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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인 ‘간’으로 산다···2021년 앞 고려인이 받은 ‘축복’

중앙일보

입력

퇴원을 앞둔 김나리사 씨와 장기이식병동 간호사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제공 은평성모병원

퇴원을 앞둔 김나리사 씨와 장기이식병동 간호사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제공 은평성모병원

러시아에 사는 고려인 김나리사(50) 씨는 하마터면 2021년을 맞이하지 못 할 뻔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우리나라에서 체류하며 난소암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받던 김씨는 가톨릭대 은평성모병원에 입원한 지 사흘 만에 급격히 간 수치가 올랐다. 진단 결과 만성 B형간염 재발에 의한 급성간염과 간부전으로 의료진은 ‘간 이식’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판정했다.

김씨는 어렸을 적부터 쭉 러시아에서 산 고려인으로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 고려인은 소련 붕괴 후의 구소련 지역 전체에 거주하는 한민족이나 그들의 자손을 뜻한다. 타국에서 큰 수술을 하는 건 김 씨와 김씨의 보호자 모두 부담인 상황이라 적극적 치료를 망설이던 찰나 김씨가 결국 혼수상태에 빠졌다.

상황이 악화하자 은평성모병원 의료진은 보호자에게 적극적으로 장기이식을 권유했고 뇌사자 간이식 대기자 등록을 서둘렀다. 김씨의 뇌사자 이식 대기 순번은 15번째였지만 앞선 대기 환자가 이식을 포기하거나 검사 결과 이식 부적합 판정을 받아 이식 승인 이틀 만에 기적적으로 수혜자로 선정됐다.

지난해 11월 1일 김씨는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친 후 한 달 정도 이식환자 양압병실에서 집중 치료를 받은 뒤 12월 2일 퇴원할 수 있었다. 건강해진 김씨는 “조상님의 나라인 한국 덕에 새해를 볼 수 있게 됐다”며 “국적을 초월해 앞장서서 장기 이식을 추진해 준 의료진과 장기 기증자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식 수술을 주도한 김동구 은평성모병원 간담췌외과 교수는 “갑작스러운 간 기능 악화로 생명이 위독했던 환자가 신속하게 간이식을 받고 건강하게 퇴원할 수 있게 돼서 기쁘다”며 “숭고한 마음으로 생명 나눔을 실천해주신 기증자와 가족들, 긴박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새 생명의 희망을 지켜낸 모든 의료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고 밝혔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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