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겁도 없이 독수리에 대드는 두루미…민통선엔 무슨일이 [영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해 12월 24일 오전 11시쯤 경기도 연천군 중면 횡산리 민통선 내 임진강 빙애여울. 귀한 겨울 철새인 두루미(천연기념물 제202호)와 재두루미(천연기념물 제203호)의 겨울철 최대 월동지다. 군사분계선 남쪽 3㎞ 정도 거리다. 이곳에는 지난해 10월 말부터 두루미와 재두루미 600여 마리가 날아와 겨울을 나고 있다. 빙여여울 일대 연천 민통선 지역은 아프리카돼지열병(ASF)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조류 인플루엔자(AI) 여파로 지난겨울에 이어 올해 겨울까지 1년 4개월 견학과 관광이 전면 통제되고 있다.

두루미 무리 가운데는 검은색 깃털로 뒤덮인 대형 조류인 독수리(천연기념물 제243-1호) 20여 마리도 월동 중이다. 이석우 연천지역사랑실천연대 대표는 1일 “보름 전부터 두루미 월동지인 임진강 빙애여울에 독수리 무리가 날아들어 마치 자신의 월동지인 것처럼 두루미와 함께 겨울을 나고 있다”며 “이런 일은 수십 년 만에 처음 보는 이색적인 광경”이라고 소개했다.

지난해 12월 24일 오전 11시쯤 경기도 연천군 중면 횡산리 민통선 내 임진강 빙애여울. 두루미와 독수리가 함께 겨울을 나는 이색적인 모습. 연천지역사랑실천연대

지난해 12월 24일 오전 11시쯤 경기도 연천군 중면 횡산리 민통선 내 임진강 빙애여울. 두루미와 독수리가 함께 겨울을 나는 이색적인 모습. 연천지역사랑실천연대

파주 장단반도 월동지, 독수리 사라져  

독수리 무리는 온종일 여울 옆 자갈밭에 두루미 무리와 옹기종기 모여앉아 쉬거나 주변을 날아다닌다. 두루미 무리는 독수리 무리가 끼어들어 쉬어도 별다른 경계심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독수리가 가까이 오면 날개를 퍼덕이며 위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석우 대표는 “독수리 무리는 여울에서 죽은 동물의 사체라도 발견하게 되면 순식간에 몰려들어 먹이 다툼을 벌인다”며 “독수리가 먹이 다툼을 벌일 땐 어디선가 흰꼬리수리(천연기념물 제243-4호)가 나타나 먹이 차지를 위한 몸 다툼에 나선다. 이 틈을 노려 까마귀가 나타나 잽싸게 먹이를 가로채기도 한다”고 말했다.

임진강 빙애여울 위치도. [중앙포토]

임진강 빙애여울 위치도. [중앙포토]

“돼지열병·AI 차단 위해 먹이주기 중단한 여파”

한갑수 조류보호협회 파주시지부장은 “이 같은 현상은 ASF, 코로나 19, AI 여파로 이번 겨울 들어 파주 민통선 내 장단반도 독수리 월동지에서의 먹이주기 활동이 중단된 여파로 보인다”며 “먹이주기 중단으로 갈 곳을 잃은 파주 장단반도 독수리 700여 마리가 전국으로 흩어지면서 이 가운데 20여 마리가 60여㎞ 동쪽 중부전선 민통선 내 빙애여울 두루미 월동지로 옮겨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백운기(동물학 박사) 한국조류학회 전 회장은 “독수리와 두루미 무리가 함께 겨울을 나는 광경은 좀처럼 보기 드문 경우지만 가능한 일”이라며 “독수리 무리가 먹이를 찾아 연천 임진강 여울로 날아든 뒤 살쾡이 등 천적을 피해 안전하게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시야가 확 트이고, 두루미 무리와 공동으로 주위를 경계할 수 있는 곳을 월동지로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두루미는 영리해 독수리가 동물 사체만 먹고 사냥은 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채고, 독수리 무리가 끼어들어도 가만히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24일 오전 11시쯤 경기도 연천군 중면 횡산리 민통선 내 임진강 빙애여울. 두루미와 독수리가 함께 겨울을 나는 이색적인 모습. 연천지역사랑실천연대

지난해 12월 24일 오전 11시쯤 경기도 연천군 중면 횡산리 민통선 내 임진강 빙애여울. 두루미와 독수리가 함께 겨울을 나는 이색적인 모습. 연천지역사랑실천연대

“파주 민통선 내 독수리 월동지 먹이주기 계속돼야”  

조류 전문가들은 독수리 월동지인 파주 장단반도에서의 독수리 먹이주기가 정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백운기 박사는 “파주 월동지 독수리에게 먹이를 주지 않으면 독수리가 전국 양계, 양돈 농장 주변으로 흩어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이에 따라 민간인 출입이 없는 안전한 민통선 내에서 먹이주기를 지속하며 독수리가 머물게 하는 게 독수리도 보호하고 축산농가의 걱정도 덜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독수리=한국과 몽골을 오가며 서식한다. 동물의 사체를 먹어 ‘야생의 청소부’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수릿과 조류 중 덩치가 큰 맹금류를 흔히 ‘독수리’로 통칭하지만, 엄밀하게는 서로 다른 종(種)이다. 가령 ‘미국 독수리’는 흰머리수리를 말한다. 수릿과 조류 중 독수리·검독수리·참수리·흰꼬리수리 등 4종류가 천연기념물(제243호)로 지정돼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