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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월→거리두기 거친 문파(文派)와 이낙연의 관계…반전 여부는 문 대통령에 달려

중앙일보

입력

새해 첫날 꺼내 든 두 전직 대통령 사면론으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문파(文派)의 표적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강성 지지층이자 민주당 핵심 지지 기반으로 꼽히는 문파는 민주당 권리당원 게시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이 대표를 비판하고 있다. “촛불 국민을 배신했다” “국민의힘으로 떠나라” 등의 내용이다. 일부 문파들은 이 대표 사무실에 직접 전화를 하거나 항의 방문하는 등 화력이 집중되는 모양새다.

광화문촛불연대와함께청년학생들 회원들이 5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 탄핵,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철회'를 주장하며 이낙연 대표 면담을 요청하고 있다. 뉴시스

광화문촛불연대와함께청년학생들 회원들이 5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 탄핵,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철회'를 주장하며 이낙연 대표 면담을 요청하고 있다. 뉴시스

그런데도 이 대표는 사면 조건으로 ‘당사자의 반성’을 요구하며 한발 물러섰을 뿐, 사면 건의의 뜻 자체는 굽히지 않고 있다. “사면과 관련한 입장에 변함이 없다”(3일 언론 인터뷰), “(당원들이) 수용하기 쉽지 않은 것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절박한 심정에서 말했다”(4일 언론 인터뷰) 등 연일 소신 발언 중이다. 문재인 정부의 2인자(국무총리)에 이어 민주당 1인자(대표)를 맡은 이 대표가 문파와 거리를 두기까지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①경계=사실 이낙연 대표는 지난해 정치인 이낙연으로 당에 복귀할 때만 해도, 문파에 호의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았다. 그해 3월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이 대표는 문파에 대해 “제가 전략을 쓴다고 영향받을 분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비판하지도 않았다. “그분들만 특별히 다르다고 느끼지는 않는다”는 거다.

2020년 3월 19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회 위원장이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 토론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뉴스1

2020년 3월 19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회 위원장이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 토론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뉴스1

실제 행동도 그랬다. 문 대통령이 “마음의 빚이 있다”(1월 신년 기자회견)고 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서 “공정을 지향하는 시민들께 많은 상처를 줬다”고 소신을 밝혔다. 민주당이 ‘민주당만 빼고’라는 칼럼을 쓴 임미리 고려대 교수를 고발하자 “겸손해야 한다”며 고발 철회를 요청해 관철하기도 했다.

②눈치=하지만 8ㆍ29 전당대회가 다가올수록 미묘하게 변했다. 금태섭 전 의원이 공수처법 본회의 표결(2019년 12월)에서 무효표를 던졌다는 이유로 당 차원의 징계 논의가 있을 때도, 조응천ㆍ박용진ㆍ김해영 등 전ㆍ현직 의원들이 징계 부당성을 따졌을 때도 이 대표는 침묵을 지켰다.

전당대회를 코앞에 두고선 윤석열 검찰총장과 최재형 감사원장 등 정부와 갈등을 빚는 인물들을 향해 “왜 저렇게 직분을 마음대로 넘나들까 마뜩잖게 느껴진다. 좀 더 직분에 충실했으면 좋겠다”(8월 5일 언론 인터뷰)고 쓴소리를 했다. “이낙연도 별수 없네. 친문(親文)세력에게 눈도장을 받으려고 입술 서비스를 했다”(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비판이 나왔다.

③밀월=문파의 지지 아래 이 대표는 8ㆍ29 전당대회 압승을 거뒀다. 그리고 9월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문파를 “상식적인 분들” “당의 에너지원(源)”이라고 칭했다. 전당대회 결과를 거론하며 “강성 지지자가 많이 포진한 권리당원과 일반 국민이 뽑은 각 후보의 지지율이 비슷하게 나타났다”고도 말했다. 문파와 중도층의 뜻이 일치한다는 의식이다.

2020년 9월 23일 오전 서울 목동 한국예술인센터에서 열린 한국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강성친문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있다. [유튜브 캡처]

2020년 9월 23일 오전 서울 목동 한국예술인센터에서 열린 한국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강성친문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있다. [유튜브 캡처]

④혼란=이른바 추미애ㆍ윤석열 갈등이 최고조로 격화된 지난해 연말 이 대표는 문파를 향해 “같은 당원들에게 지나칠 정도의 상처를 주는 것 자제하는 것이 좋다”(11월 관훈 토론회)고 말했다. 그러나 현안에 대한 입장은 문파들의 요구와 다르지 않았다. 12월 법원이 윤 총장에 대한 징계의 효력을 정지시키자 “법원이 윤석열 총장에게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니다. 검찰 개혁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같은 날 “국민들께 불편과 혼란을 초래하게 된 것에 대해, 인사권자로서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밝힌 문 대통령보다 검찰과 더 선명한 전선을 긋는 메시지였다.

2020년 11월 17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초청 관훈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2020년 11월 17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초청 관훈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⑤거리두기=이 대표가 신년 메시지로 사면론을 꺼내자 민주당에선 “급회전”(수도권 재선 의원)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문파의 격한 반발 속에 이 대표도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14일(박 전 대통령 대법원 재상고심)과 그 후로 예상되는 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까지는 여론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메시지가 포용ㆍ통합 쪽으로 기운다면, 이 대표에 대한 문파의 아우성에도 반전이 생길 수 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언젠가 수면 위로 떠올랐을 사면론을 이 대표가 먼저 제안해 문 대통령의 부담을 줄였다. 문심이 이 대표에게 확실한 힘을 실어준다면, 대통령과의 대외적 신뢰관계도 구축하고 중도통합 주자 이미지도 선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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