리를 했다. “이낙연도 별수 없네. 친문(親文)세력에게 눈도장을 받으려고 입술 서비스를 했다”(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비판이 나왔다.
③밀월=문파의 지지 아래 이 대표는 8ㆍ29 전당대회 압승을 거뒀다. 그리고 9월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문파를 “상식적인 분들” “당의 에너지원(源)”이라고 칭했다. 전당대회 결과를 거론하며 “강성 지지자가 많이 포진한 권리당원과 일반 국민이 뽑은 각 후보의 지지율이 비슷하게 나타났다”고도 말했다. 문파와 중도층의 뜻이 일치한다는 의식이다.
④혼란=이른바 추미애ㆍ윤석열 갈등이 최고조로 격화된 지난해 연말 이 대표는 문파를 향해 “같은 당원들에게 지나칠 정도의 상처를 주는 것 자제하는 것이 좋다”(11월 관훈 토론회)고 말했다. 그러나 현안에 대한 입장은 문파들의 요구와 다르지 않았다. 12월 법원이 윤 총장에 대한 징계의 효력을 정지시키자 “법원이 윤석열 총장에게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니다. 검찰 개혁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같은 날 “국민들께 불편과 혼란을 초래하게 된 것에 대해, 인사권자로서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밝힌 문 대통령보다 검찰과 더 선명한 전선을 긋는 메시지였다.
⑤거리두기=이 대표가 신년 메시지로 사면론을 꺼내자 민주당에선 “급회전”(수도권 재선 의원)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문파의 격한 반발 속에 이 대표도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14일(박 전 대통령 대법원 재상고심)과 그 후로 예상되는 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까지는 여론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메시지가 포용ㆍ통합 쪽으로 기운다면, 이 대표에 대한 문파의 아우성에도 반전이 생길 수 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언젠가 수면 위로 떠올랐을 사면론을 이 대표가 먼저 제안해 문 대통령의 부담을 줄였다. 문심이 이 대표에게 확실한 힘을 실어준다면, 대통령과의 대외적 신뢰관계도 구축하고 중도통합 주자 이미지도 선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